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이 지던 날

 

 

                                                                                        韓粉玉

 

모란꽃을 달입니다. 비단 광택의 적(赤)모란 저 고운 꽃잎을 어쩌자고 뜨겁게, 뜨겁게 펄펄 달입니다.

 

한 사나흘 간 모란이 핀 뜰을 들고나며 폭 넓는 비단 치마를 입는 양 설레이며 덩달아 마음은 모란마냥 둥실 피어올랐습니다.

오늘 저녁 문득, 무려 쉰 송이에 가까운 모란꽃이 일시에 큰 꽃잎을 접은 듯합니다.

“…저기 저 좀 보세요. 모란이 비를 맞아서 저런가요. 아니면 벌써 지고 있는 거예요?”

“…지고 있구먼.”

아니 어찌하면 좋을까요. 요 며칠, 겨우 한 사나흘 간 피었다가 채 정(情)도 들이기도 전에 떠나는 귀한 손(客)마냥 보내는 마음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겨울 석 달을 손꼽아 기다렸다가 봄길 삼백 리 길 달려서 차마 사무친다는 말 다 하지 못한 채 돌아오는 저녁처럼, 우조 계면조 슬픈 곡조 채 끝나기도 전에 모란은 벌써 그 품격 있는 자태를 미련 없이 접고 맙니다.

잡은 손 놓지 못하고서도 가는 님을 보내드려야 하듯이, 문득 문득 무너져내리는 모란 섭리를 해마다 보아 왔기에 더욱 서럽습니다.

저녁 어스름, 어둠이 깔리는 모란꽃 밭에서 아! 아! 탄식하며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뭉텅뭉텅 내려앉는 모란꽃과의 별리(別離)를 안타까워하다, 서러워하며 끝내 마음을 고쳐먹고 모란꽃을 모두 거두어 염료로 쓰기로 하였습니다.

 

모란이 봄자락 데불고 진작에 떠날 줄 알면서도 왜 모란만을 나의 뜰에 가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자고 이 봄날, 모란과 더불어 피어나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침침하고 끝이 보이지 않던 흠흠한 계절인 겨울. 그 완고한 계절을 거치면서 온다는 소문도 없이 봄은 성큼 다가와 모란을 피운 지가 엊그제였는데. 정작 봄, 봄 하면서도 아직 봄 속으로 걸어 들어서지 못한 채 머뭇대고 있는 나에게서 모란은 봄을 앞세우고 저만치 떠날 채비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봄날이 무너져내립니다. 나 어쩌자고 사흘뿐인 모란만을 고집했을까요. 나 어찌 하자고 어제, 오늘, 내일이면 그만 지고 말 모란만을 가꾸었을까요. 저렇듯 치근대는 봄날의 숨소리가 벌써 모란꽃 떠날 즈음임을 예고하는 줄 왜 몰랐더란 말인가요.

해마다 오는 봄이건만, 해마다 피는 꽃이건만 모란이 피는 봄은 언제나 서럽습니다.

 

정말이지, 새 세상 열어주는 듯한 환한 지등(紙燈) 켜든 백목련을 시작으로 학교 주변 울타리에 별꽃 모양 핀 개나리며, 산야의 연분홍빛 진달래, 화면으로 다가서는 샛노란 산수유의 반란을 보며 봄이란 느낌 그대로 신비로움입니다.

무릇 이 봄꽃의 찬미 앞에 나는 언제부터인지, 하마 오래 전부터 유달리 모란만을 고집했습니다. 아니 나만의 꽃, 나의 모란이 피고 만 것입니다.

인정 담긴 잔말씀은 없어도 자애자중, 가까이 가면 언제나 익은 음식 한 가지라도 먹여서 보내려고 애쓰는 큰어머니 치마폭 같은 꽃. 집안 대소 가내 두루 헤아려 아픔이든 기쁨이든 함께 보듬는 품 넓은 아낙 같은 모란에게 마음을 빼앗긴 지 오래입니다.

나 또한 은연중 모란을 흠모하고 사랑하면서 모란 성정(性情)을 닮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누가 모란더러 향기 없다 하였던가요? 저 북욱한 분(粉)향 같은, 아주 고급 분(粉)에서나 맡을 수 있는 모란 향. 매혹적이거나 쌀쌀맞지는 더 더욱 아닌, 성장한 여인의 선향이 이러 한지요.

저 붉은 비단 광택, 눈으로 먼저 물들고 천천히 마음에 와서 앉고, 맨 나중에 관록과 품격으로 마주하는 꽃.

왕비의 원삼(圓衫)에나 적의, 활옷에나 앉는 저 꽃을 나의 뜰엔 애초에 무모한 만용이었습니다. 애초에 분에 넘치는 안복(眼福)이었습니다.

어리둥절 놀랍다가 멍해져서 차라리 굵은 붓으로 담묵(淡墨)을 푹 찍어서 붓 끝에 농묵(濃墨)을 약간 묻혀 화선지에 크게 번지는 효과로 지는 모란을 붙잡을까도 합니다. 아니면, 화청(花靑)에 등황(藤黃)을 섞어 녹색으로 운필 하여 살려낼까도 합니다.

녹모란이면 어떻고 흑모란이면 어떠랴 싶습니다. 자홍(紫紅)에 담구었던 붓으로 한가운데부터 점차 운필하여 담홍으로 그려본 적도 있습니다만.

난(蘭)의 암향(暗香)이 군자의 인품에 비유된다면 모란 향은 여인의 덕성(德性)일 테지요.

아무리 하여도 지는 모란 앞에 그 빛깔의 깊이와 모란 자락 품새의 너비를 가늠할 길 없습니다.

 

차라리 봄을 삶아 건집니다. 모란꽃 빛을 명주에 담아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일어난 것입니다. 가는 봄, 지는 모란을 명주 한 필로 붙잡을 양입니다.

장롱 밑에 묻어두었던 명주 한 필을 꺼내들어 찬물에 담가두고 모란 꽃잎을 죄다 모아 솥에 넣어 달입니다. 꽃잎은 그만 허옇게 빛바랜 건덕지로 남고 물빛은 진한 자홍으로 우려 나옵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자기 시작한 한밤중의 염색이라 식초를 매염제로 하여 찬물에 담가두었던 명주를 넣어서 충분히 꽃물이 들었다 싶을 때까지 또 달였습니다. 그러고는 어서 빨리 찬물에 행궈냈습니다. 내일 아침까지 명주가 마르도록 기다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잠자는 식구들 몰래 명주를 자근자근 손질하여 크다란 수건으로 물기를 받아내고 또 받아내어 꼽꼽하게 때맞추어 다림질로 바로 들어갔습니다.

모란은 순한 보랏빛으로 다시 얼굴을 드러냅니다. 모란의 혼은 녹아서도 적모란 그 붉은 비단 광택일 때만큼이나 격조를 더합니다. 참으로 살가운 보랏빛입니다. 순한 자연의 빛이며 명주와의 어울림은 더욱 우아한 부드러운 실루엣입니다.

영원히 지지 않는 모란으로 다시 태어난 이 명주 한 필을 혼자 가지기엔 너무 벅찹니다.

 

그리운 지기(知己)를 찾아 모란이 지는 날의 슬픔을 이 보랏빛 명주 한 필로 나누어야겠습니다.

 

 

 

 

한국문인협회 울산시지회 회장 역임.

수필집 『꽃의 여자 그리고 정염』, 『진홍가슴새』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