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꾼과 선녀, 그 후

 

 

                                                                                            서 숙

  

위대한 개츠비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일의 허망함에 대해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그것이 희망이었으며 사랑이었다. 그러나 결국 사랑하는 대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행복할 수가 없었나 보다. 그처럼 헛된 몸짓으로 파국을 끌어들이는 모습 속에는 삶의 비장함이 깊이 스며 있다.

이러한 개츠비의 모습이 숙연하게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우리 모두도 그와 같은 꿈 한자락을 품고 있어서 일 것이다. 지나간 사랑을 포기하지 못하는 끈질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선 모든 판단을 유보하고 적합성을 따지지 않는 순수함, 자신의 소망을 실현코자 돌진하는 무모함 속에는 우리가 선망하지만 이내 포기하고 마는 삶에의 환상이 어른거린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작가는 ‘위대한 개츠비’보다 더 지독한 사랑을 그려 보이고 싶었나 보다. 온갖 장치와 설정으로 한 남자의 어리석은 집착을 천착한다. 소설 제목으로는 바하만의 시 한 구절을 빌려왔다. 추락이라는 말에서는 쉽게 이카루스의 날개가 연상된다.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는 바람에 밀랍이 다 녹아서 깃털은 산산이 흩어지고 그는 땅으로 추락한다. 사랑이 날개를 얻는 것이라면 그 사랑의 헛됨이 추락을 예고하는 걸까. ‘날개가 있으므로 추락의 여지가 생긴다’ 즉 ‘모든 사랑은 헛되다’와 동일한 의미일까. 헛된 것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절망을 내포하고 있다는 의미인지도. 모든 사랑은 절망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추락은 어떻게 진행되는 걸까. 이 세상에 시간 앞에 빛바래지지 않는 것은 없으니 시간과 생활의 타성에 의해 서서히 진행되는 추락일 수도 있고, 인간이란 미완성의 존재가 원래부터 사랑의 형식에는 걸맞지 않아서 추락은 기습과도 같을 수 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사랑은 언제나 벼락처럼 왔다가 정전처럼 끊겨지는 건지도 모른다. 결국 온갖 종류의 사랑은 파멸을 예고한다는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한 불신의 표시라고 이해하기로 하자.

이 작품에는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한 조소가 엄연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여주인공으로 대변되는 여성의 경박성에 대한 경멸감이 농후하다. 그렇지만 한편, 파우스트에서의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명제를 다른 작품에서도 여러 번 언급하는 걸 보면 작가는 그의 심리 밑바닥에 ‘진정한 여성’을 찾아 헤매는 순례자의 심정을 가슴 깊이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닌지.

 

봄날은 간다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의 시작은 같았으나 그 끝은 서로 다르게 왔다. 여자에게 사랑은 왔다가 갔다. 짧은 봄날처럼.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을까.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남자는 말한다.

그래도,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변한다. 사랑은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한다. 사랑이 식은 여자에게 매달리는 남자는 고통스럽다. 바람 소리, 물 소리를 녹음하려고 정지된 화면처럼 서 있는 남자에게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흐르는 물이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인간에게 마음을 바치지 마라.”

그래도 많은 시간이 흐르면 그도 이렇게 자신을 위로할 것이다.

‘중요한 건 우리가 그때 그 순간만큼은 서로 사랑했다는 것이다. 그녀가 자신의 감정과 자신이 고수해온 삶의 양식에 충실하기 위해 이제 이쯤에서 우리의 사랑을 접자고 했다 해서 그녀를 탓할 수는 없다.’

 

두 편의 소설과 한 편의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남자 주인공들의 사랑의 모습은 끈질긴 집착, 너와 내가 공동운명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절실함이다. 반면 상대 여자들에게 사랑은 허영일 뿐 추구하는 실질이 아니다. 비단 이들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사랑은 어디까지나 잠시의 미혹이므로 이내 깨어나고야 말고 원래의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여기에 사랑의 한계 내지는 비극이 있다. 저마다가 꿈꾸는 세상에서의 이상이란 무엇이 되었건 ─ 돈과 사회적 지위가 되었건, 아메리칸 드림이 되었건, 타성적이고 도식적인 삶으로부터의 반역이 되었건 ─ 사랑이란 너울에 의해 쉽게 포기되는 게 아니니 사랑이란 얼마나 헛된 것인가. 인간을 그 근본에서는 그다지 바꾸어놓지도 못하니.

그런데 그들은 왜 하필 이런 이야기를 작품의 소재로 하였을까.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충만해지는 사랑도 있지 않겠는가. 그들은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알고 있다.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그러면서 한편 꿈꾼다. 사랑이 영원하기를.’

그러나 이렇게 어리석은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므로 개츠비는 이후로도 오랫동안 우리의 가슴 속에 위대한 채로 남아있을 것이다.

어리석을 지언정.

 

 

<계간 수필>로 등단(200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