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강

 

 

                                                                                               유경환

  

언젠가 일선 기자 시절에 최남단인 소흑산도 가거可居섬에 들어가, 며칠 묵은 적이 있다. ‘능히 살 만한 섬’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면, 이 섬이 어떤 섬인지 알 만하다. 섬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는 돌 구르는 소리뿐이다.

아이 머리만한 크기의 검은 갯돌들. 이것들이 파도에 떠밀려 오르면서 부대끼며 구르는 소리. 달겨든 파도가 빠질 때에도 돌 구르는 소리가 난다. 오르며 구르고 내리며 구르는 소리가 낮에도 밤에도 쉬지 않고 울어대었다.

며칠 듣고나니, 돌 부대끼는 소리가 소흑산도 판소리로 들렸다. 바다의 적막을 너른 바다에서부터 말아올려, 별 밝은 하늘에 받치는 판소리. 섬을 휘휘 감고도 남을 만큼 기나 긴 사연 얽힌 판소리. 서편제 아닌 섬편제라고나 할까.

오래된 이야기를 가끔 꺼내는 것은, 적요에 한없이 빠져들 듯 긴장이 풀릴 때, 귀에 녹음된 가거섬 바다 울음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때때로 영혼이 고달프면 가거섬에 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목포에서 뱃길 칠백 리’라는 곳에 쉬이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잖은가.

 

이럴 경우 남한강에 간다.

남한강이어도, 겨울 강가를 거니는 일은 흔히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겨울에 강가에 나서는 일부터 그렇다. 코트 깃을 바싹 치켜 여미고, 언 강을 멀리서 바라보기가, 기껏 겨울 강에 접근하는 방법이다. 그러니 물가 곁을 걷기란 작심하지 않고서야 어디 쉬운 일이랴.

혹 동행자가 있어서 강가를 걷자고 속삭인다면 또 모를 일이다. 추운 날 강가를 걷자고 한다면, 아마 젊은 연인들일 것이다. 내게도 그런 적이 없지는 않았다. 겨울 강가가 아닌 바다였다. 겨울 바다는, 낮게 엎디어 부는 바람 속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잠이 든 겨울 바다에 서서, 그래도 분별력이 있다며 앞으로 만날 시련을 미리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성난 바다가 아니었던 때문인지 우리의 예측은 소극적이었고, 세상을 무섭게 여기지 못한 철부지 탓이었는지, 대책은 하나도 쓸모 있는 것이 되지 못했다. 어떤 고난도 극복하겠다는 호언장담은 아름다운 환상이었으며, 실제의 삶은 미적분을 풀기 위한 초조와 불안 같은 것의 연속이었다.

 

오늘 나는 혼자서 남한강에 왔다.

남들이 보기에 뒷모습이 초라하거나 을씨년스러울 것이다. 이를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물가에 바싹 다가서 걷고 있다. 물가 곁을 걸을 수 있도록 자갈을 얼음이 단단히 붙잡아 주고 있다. 걸을 때마다 자갈 부대끼는 소리가 난다. 밟힌 자갈이 밀리면서 그 옆의 자갈과 부딪친다. 부딪히는 자갈들이 소리를 만든다. 자갈 부대끼는 소리.

이 소리가 문득 살아온 생生의 소리 같다는 생각이 들어 걸음을 멈춘다. 들어보니,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신음한 신음 소리, 힘들 때마다 힘들어한 비명과 다를 바 없다. 내 삶의 고달픔을 위로받는 것 같아, 발 밑의 소리를 그냥 들을 수가 없다.

자갈밭은 얼음 반, 자갈 반이다. 두껍지 않은 얼음이 자갈 틈새를 차지하고 있다. 얼음 틈새마다 자갈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 위에 얇은 햇살이 내려앉는다. 이 동글동글한 얼굴 모양을 얻기까지 얼마나 오래 부대껴 왔을까. 그리고 지금 여기에 끼리끼리 어울려 자리를 잡기까지 얼마나 오랜 동안 선의善意의 자리다툼을 했을 것인가.

겨울 한철, 겨우 제자리 정하기가 끝나 편안히 자리 차지를 누리는 안식이다. 헌데, 무법자처럼 자갈들의 평안을 깨뜨리며 자갈 부대끼는 소리를 더 듣고자 하는가. 따지고 보면 겨울 한철만이 자갈에겐 평안이 허락된 안식기다. 이런 안식을 흩트리며 자갈 부대끼는 소리를 듣고자 한다면, 나는 무법자이기 전에 몰염치로 몰리지 않을 수 없겠다.

 

얼마나 먼 곳에서, 얼마나 높은 곳에서 돌은 갈라지고 부서져 밀리고 치이면서, 모서리라는 모서리는 모두 갈리고 갈려 지금의 이 지점에 도달했겠는가. 만약 올 여름에 물이 불어 휩쓸리게 되면, 또 어느 하구河口에까지 밀려 자리잡기를 할런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예측할 수 없는 고난과 시련은 한덩이 돌에 한한 것이 아니다. 내 삶의 연속일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걸음을 멈추었어도, 자갈 부대끼는 환청에 소름이 돋는다. 이 소리를 듣자고 겨울 강을 찾아오는 ‘나’인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젓는다.

 

태풍이 오는 길목을 안다.

태평양에서 남지나해를 거쳐 소흑산도에 이른다. 이 드넓은 바다의 적막을 말아올려, 가거섬 갯돌을 밀어올렸다가 쓸어내리는 소리. 사람의 영혼을 황홀경에까지 이끄는 마력에 차라리 다시 젖고 싶다. 가거섬에 다시 갈 기회가 생긴다면 이번엔 반드시 녹음을 해오리라. 영혼이 답답하다고 속삭이면, 녹음을 크게 틀어 ‘섬편제’를 들어보리라. 그러면 가거섬의 전설을 판소리 대본으로 작성할 수 있으리라.

정말 가거섬에 또 한 번 가고 싶다. 내 생生의 태풍이 달겨들어 모두 흩뜨려 놓기 전에……. 뱃길 칠백 리를 견딜 수 있을까? 겨울 강의 바람을 잔뜩 안아 본다. 바람 끝에 풀어진 놀이 천천히 물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