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날의 단상

 

 

                                                                                            박철호

  

오늘은 졸업식이 있는 날이다. 출근 채비를 하면서 어제처럼 대충 입고 나갈까 하다가 정장을 했다. 혹시 어떤 학생이 사진이라도 한 장 같이 찍자고 하면 어떡 하나 싶어서였다. 그런 일만 아니라면 식장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터라 굳이 의복에 신경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졸업식 시간이 가까워오면서 캠퍼스는 졸업생과 하객은 물론 그들이 타고 온 차량으로 가득 찼다. 뿐만 아니라 사방에서 몰려온 장사들로 캠퍼스는 시골 장터 같은 분위기다. 파는 물건도 예전에는 꽃이나 필름 같은 품목이 고작이었으나 요즘엔 커피, 스낵, 소주, 안주 등 포장마차 수준의 음식 판매점까지 여기저기 눈에 띈다. 멀리 경상도와 서울에서 온 ‘식당차’도 여럿 있다.

그런 바깥 풍경을 창문으로 내다보면서 연구실을 지킨다. 특별히 연구에 집중하는 것도 아니면서 누가 인사하러 왔다가 허탕을 칠까 봐 오후 내내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이미 많은 인파가 빠져나간 캠퍼스는 한산하기 이를 데 없는데 여태 찾아오는 학생은 아무도 없다. 적어도 한두 사람은 들렀다 갈 줄 알았는데 실은 그렇지 못했다.

내 딴엔 지난 4년 동안 학생들에게 애정을 쏟았다고 생각했는데 학생들에게 나란 존재는 과연 무엇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저 어쩌다 추억 속에서만 간혹 들춰지는 먼지 쌓인 앨범 속의 사진 한 장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씁쓸하다. ‘요즘 학생들이 다 그렇지 뭐’ 하는 생각과 ‘내게 부족한 점이 많은가 보다’는 생각을 교차시켜 보면서 늦은 퇴근을 서둘렀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한다’고, 내가 꼭 그런 것 같다. 이십 여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지금의 학생들이나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의 자화상이나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 옛날 선생님과 나 사이에는 사제의 정보다는 왠지 모를 거리감이 더 무겁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 내가 느끼는 것처럼 그때도 선생님들의 마음은 열려 있었을 텐데, 내가 선생님을 어렵게 느끼거나 최소한의 예의조차 깨닫지 못해서 졸업식 날 선생님께 인사도 못 드리고 가족 틈에 섞여 교문을 빠져나왔다. 어떤 경우에는 선생님께 특별한 고마움이나 존경심을 느끼지 못한 탓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오늘 내가 왜 하루 종일 학생들이 찾아주기만을 기다렸는지 알 수가 없다. 경계해야 할 알량한 ‘권위의식’이 발동했나 보다. 뻔히 잘 알면서도 또 한 번 스스로에게 속은 것이다. 확실히 그래야 할 어떤 이유나 당위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서도 공연히 기대를 하고, 그 기대를 저버린 결과 때문에 상심하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아동 교육적인 관점에서는 ‘옆구리를 찔러서라도 절을 받아야 하는’ 것이 백 번 옳은 일일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몰라서 못하는 것을 무턱대고 나무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알 것 다 알고 지성인을 자부하는 대학 졸업생들에게는 ‘자율적인 예(禮)’만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학생들에게 평소 그런 가치관을 심어주지 못한 나의 불찰이 더 큰지도 모른다. 나는 예(禮)에 대한 학생들의 무감각이나 심지어 경거망동(輕擧妄動) 수준의 탈선에도 따끔하게 야단을 치지 못한 나약하고 비겁한 선생이었다. 학생들에게는커녕 며칠 전 중학교를 졸업한 딸아이에게도 “졸업식 날 선생님과 사진 한 장 같이 찍고 인사도 드려라”고 일러주거나 내가 학부모로서 직접 딸과 함께 선생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는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지 못했다. 그날 딸의 담임선생님은 지금의 나보다 더 실망이 크고 서운했을 것만 같다.

이렇게 나는 실행하지 못하면서 남에게만 실행하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나쁜 습성’에 대한 자각이 퇴근길의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몸에 밴 예(禮)가 아니라 의식 속에 박제(剝製)로 남아 있는 예(禮)에 너무 오랫동안 길들여져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오늘은 최고 학부 졸업이란 사실이 무겁게 양 어깨를 짓누르는 고단한 날이다.

 

 

 

<계간 수필>로 등단(99년).

강원대 농생대 생명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