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山寺에서

 

 

                                                                                          이정호

  

췌장을 들어내고 위와 십이지장 일부를 도려내는 큰 수술을 받고 요양 차 절에서 겨울을 났다. 굳이 산에 있는 절을 택하게 된 것은 공기와 물이 좋은 곳으로 그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묘한 인연으로 절에 머물게 되었고, 마침 일 년에 두 번 치르는 승가의 안거(安居) 중 동안거(冬安居)를 스님들과 함께 하였다.

안거 중 승가의 생활은 잠시도 느슨할 틈이 없다. 새벽 세 시 반에 일어나서부터 밤 아홉 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예불, 참선, 독경 또 참선, 이렇게 시계 침 같은 일과를 따르자니 성치 않은 몸으로 무척 힘에 겨웠다. 뱃속이 편치 못해 하루 적어도 너더댓 번 대변을 보아야 하고, 소변은 수시로 보아야 하는 생리적 어려움이 특히 힘들었다. 초저녁에 한 번 보아도 한밤중이나 새벽에 또 두어 차례는 다녀와야 했다. 살을 에는 한겨울 밤바람은 사뭇 바늘로 찌르듯 아렸다. 재래식 변기라 밑에서 치부는 바람이 창자까지 파고드는 듯했다.

이렇게 힘들고 귀찮은 중에도 도시에서는 맛볼 수 없는 산중의 정취는 있었다. 맑고 밝은 밤하늘의 별빛, 뭇 영혼들이 편히 쉴 수 있을 것만 같은 깊은 어둠과 무게를 감당하기 힘든 산중의 적막이 주는 침묵,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이 하나같이 침묵을 영혼의 안식처로 삼는 까닭을 조금 알 듯하다. 침묵은 소리 없는 소리, 이는 곧 언어를 초월한 신과의 대화로 이어지는 신성한 영역인 까닭이다. 이 같은 침묵을 깨뜨리는 바람 소리, 풍경 소리 그리고 부엉이 소리, 우주를 삼킨 듯한 침묵이 산사를 감싸안은 골짜기에 쏟아부으면 세상에 나오기 이전, 마치 어머니 뱃속 양수에 잠겨 있을 때 그랬음 직하게 감미롭고 포근하다. 유영(遊泳)하듯 편안하다.

참선의 참맛이야 잘은 모르지만, 온몸이 저리고 뒤틀리는 고통을 넘기고 나면 밝은 햇살을 받아 잔잔히 흐르는 맑은 샘물 같은 고요, 분명 전에는 어둡고 탁하고 악하고 추한 것들이었음에도 이상하리 만큼 그 고요에 비치는 것들은 하나같이 밝고 맑고 선하고 투명하다. 아직 세상이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새벽, 냉랭한 고요가 정수리에 스밀 때, 정신은 불빛을 머금은 수정처럼 명철(明徹)하다. 한낮이 기운 오후, 서창(西窓)에 번지는 햇살은 지극히 정갈하다. 밤은 또 어떤가. 바람도 자고 산새들도 둥지에 깃들고 나면, 별이 내려와 머물다 가는 깊고 깊은 적막,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키는 소리가 천둥 소리만큼이나 크게 울릴 때 선객(禪客)들은 침묵에 주눅 들지 않을 수 없다.

무거운 업장덩어리가 참선이랍시고 앉아 있는다고 부처가 될 리 없지만, 어쩌다 언뜻언뜻 와 닿는 게 없지는 않았다.

부처님이 도를 깨쳤다는 성도일(成道日) 새벽, 철야 정진하던 중 잠시 쉬는 시간(방선放禪)에 밖을 거니는데 마침 눈썹 같은 초승달이 남쪽 산 위에 빛나고 있었다. 이때 떠오른 생각을 다음과 같이 적어 스님에게 보였다.

 

釋尊成道日不忘 淸源禪客滿禪堂 莫道覺星忽然明 昨夜眉月照南山

석가세존께서 도를 이루신 날을 잊지 못해

청원 선객이 선방에 가득하네

깨달음의 별이 홀연히 밝았다 말라

어젯밤 이미 눈썹달(心月에 비유)이 남쪽 달을 비추었다네.

 

스님은 빙그레 웃고는 내게 차 한 잔을 권하였고, 나는 말없이 차를 들고 방을 나왔다. 이에 스님은 내가 산책을 나가고 없는 사이에 하얀 백지를 내 방에 놓고 갔다. 나는 스님에게 거기에 더할 것도 없고 덜어낼 것도 없다고 하였다.

 

이런 일도 있었다. 전날 밤에 자작자작 내리던 비가 한밤 들어 폭설로 변했다. 새벽 예불 때 밖을 나서니 온 시야가 눈, 시를 지어 아침 차 마시는 시간에 스님에게 넌지시 건네주었다. 스님은 이를 훑어보고는 오늘 참선은 밖에서 하겠다는 것이다. 이 추위에 밖에서 참선이라니, 영문을 모르는 얼굴표정들이 가지각색, 나 혼자 속으로 웃고 있었다. 스님이 시를 소리 내어 읊자 그제야 모두들 환히 웃는다.

 

昨夜寒雨變雪花 曉出門時天地白 何必坐靜於禪堂 眼前風光是佛界

지난 밤 차디 찬 비가 눈꽃으로 변해

새벽 문 밖을 나서니 천지가 흰빛이네

하필 선방에서 잠잠히 앉아 있을 텐가

눈앞 풍광이 부처의 세계인 것을.

 

산사의 설경은 그야말로 완벽하고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예술품.

“스님, 저 때문에 안거의 질서가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된 셈인가요. 그러나 아닙니다. 부처님 법은 그렇게 고지식하게 꽉 막히지 않았습니다. 때와 장소, 상황에 따라 거기에 맞는 이치를 생생히 드러내어 실행하는 것이 불법입니다. 이게 바로 중도(中道)라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어디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는 걸림이 없는 대자유(大自由)의 삶을 실천하는 겁니다.”

“그럼, 오늘 참선은 선방(禪房)에서 안 했을 뿐이지 참선을 어긴 것이 아니란 말씀이군요.”

“참선은 앉아서만이 아니라 우리 생활 공간 이대로가 참선 자리입니다. 다만 그렇게는 잘 안 되니까 정한 곳에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것이지요. 그래서 좌선(坐禪)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 마음이 편합니다. 설경을 즐긴 게 오히려 중도를 실천한 셈인가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 허나 중도라고 하셨으니 이미 중도가 아닌 게 되어버렸습니다. 걸림이 없다는 그 생각에도 떨어지지 말아야지요. 머무르지 않은 데에는 머무르지 말아야 참으로 머무름 없는 머무름이니까요. 하하하하.”

늘 묵언(默言)으로 무표정 하던 스님의 웃음소리가 눈세계(雪國)에 힘차게 메아리쳤다. 쏴아쏴아, 세찬 바람이 소나무 가지에 무겁게 얹힌 눈송이를 쓰아악 털어낸다.

“자연의 이치야. 저래야 가지가 덜 상하거든.”

스님은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이내 다시 스님의 얼굴에는 고요가 깃든다.

 

동안거 해제일이 다가오면서 밥값을 얼마를 내야 할지 은근히 마음이 쓰였다. 처음에 미리 내놓으려고 했으나 스님은 ‘떠날 때 주시오’ 이 간단한 한마디뿐, 돈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했다. 무엇이든 돈으로 해결하는 세상살이에 젖어 있던 나로서는 심적으로 부담이 되었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전에 요양했던 사람은 떠나면서 요사채를 지어주었다는 한 신도의 말을 듣고 이거 예삿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그렇게는 못한다 해도 적잖이 해야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떠나기 전날 저녁 공양 때였다. 스님이 밥상 앞에 앉으며 “오늘은 밥값을 제대로 못하고 밥만 축내는군” 하는 것이었다. 순간 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淨寂禪窓吐淸香 達磨炯眼師煎茶 若問人語至今事 凍雪麥葉忍苦長

정갈하고 고요한 선창은 맑은 향기를 토하는데

반짝이는 달마의 빛나는 눈으로 스님이 차 달이네

누가 지금의 일(경지)을 묻는다면

얼어붙은 눈 속에서 보리(菩提와 같은 음을 따서 비유)가

고난을 딛고 자란다 하리.

 

스님은 달마 상을 그려 방 벽에 가득 붙여놓았고, 누가 오든지 차를 내놓는데 어떤 날은 차 달이는 물동이를 두어 번은 채워야 할 정도로 차를 즐겨 마신다.

절을 떠나오던 날 아침, 스님 방에 들어가 이 시를 보이며 그 동안 밥값이 될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스님은 “내 절 생활 사십 년에 처음으로 밥값을 제대로 받는군” 하며 활짝 웃는다. 진정 만족했을 리는 없고 이렇게라도 공부한 태를 낸 것에 대견했던 모양이다.

 

이날은 마침 천도제(遷度祭)가 있어 점심 예불이 끝나고도 목탁 소리는 멎지 않는다. 육신은 삶과 죽음이 있으나 법신(法身)은 오고 감이 없이 영원불멸이라는데, 이미 이승의 무상(無常)한 옷을 벗어던진 영가(靈駕)가 이생에 무슨 미련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제사상祭(祀床)을 차렸을까. 다 허망하고 부질없는 일이나, 이승 사람이 정을 못내 끊지 못해 저리 하는 것이려니.

절을 벗어나 산모퉁이로 돌아서자 목탁 소리가 똑 끊긴다. 갑자기 차창으로 햇살이 눈을 쏜다. 먼 산 능선엔 벌써 봄빛이다. 아, 봄…….

 

 

<후기> 절 생활을 하면서 쓴 것이라 어쩔 수 없이 너무 불교적인 점, 그리고 한시(漢詩) 또한 짧은 한문 실력으로는 엄격한 정형의 틀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뜻만을 나타냈습니다. 선문답(禪問答)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이는 주고받는 당사자 간의 문제로서 풀이하기 곤란하고, 풀이한다 해도 의미가 없다는 점을 양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