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벌

 

 

                                                                                     南基樹

  

반드시 친구라고 부를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림자처럼 그와 같이 지내왔다. 그의 미래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의 과거와 그의 현재에 대해 내 나름의 생각을 말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어쩐 일인지 한쪽을 보지 못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나는 그에게서 언제나 받았다. 그는 어느 정도 분별력을 발휘할 수 있을 만큼 지능도 지니고 있는 편이다. 그런데도 그가 한쪽만을 보는 사람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 나에게는 의아하게 여겨졌다.

중학을 졸업할 무렵 그는 서울로 진학하는 동급생을 보고서야 처음으로 제가 사는 곳 밖에도 고등학교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왜 다른 곳에 있는 학교로 동급생들이 가는가 하는 이유는 그에게는 까마득한 질문이었을 것이다. 졸업을 앞둔 그의 큰 걱정거리는 고등학교에 가서도 중학교에서처럼 아이들이 함께 놀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고등학교에서도 그는 다름이 없었다. 그가 말하는 것은 언제나 그의 마음의 전부였다. 그가 듣는 것은 말하는 사람의 생각, 의향, 내면의 모두였다. 여름 방학 때 그는 시골의 삼촌댁에 한번 놀러갔었다. 그는 사촌이 읽고 재미있다고 한 문고판의 프로이트 심리학을 빌려올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방학이 끝날 무렵 떠날 인사를 하는 그에게 삼촌이 말했다.

“너는 아직 프로이트를 읽을 수준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너(사촌을 가리키면서)는 너무 닳아져서 못 쓰겠다.”

무엇인가가 그를 철퇴같이 내려쳤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표리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학에 진학한 뒤에도 그는 한쪽뿐이었으니 그 철퇴의 영향이 오래 가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대학의 선배들은 그에게 “너는 참 순진하다”라는 말을 했었고, 그는 선배들이 하는 말에 어리둥절하기만 했지 왜 그런 소리를 듣는지 그 자신을 여전히 알지 못했다.

이런 그의 성향은 외국에서 공부하던 때 그의 지도교수 눈에도 드러났던지, 어느 날 그 교수는 그가 그때까지 들어오던 말과 비슷한 말을 그에게 던졌다.

“난, 자네같이 천진한 친구는 처음이네…….”

교포 가정에서도 같았다. 그들은 그를 대하면 말했다.

“이런 세상에! 어떻게 구름 속에서만 살고 있지? 그만 꿈 깨고 내려와요, 이 양반아.”

 

철이 들 만한 나이가 한참 지난 후에 언젠가 한번 그도 자기가 왜 이런 말을 듣고 사는가 생각에 잠겨보았었다. 그러나 그는 세상에 대해 투명한 유리 같았는지 아무것도 그를 변화시키지 못한 듯하다. 평생을 살아오는 동안 그는 이렇게 몇 년에 한 번씩은 남에게서 한두 마디씩 비슷한 말을 듣고는 했다.

차츰 그는 그것이 자기의 본질이고, 그것을 이제는 버릴 수도 없을 것이고, 그래서 자신에 대해서 차라리 세상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기준을 설정하기에 이른 것 같다. 요즈음의 그의 언행에서 나는 이런 낌새를 채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데 이것이 현재의 그라는 인간이다.

내게는 세상은 항상 변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를 좇느라고 쉴 사이 없이 바쁘다. 이런 나에 비해서 그에게는 세상이 한결 같고, 그 안에서 그는 언제나 변할 필요가 없이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어느 때부터인가 나에게 싹트기 시작했다. 우리 둘은 이제 긴 인생을 살았고, 나도 이제는 어딘가 안 되어 보이기만 하던 그를 두고 비교해서 나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왜 나는 바쁘게 살고 있고, 그는 여러 사람들 말대로 꿈속에서 아이같이 천진하기만 한가? 무엇이 그의 불변성을 이루어주고 있는가? 어느 날 밤, 나는 그와 내가 살아온 생활을 돌이켜보면서 그에 관해서 깊이 생각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는 ‘어린아이’를 마음에 지니고 있다. 나비의 ‘꿈’을 살고 있으며 ‘하나’를 지향하고 있다.

‘어린아이’, ‘꿈’, ‘하나’와 같은 것들은 변화하는 공간에는 맞춰 들어갈 수 없거나, 공간에서나 드러나는 형체를 지니지 아니한다. 이와 같은 것들은 흐르는 시간이 끼어들지 못하거나 시간에 무관한 존재들이고, 그는 이런 것들처럼 밖에 대해서 투명할 수밖에 없다.

이런 그에게는 이 세상이 유형지와 다름없을 것이다. 그의 투명성이란 그가 감수해야 하는 ‘형벌’과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