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사思無邪의 축복

 

 

                                                                                            홍혜랑

 

 금세라도 백설을 뿌릴 것만 같은 회색빛 하늘이 점점 무겁게 가라앉는다. 담양의 가사문학관을 둘러본 우리 일행은 오늘의 마지막 일정으로 근처의 소쇄원(瀟灑園)을 찾았다. 정원의 문이 따로 없으니 그저 무등산 산자락의 계곡을 향해 걷고 있는 느낌이다. 두어 채의 정자만 보이지 않는다면 딱히 이곳을 정원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를 만큼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연을 훼손한 조경(造景)이 아니라 자연을 빌려온 차경(借景)이라는 점에서 소쇄원은 선비의 숨결이 느껴지는 빼어난 한국적 정원이라고 했다. 글자 그대로 ‘맑고 깨끗한’ 정원이라는데, 하필이면 음산한 잿빛 하늘 밑에서 앙상한 겨울 나무들의 골상(骨相)을 만나게 되니 소쇄원의 명성이 영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여름에 왔을 때는 정원이 이보다 훨씬 큰 줄 알았는데 겨울에 와 보니 아주 작네요.”

함께 걷던 일행은, 여름에 소쇄원을 본 적이 없는 나보다 더 실망하는 눈치다. 그 순간 또 다른 일행이 비호같이 화답한다.

“속으신 거죠.”

그랬을 것이다. 여름 한때 한창 물이 오른 녹음 속의 소쇄원은 야윌 대로 야위어 한 움큼밖에 안 돼 보이는 겨울의 소쇄원보다 훨씬 커 보였을 것이다. 우리는 눈의 착각을 곧잘 ‘속았다’고 표현하지만, 더구나 자연으로부터 느끼는 착각일 때는 애시당초 속고 속이는 거짓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소쇄원의 여름과 겨울은 사람을 속일 이유가 없지 않은가. 자연은 사람을 속여서 자신에게 이득이 있고 없고를 계산할 수 있는 오성(悟性)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에 가까이 있으면 있을수록 그토록 마음이 편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의 현대 작가 중에 가장 잘 나가는 소설가 한 분이 작가의 박학에 감탄하는 인터뷰 기자의 찬사에 “속으신 거죠”라며 겸양으로 대답하던 TV 장면이 생각난다. 그 겸양 속에는 모든 작가의 진솔한 고백이 조금은 묻어 있을 것만 같다. 한창 신명이 오른 타고난 작가가 축적된 체험과 사유를 종횡무진 호학의 문장으로 쏟아낼 때, 작품을 ‘위한’ 작가의 그 치열성이 독자에게 엄청나게 커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정작 작가에겐 소쇄원의 겨울처럼 자신이 너무 작아 보이는 순간이 어찌 없을까. 특히 자신의 작품이 자신의 몸집과 균형이 맞지 않을 때, 더욱 그럴 것이다.

소쇄원의 명성에 걸맞은 감흥을 몸으로 느끼지 못한 채 정원을 한 바퀴 돌아 나오는데, 속일 것도 속을 것도 없는 정원의 한 자락과 만났다. 들어설 때는 별로 시선을 끌지 못하던 입구 길 양쪽의 대숲이야말로 겨울의 소쇄원에서 생명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징표였다. 그런데 우리를 안내하던 학예관은 대나무를 잘 알고 있었다. 태어날 때의 굵기에서 조금도 몸을 더 불리지 못하고 키만 자랄 뿐이라는 대나무. 선비의 기상을 닮았다는 대숲 앞에서 나는 엉뚱하게도, 태어날 때 운명지워졌다는 대나무의 그릇 크기가 이미 창조 때 심판받은 낙인처럼 서러웠다.

글쓰기를 중단하는 절필 작가들의 사연이 모두 같지는 않겠지만 나는 요즘 그 사연 중의 하나를 알 것 같다. 구상 선생님의 시 ‘시와 기어(綺語)’가 비수처럼 가슴에 박혀 떠나질 않는다.

‘시여! 이제 나에게서

 너는 떠나다오

나는 너무 오래

 너에게 붙잡혔었다

 너로 인해 나는 오히려 불순해지고

 너로 인해 나는 오히려 허황해지고

 거짓 정열과 허식에 빠져 있는 자

 그 불안과 가책에 떨고 있는  

 너는 이제 나에게서 떠나다오

 그래서 나는 너를 만나기 이전

 그 천진 속에 있게 해다오

 그 어떤 생각도 느낌도 신명도

 나도 남도 속이지 않고 더럽히지 않는

 그런 지어먹지 않는 상태 속에 있게 해다오…….’

 

『현자(賢者) 나탄』으로 유명한 독일의 극작가 레싱은 ‘나는 가슴 속으로부터 자연히 솟아나는 시詩의 샘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모든 것을 펌프질해서 자신의 내부로부터 길어 올려야만 한다’고 고백했다. 그런가 하면 방랑의 시인 릴케 같이 ‘쓰지 않고는 죽을 수밖에 없어서’ 쓰는 시인도 있다. 그렇다고 릴케는 ‘타고난’ 시인이고, 펌프질해서 끌어올리는 레싱은 ‘지어먹는’시인이란 말은 아닐 게다.

쇼팽을 전공한 피아니스트가 피아노의 건반 위에서는 쇼팽의 고통과 절제 속에서 완벽하게 도취하지만, 건반에서 손을 떼는 순간 이미 쇼팽이 아니다. 연주하던 순간의 삼매가 삶의 모든 순간 이어질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연주는 연기가 아니니, 연주자와 배우는 이름이 다르듯 삶의 모습도 달라야 하지 않을까. 글도 그렇다. ‘속여먹는’ 글, ‘지어먹는’ 글이 태어나는 것은 작가가 원고지 위에 자기성찰과 자기고백의 글발을 심는 순간이 아니라 원고지에서 손을 떼는 순간부터 다시 원고지 앞에 앉을 때까지의 작가의 삶의 무게가 아닐까.

남은 몰라도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식상하는 까닭은 작품 속의 언어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작품을 위한 의도적이고 역동적인 펌프질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을 안으로부터 펌프질해서 끌어올렸다는 레싱의 글이 문학사에서 ‘지어먹은’ 글로 평가되지 않고 오히려 빛을 발하는 까닭은 그의 삶이 그의 작품활동 못지않게 치열한 펌프질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구상 시인 스스로 ‘속여먹는’, ‘지어먹는’이라는 고뇌의 시어들로 자신을 힐난하지만 그의 작품이 결코 ‘속여먹고 지어먹는’ 기어(綺語)들이 아닌 연유도 마찬가지다.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융(Jung)이 35세 이상의 환자만을 받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의학적인 정신치료는 재발하기 십상이지만 영혼을 치료하면 재발하지 않더라”고 했다. 적어도 인생을 서른다섯 해는 살아 낸 환자라야 영혼의 치료가 효과적이라는 융의 임상 체험은 신기하게도 피천득 선생님이 수필을 서른여섯 살이 넘어서 쓰는 글이라고 한 그 숫자와 맞아떨어진다. 서양의 나이 35세는 한국의 나이 36세에 해당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수필가는 시인이나 소설가보다 자기 자신의 영혼을 다스리는 데에도 유능한 글쟁이란 말인가.

겁없이 작품을 독자에게 던져버리고는 또 다른 ‘지어먹는’ 언어들을 골똘하게 찾고 있을 때 문득 문득 ‘무엇 때문에 쓰는지’ 자문할 때가 많다.

태어날 때 이미 굵기가 정해진 대나무처럼 천성으로 타고난 자신의 그릇 크기를 한 치도 늘릴 수 없는데도, 그래서 자신의 영혼을 다스리는 데에 실패한 수필가가 될 것이 뻔한데도 절필의 유혹을 받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글쓰는 순간의 사무사(思無邪)의 축복만은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삶의 위로이기에 오늘도 쓰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