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그만 차리는 여인

 

 

                                                                                                염혜정

  

아침 시간은 늘 분주하다. 주스와 토스트에 우유 또는 일본 된장국이나 미리 끓여놓은 고깃국에 김, 계란 프라이와 밥이 우리 집 아침이다. 그러나 식구들이 제대로 다 먹는 일은 거의 없고 주스만 한 잔 마시거나 밥과 국만 먹거나 아니면 늦어서 시계를 보며 그냥 뛰쳐나가는 것이 보통이다. 요즘엔 선식이라 해서 미숫가루에 우유와 꿀을 타먹는 것이 아이들 아빠의 아침이 되고 말았다. 곡식 가루가 뱃속에 들어가서 열 배, 스무 배로 부피를 늘려 공복감을 없애주겠거니 한다.

식구들이 나가는 사이사이 나는 커피에 우유를 많이 타서 한 잔 마신다. 야행성인 나는 아침 시간이 괴롭다. 전엔 느릿느릿 집안을 치우거나 이불 속으로 다시 기어들어가 한두 시간 더 자곤 했다. 사무실에 나가야 하는 요즘은 내게도 그때부터 시각을 다투는 출근 준비가 시작된다. 나가면서 세탁소에 신사복 바지를 맡기니 내 출근은 10시를 넘기고 만다. 한밤중에 세탁기를 돌리고 새벽에 급한 와이셔츠 다림질을 한다. 집안은 귀신이 출몰하기 일보 직전으로 아수라장이다.

신문로에 사무실과 전시 공간을 마련했다. 전시 준비로 하루 종일 그야말로 눈코 뜰 새가 없다. 집에 있을 때는 하루 종일 가지 않던 시간이 왜 이리 빨리 지나는지.

작은아이의 학원 시간에 맞추어 저녁을 5시에 먹여야 하는데 번번이 시간을 대지 못하고 늦고 만다. 그래서 아침에 한 솥 가득 쌀을 안치고 예약 취사 버튼을 누르고 나온다. 전화를 걸어 적당히 먹으라고 이르면 아이는 고맙게도 김, 깡통, 스토브 위에 남아 있는 국이나 찌개로 혼자 밥을 차려먹고 버스를 타고 학원으로 떠난다. 찡하다. 이 아이는 대여섯 살 때 미술관에 나가는 어미 때문에 아줌마가 일을 마치고 떠난 오후 5시부터 엄마가 집에 들어올 때까지 한두 시간을 혼자 집을 지키고 있곤 했었다. 퇴근 시간은 언제나 길이 막히니 한 시간 또는 한 시간 반이나 걸려 겨우 집에 닿으면 작은아이 혼자 있다가 뽀르르 달려와 엄마를 맞곤 했다. 그래도 이 아이는 불평도 없이 잘 자라주었다.

큰아이가 중학교 들어가고 작은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할 때 나는 미술관을 그만두었다. 중요한 시기에 아이들과 좀더 가까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속으로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 나는 ‘또 한 번 밀리고 마는구나’ 했다. 삶의 고비 고비, 선택의 순간이 닥치면 나는 언제나 밀렸다. 논문 쓰는 도중에 아이를 가지고 공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일, 귀국할 때 6개월 더 혼자 남으면 학위를 마칠 수 있었는데 귀국하고 말았던 일, 서울에서 작은아이를 가지며 서울에서라도 대학원 공부를 할까 하다가 포기한 일 등, 울면서 밤을 새워도 한걸음씩 밀리고 마는 나를 어쩌지 못했다. 내가 못나서였음을 이제와 돌아본들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나는 힘든 대학원 공부를 했음에도 학위가 없고, 일을 해도 내겐 늘 뒷전에서 숨어서 하는 일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미술관 일이 뭐 대수랴, 작은아이가 웃으며 유치원에 잘 다녀도 알맹이는 빠진 생활을 하는 것이 눈에 보이자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일을 그만두었다. 아이들에 대한 집착이 그만큼 강해서였을까.

그로부터 10년, 큰아이는 대학생, 작은아이는 엄마가 저를 아이 취급한다고 불평인 중학교 3학년으로 자랐다. 집안 사정으로 사무실에 나갈 수밖에 없는 요즘, 아이들은 아파트 안이 엉망으로 어질러져도, 저녁을 차려주지 못하는 날이 계속 되어도 불평 한마디 없이 잘 지내준다. 주말에 한번 잘 차려먹이지 하는 것이 주중의 내 심정이지만, 주말이 되면 한 주 동안 지친 몸으로 부엌에 들어가도 이제껏 뭘 어떻게 먹여왔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많다. 주말엔 다시 외식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제대로 된 밥상은 그만 차리게 되었다.

음식점의 선택도 달라졌다. 집에서 한식을 주로 하니 외식을 할 때는 늘 양식이나 일식, 중국식을 선호했었다. 요즘, 제대로 조리한 한식을 싼 값으로 하는 집이 없을까 궁리중이다. 한식에 들어가는 손맛, 그 정성이 그립다.

저녁은 늘 학교에서 사먹고 들어오던 큰아이가 어느 날 일찍 들어와 나를 불렀다.

“엄마가 해주는 밥이 먹고 싶어서 일찍 들어왔어, 엄마.”

나는 갑자기 콧등이 시큰해지며 “그래, 오늘 나도 어쩐지 일찍 들어오고 싶었어” 하고 대답한다. 냉장고를 뒤져 오랜만에 한 상 가득 저녁을 차렸다. 아이들은 슬며시 웃으며 전에는 하지 않던 아부를 한다.

“엄마가 해준 밥이 제일 맛있어.”

그러나 다음 날도 나는 아이에게 전화했다.

“엄마가 일이 늦어지니까 피자를 시켜먹든지, 식당에 시키든지 해라.”

아이는 그러마 하고 대답을 한다. 그래도 나는 아이가 다시 깡통을 따고 김을 꺼내 한 끼를 때울 것을 눈에 보듯 알고 있었다.  

 

 

 

<현대문학>으로 등단(92년). <현대수필> 문학상 수상(2002년).

저서 『어둠의 고개를 넘어서 가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