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木蓮 서른한 송이

 

 

                                                                                              고임순

  

내 집 아파트 1층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아스라하다. 시야를 막는 앞 동 건물 위로 펼쳐진 하늘 저 멀리에 내 분신인 서예 작품들이 아롱거린다.

‘시편 23편’과 ‘생명’의 성경 구절, 추사의 ‘춘일春日’과 이식의 ‘신연新燕’의 행초서, 주무숙의 ‘애련설’의 해서와 황진이의 ‘반달’의 예서, 그리고 매화, 수련, 창포의 채색화 등의 크고 작은 작품들이 나풀거리면 금세 눈물이 핑 돈다.

나이 듦에 집착일까. 아니면 나는 위선자일까. 벌써 해가 바뀌고 반년이 넘었는데도 잃어버린 작품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것들을 움켜쥐고 있는 범인을 용서하고 기억에서 지워버리고자 몇 번이나 다짐했던가. 그러나 하늘만 쳐다보면 그날의 분노가 치솟아 가슴 밑바닥에 불덩어리로 타오르는 것이다.

지난 해, 나는 평생의 꿈이던 고희 기념 서예전을 계획하고 그 준비에 여념이 없는 나날을 보냈었다. 전시회 날이 임박하자 그 동안 쓴 작품 65점을 정리해서 표구사에 맡기고 출판사를 물색했다. 여기까지는 순조로웠는데 작품 사진을 찍기 위해 운반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출판사 직원 두 명이 부주의로 엘리베이터에 실은 작품 가운데 신작품 31점의 뭉치를 깜박 놓고 내리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던 것이다.

어이없는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나는 절벽에서 거꾸로 떨어져 숨을 쉴 수 없는 바로 죽음 그것이었다. 그 직원들이 혈안이 되어 빌딩에 있는 사무실 구석구석을 이 잡듯 뒤졌지만 헛수고였다. 현상금을 내걸고 애타게 호소하며 찾았지만 작품의 행방은 묘연했다.

하늘이 내리신 경종일까. 내가 더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한 시련의 채찍질인지도 몰랐다. 산산이 깨어져버린 나는 그러나 참혹한 역경을 이기려는 안간힘이 용수철처럼 튕겨나옴을 느꼈다. 전시회까지 차질 없이 도록을 만들어주겠다고 책임을 통탄하고 나선 출판사에서 열흘 간의 말미를 주었다.

빛과 힘과 기회가 허락된 240시간. 나는 외골수 불 같은 사랑에 빠졌다. 그 사랑은 고통을 수반하는 열병 같은 것이었다. 나는 다시 붓을 들어 오직 31점에 도전하는 절박한 시간과 싸워 이겨야만 했다. 결승점을 눈앞에 둔 마라톤 선수처럼 쉼없이 뛰면서 한정된 시간을 메꾸는 데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곧바로 도록 제작에 들어갔다. 초고속으로 진행하는 출판사 직원과 함께 야간 작업을 하면서 편집과 교정 보기에 매달렸다. 드디어 20일 만에 도록이 완성되던 날, 감색 바탕에 금박金箔으로 내 이름 석 자가 새겨진 표지를 어루만지며 솜처럼 지친 나는 처음으로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해서 나는 서울과 제주에서 두 번의 전시회를 마칠 수 있었다. 과감하게 70년 세월을 풀어놓고 이제 일흔 잔치는 끝났다. 그러나 끝남의 자리는 어찌 그리 아쉽던지. 썰물이 쓸고 간 모래밭에 외롭게 남은 조개껍질처럼 쓸쓸했다. 그래서 허전한 가슴으로 잃어버린 작품이 투사透寫된 것 같은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봄 3월이 열린 어느 날, 내 눈이 무심코 하늘에서 정원의 나무들로 옮겨졌다. 작년에 서너 송이 꽃을 피웠던 어린 목련나무 가지에 꽤 많은 꽃망울이 부풀고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그 꽃망울들은 아주 서서히 함부로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겸손함으로 나날을 이어가고 있었다.

때로는 차가운 눈비와 매서운 꽃샘바람을 이기며 조용히 자신 속에 침잠沈潛하고 있는 달관의 꽃.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온갖 고초를 소리 없이 안으로 쓸어안고 삭히는 인내심이 눈물겹다. 그 신비스런 개화에 나는 차츰 영혼의 눈을 뜨게 되었다.

드디어 꽃봉오리가 유백색 얼굴을 살며시 내밀던 날, 전설이 살아났음인가. 북쪽 바다에 살고 있는 님을 연모하는 하늘나라 공주의 일편단심이 승화된 북향화北向花. 붓 끝처럼 뾰족하게 북쪽을 향한 꽃이 촛불인 양 사방을 밝혀주고 있어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 굳은 의지와 고귀한 기품 앞에서 내 일상들이 얼마나 초라하게 위축되는지 몰랐다.

4월이 열렸다. 따스한 봄 햇살에 환호성을 지르며 활짝 흐드러진 목련꽃. 나는 경이의 눈을 떴다. 자세히 몇 번을 세어봐도 분명 서른한 송이였다. 하느님의 섭리인가. 가슴에 맺힌 31의 숫자가 가녀린 가지마다에 잃었던 작품이 되어 조신하게 피어나 있지 않은가. 그 무엇으로도 치유되지 않던 가슴앓이 상처가 이기적 같은 우연의 일치로 시나브로 아물고 있었다.

불타던 예술 혼으로 아름다움을 창조했던 지난 시간들이 꽃 위에 겹쳐진다. 용서했으면서 돌아서면 용서되지 않던 나의 이중성, 그 증오의 감정이 녹아내리고 있음을 감지했다. 내가 지금 목련꽃으로 위로를 받는 것처럼 누군가도 내 작품으로 위로를 받고 있다면 잃어버린 작품에 대한 미련은 깨끗이 버리기로 했다.

목련꽃 서른한 송이. 천사의 너울인가. 쏟아지는 봄 햇살을 받으며 그 넉넉한 일곱 폭 치마를 펼치고 춤추듯 온몸으로 절창絶唱하는 꽃이여. 그 지순 고결한 아름다움 속에 숨어 있는 사랑은 조건 없는 사랑임을 깨달았다.

아름다운 것은 영원한 기쁨인 것을. 사람도 목련꽃처럼 순수할 수 없을까 생각에 잠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