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집짓기

 

 

                                                                                             허창옥

  

며칠 만에 비둘기는 집 한 채를 지었다. 꽃샘바람 지나다니는 플라타너스 가지에 비둘기 집이 생겼다. 겨우내 어디서 살았을까. 이제 잎눈이 맺히기 시작한 나뭇가지에 새 둥지를 튼 것이다.

비둘기 한 마리가 눈앞에서 종종거리며 다닐 때 모이를 찾는 줄 알았다. 내 눈길이 잠시 비둘기 발걸음을 따라가는데 순간 길 건너 플라타너스 가지로 날아간다. 그렇게 날고 앉기를 거듭하는가 싶더니 어느 사이에 또 한 마리가 따라왔다. 아마 부부인 것 같다.

비둘기가 집을 짓기 시작했다는 걸 한참만에 눈치챘다. 마당 어귀의 화단에서 연산홍 잔가지를 물어다 나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하는 짓을 가만히 보니 수월치가 않다. 우선은 쓸 만한 목재 찾기가 마땅찮은 듯 화단 여기저기에 머리를 박고 뒤진다. 요행, 잔가지 하나를 찾으면 짧은 부리로 물기를 시도하는데 단박에 되지가 않는다. 여러 번 물고 놓치고 하다가 겨우 균형을 잡으면 기분 좋게 비상을 한다.

하도 딱해서 도와줄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연산홍 가지를 일부러 여럿 분질러서 떨어뜨려 놓고 기다렸더니 비둘기가 날아와서 하는 양이 우습다. 부리로 몇 번 건드려 보더니 화단으로 가서 제가 찾는다. 마음에 안 들었다 이거지. 하긴 제 집 지을 목재니 그 구조물에 알맞은 길이와 굵기를 제가 알겠지. 괜한 선심이 되어서 민망하다.

수성못 주변에 ‘안개시인’이란 경양식 집이 있다. 지난 해 늦가을에 갔더니 안마당에 낙엽을 수북히 깔아놓았었다. 일부러 깔아놓아서 그리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통유리를 통해 내다보니 그런 대로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그 집 처마 밑에는 나무로 만든 비둘기 집이 여러 개 얹혀 있었는데 비둘기들이 은행잎을 하나씩 물어서 끈질기게 나르고 있었다. 겨울 채비로 푹신한 낙엽 이불을 만드는 모양이었다. 그때, 모든 생명 있는 것은 다 나름대로 제 삶에 충실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다갈색 무늬가 진 깃털을 보면 멧비둘기 같은데 산도 집도 아닌 도회지의 가로수에 둥우리를 지어야 하다니.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의 ‘성북동 비둘기’처럼 안됐다. 그 척박함을 이기고 한 쌍의 새는 집짓기를 끝낸 것이다.

사실 집이 완성되었는지 어떤지 내가 알 길은 없다. 나뭇가지에 까만 역삼각형의 집이 형체를 드러내면서부터 비둘기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집을 다 지은 비둘기가 알을 품고 있는 모양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각북 가는 길, 헐티재 부근에서 참나무에 지어진 커다란 까치집을 본 적이 있다. 그 둥지는 드물게 컸다. 길 건너 플라타너스 가지에 지어진 둥지에 비하면 대저택이라 해도 될 것 같았다. 몇 해 전에 지어졌는지 얼른 보아도 얼기설기 엮어진 잔가지들이 썩은 것처럼 보였다. 그런 채로 비바람에 망가지지 않고 건재한 것이 새들에게도 그들만의 특별한 공법이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나는 새들의 생태를 잘 모른다. 하나의 둥지를 만들고 거기서 얼마나 오래 사는지 알지 못한다. 어쩌다 비둘기가 집 짓는 것을 자세히 보게 되었다. 사흘 혹은 나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며칠을 새는 부지런히 재료가 될 잔가지들을 물어다 날랐다. 물었다가 떨어뜨리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는데 그 인내심이 대단했다. 그렇게 하나를 얹고 둘을 세우며 마침내 삶의 터전을 만들어내었다. 새 생명을 위해서, 그 생명이 주는 기쁨과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 새는 부리가 아프도록 잔가지를 찍어내고 날개가 무겁도록 나르는 고단함을 마다하지 않았으리라.

몸둘 곳 마땅찮은 삶이 어디 비둘기뿐이랴마는 도무지 편할 것 같지 않은 도시의 가로수에 집을 지은 것이 못내 가슴 아리다. 생각 같아서는 격려의 방문이라도 하고 싶지만 저와 내가 사는 법이 워낙 다르다 보니 그럴 수가 없다. 다만 새 둥지에 깃들인 비둘기 가족의 삶이 좀더 안온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