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앞에서

 

 

                                                                                             邊海明

 

 사진 속의 그가 웃고 있다. 꽃에 싸여 어제처럼 웃고 있다. 금방 내게 다가오며 손을 내밀고 무어라 말을 할 듯한 모습이다. 만남의 반가움이다. 나는 손을 내밀지 못하고 국화꽃 한 송이를 들고 고개를 숙인다. 그는 웃고 있는데 레테의 강을 사이하고 마주 서보는 마음이 착잡하다. 떠나노라고, 먼 곳으로 떠나노라고 그의 앞에 놓인 국화꽃들이 그를 대신해서 속삭인다. 나도 은밀하게 속삭이며 가슴을 열어 작별인사를 해야 하는데 목이 매어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침묵한 채 작별을 고할 수가 없다. 내 기도가 어설퍼도 그는 여전히 웃고 있다.

 

비가 내리고, 밤이 내려와 먹물처럼 어둠이 번진다.

그의 웃는 모습 뒤에 앉아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함께 그의 과거를 본다. 이 자리가 낯설다. 어색하다. 모두는 침묵한 채 과거의 시간 속에서 얼굴들을 맞대고 사진을 찍는다. 아날로그처럼 정지된 화면들이 하나씩 이어진다. 그는 한 틀 속에서 빠른 속도로 수백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지워진다. 이야기는 영사기처럼 돌아가도 그의 모습은 안개 속으로 멀어져 잡히지 않는다.

만나고 헤어지기까지 30년, 누가 그 만남들의 시간을 긴 세월이라 하는가 허망한 찰나인 것을.

 

오늘 수필문학상 시상식 자리에는 그가 함께 했으리. 그의 마지막 꿈이 담긴 자리였으니 이곳에 오려고 아침 일찍 집을 떠났으리라. 오늘 이 자리를 위해 그는 오랜 날 신과 타협했으리.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그리고 떠나는 여정에서 가벼운 몸짓으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시상식 자리에서 자신의 뒷모습을 지켜보았으리. 그리고 사랑하던 모든 사람들과 문학과 이별을 고했으리.

사랑이여! 안녕, 이리도 소중한 것을.

우리는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가 남긴 발자국과 그가 가슴에 지니고 떠난 훈장이 무엇이였나도.

시상식이 끝나고 기쁜 사람들이 사진들을 찍었다. 순간의 모습을 오래도록 남기려고 사진들을 찍었다. 조금은 긴장되고, 조금은 과장된 표정으로 자신을 특별한 모습으로 드러내려 하면서. 찍는 순간 이미 과거가 되지만 살아 있는 현실을 묶어주는 고리로 만들고 싶어 표정을 만들며 사진을 찍었다. 이별의 슬픔과 절망을 한편에 세우고, 기쁨과 희망과 보람을 은밀하게 자리매김하면서 영원히 기억하고 싶어 그 증표로 사진을 찍었다.

자, 여기 보세요. 찍습니다. 다시 한 번, 움직이지 마세요.

꽃다발을 든 얼굴들이 겨운 기쁨을 드러내지 못한 채 사진 속에 담긴다. 살아 있음에 눈부심이여, 우리 생애에 이리도 값진 순간인 것을.

그들은 꽃다발을 들고 내일을 본다.

 

나는 돌아와 사진첩을 뒤적인다. 사진 속의 내가 웃고 있다. 실제의 모습보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웃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더불어 웃고 있다.

과거의 어느 한 모습들이 영원처럼 웃으며 내 앞으로 온다.

캐나다 호숫가에서 웃고 있다. 러시아 여름의 궁전 앞에서 솟구치는 분수처럼 웃고 있다. 빈의 모차르트 상 곁에서도 음악처럼 웃고 있다. 실크로드에서 돈황 막고굴의 보살처럼 웃고 있다. 지구 도처에서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다시 새 여행지에서 웃어 보일 내 모습을 그려보며 여권 사진을 고른다. 실제의 모습에서 10년은 거슬러올라 그 시간 속의 모습을 집어든다. 좀더 젊은 모습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면서.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불가역성 앞에 나는 시치미를 뗀다.

 

2003년 3월 7일. 사진 뒤에서 봄비가 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