늙은 아비의 각오

 

  

                                                                                             안경환

 

(1)

희망도 계획도 부질없는 일이다. 당초 선생질을 시작할 때 마음먹은 계획대로라면 이번 학기가 마지막이어야 한다. 그리고는 어딘가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편안해야 한다. 그럴 요량으로 몇 푼짜리 적금도 걸어두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한때는 ‘자유인’으로 불리던 나는 너무나도 쉽게 제도의 체포 영장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선 관성을 비타민처럼 장복(長服)하며 나날을 죽이고 산다. 굳이 핑계대자면 어린 자식 때문이다.

“아빠, 무슨 법이 그래요?”

단 일주일이 모자라 학교에 들지 못한 아이의 볼멘소리다. 또래에 비해 몸도 크고 언행도 방사(倣似)한데 왜 자기만 넣어주지 않느냐는 항변이다. 함께 놀던 아이들을 ‘형’으로 불러야 하는 비굴함, ‘우리 같이 놀자, 사랑해’ 쪽지를 보내던 여자아이를 ‘누나’로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는 당혹감에 못내 잠이 오지 않는단다. 무엇보다도 아비가 늙지 않았느냐, 한 해라도 빨리 공부해서 돈도 벌어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다. 일곱 살배기에게도 삶의 무게가 전해지는 것일까? 그러나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아비의 존재가 성가실 뿐, 제게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기 때문이다. 일전 제 어미의 연주회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에서 씩씩거릴 때도 아비는 법의 엄정함과 정직의 미덕을 강론할 뿐 실제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지 않았던가. ‘법대 교수’가 뭔지 모르지만 왜 하지 말라는 것이 그리 많은지. 한 번은 십 여 분을 꿇어앉아 있다가 벌이 풀리자마자 일어서면서 무심코 내뱉는 아이의 말이다.

“언제까지 이 집에 살아야 돼?”

그래 하루 빨리 아비의 세계를 벗어나거라, 할 수만 있으면 말이다. 일요일마다 산이랍시고 끌고 다니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할아버지와 함께 나선 착한 아이로 칭찬해 주니, 그것도 곤혹스러운 일일 게다. 게임도 아니고 놀이도 아니고, 그저 걷고 또 걷는 지극히 무미건조한 산행에 왜 아비는 억지로 끌고 가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쌓이고 쌓인 불만이 엉뚱한 곳에서 폭발했다.

“할아버지 아니고 큰형님이에요!”

 

(2)

“늙은 아빠 아니야, 우리 아빠야.”

다섯 살짜리 딸아이의 잠꼬대 소리다. ‘늙은’ 아빠와 ‘우리’ 아빠가 어떻게 대조, 구분되는지, 그의 작은 뇌 속에 응어리진 한이 무엇이기에, 일순간 가슴이 서늘해진다. 베개 속에 파묻힌 작은 몸체를 물끄러미 내려보다 밖으로 나온다. 별 하나 보이지 않는 캄캄한 하늘이다. 그야말로 천지현황(天地玄黃)이다. 그 적요의 허공에 대고 외친다.

“아들아, 딸아 미안하다.”

그러나 내가 택한 인생에 스스로 속박당하듯이 너희들이 선택하지 않은 상황도 삶의 조건이란다. 문득 점필재(占畢齎) 김종직 선생의 시 두 편이 어른거린다. 마흔넷에 아이를 잃은 비탄과 쉰여섯에 다시 얻은 감동이 교차한다.

 

퇴지의 창자가 백 년이나 쓰리고 아팠는데(百年酸痛退之腸)

네 무슨 죄 있어 내 재앙을 대신 받다니!(汝有何睾代我殃)

 

눈은 어둡고 이도 다 빠졌지만(眼有昏花牙齒無)

조물주가 나를 꺼리지 않으시니(猶誇造物不嫌吾)

 

(3)

그래도 아침 햇살은 고맙다. 지구 어느 모퉁이에서도 흐린 날보다 개인 날이 많은 법이라더니 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아이들의 아침잠은 축복이다. 아침엔 이부자리 적시기에 바빠서 잠꼬대도 하지 않는 모양이다. 점필재 선생도 요새 같으면 늙은 아비 노릇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千字文)을 가르치면서도 어떻게 중화사상을 뺄 수 있을까 고심해야 하니 말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어린이날이 밀어닥친다. 일 년 삼백육십오 일이 어린이날인데 새삼 무슨 어린이날인가, 투덜대면서 어미의 눈치를 살핀다. 제발 조용하게 넘겨주었으면 하는 속내를 꿰뚫기라도 하듯이 아들놈이 능청을 떤다.

“아빠, 나 이제 어린이날이 시시해요. 사나이답게 함께 술이나 한 잔 해요.”

 

 

 

현 서울대학교 법과 대학장.

저서 『법과 문학 사이』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