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중국의 봄

 

 

                                                                                            심규호

  

간만에 햇살이다. 며칠간 내내 칙칙한 비의 세계에서 살았다. 음울한 것은 비 때문만이 아니었다. 내원도 알 수 없고, 어느 곳에 잠복하고 있는지도 모르며, 어떻게 예방할 수도 없으며, 일단 걸리면 빠져나오기 힘든 적(敵), 이른바 사스라는 병독(病毒0이 더욱 깊은 우울의 심연이 되고 있었다. 스물거리는 공포가 도심에 가득했다. 그러나 밤거리는 예전처럼, 아니 예전보다 더욱 아름다웠다. 사이렌 소리에 놀란 처자가 연신 불안한 듯 밖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저 늦은 봄비가 내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렇게 2003년 중국의 봄은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다.

중국은 sars란 말을 쓰지 않는다. 에이즈를 애자병(艾滋病) 또는 애사(愛死:사랑하다 죽는 병)라고 부르거나, 비타민을 웨이타밍(維他命:그의 생명을 유지하는 약이란 뜻)이라고 부르는 등 음역(音譯)을 하면서 교묘하게 의역의 여지를 남기는데, 익숙한 사람들이나 사스만은 굳이 비전형폐렴(非典刑肺炎) 또는 간칭하여 ‘비전’을 고집한다. 사스의 발음이 살사(殺死)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사스는 실제로 수많은 인명을 살사하고 있다. 매일 중앙 텔레비전은 전국 방송을 통해 현재 발병자와 사망자, 의사환자의 숫자를 발표한다. 특히 심한 북경은 하루 발병자가 이미 1백 명을 넘어섰다. 또한 죽어가는 이들의 숫자 또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일단 발병하면 즉시 그 장소를 격리라는 이름으로 폐쇄시켜 그 안에 있는 누구도 밖으로 나올 수 없다. 중국 유수의 대학인 인민대학은 물론이고 재경대학, 중앙민족대학 등을 비롯한 십 여 개 대학이 대문을 굳게 닫고 내왕을 금지시켰다. 중국 북경, 그것도 학원가로 유명한 해정구(海淀區)에서 가장 많은 발병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황홀한 봄의 향내에 도취해 있을 대학 캠퍼스가 지금은 격리 병동이 된 기숙사와 밖의 학생들이 서로 애틋한 그러나 도무지 어찌할 수 없음의 눈길을 주고받을 뿐이다. 격리 기숙사 담장을 따라 줄에 매단 둥근 케이크 상자가 올라간다. 누군가 오늘 생일인가 보다.

사스의 공포로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미래가 더욱 두려운 북경 시민들은 물론이고 아직까지 크게 번지지 않은 상해 시민들까지 일용품 사재기에 나섰다는 소식도 들린다. 중국 정부가 사스 방역에 주력하는 한편 물가 안정과 사스 관련 의약품 등의 유통과 가격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그만큼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사스 예방약은 매절되었고, 어쩌면 치료약까지 나왔을지도 모른다. 불안과 공포에 편승한 상혼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위기를 기회로 여기는 장사꾼들은 장사를 모른다.

천진 근처 작은 마을에 격리 수용소를 만든다는 소식에 그 마을 사람들이 난동을 일으키자 경찰이 출동하고, 그 중 몇 명을 구속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대만 어디선가는 병원을 폐쇄한다는 소식에 어느 간호사가 창문 밖으로 뛰어내린다고 했다던가? 서울 소식도 들렸다. 우리 동네 병원에 사스 환자를 수용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겠지. 공기로 전염되기도 한다는데, 우리 어린 자식들은 어찌하라고 우리 동네 병원을 염병染病 전문병원으로 지정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환자 치료에 나선 의사와 간호사들의 헌신은 실로 눈물겹다. 물론 그것이 그들의 직업이라고 할지라도, 그래서 그들을 백의천사라고 부를지라도, 결코 그들은 사스에 전염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두려움과 걱정과 끊임없이 뛰는 심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후퇴하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는 뒤늦게 광동성의 한 병원 의사와 간호사에게 혁명열사의 칭호를 부여하였다. 이미 전염되어 이 세상을 떠난 그들에게 혁명열사의 칭호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들이 보여준 헌신적인 희생에 답하는 길이 어쩌면 그것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재미 화교가 인터넷을 통해 인민일보에 편지를 보내왔다. 구구절절이 고국의 동포들을 격려하는 내용이었다. 특히 희생당한 간호사 일지를 읽으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하면서,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전해 들은 교훈, ‘재난을 당하면 같이 대처하고, 행복은 함께 나눈다(有難同當 有福共享)’는 말을 되새기며 이번 난관을 함께 극복해 나가자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한국의 모 신문사 홍콩 특파원이 인터넷에 실은 기사 내용도 감동적이긴 마찬가지이다.

가족들을 모두 귀국시키고 홀로 남아 있어야만 하는 홍콩의 한국인 가장들이 얼마나 노심초사하면서, 그러나 결코 굴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 그는 써내려 가고 있었다. 신문 기자답지 않게 감정이 이리저리 흘러다니는 그의 글을 통해 우리 나라의 경제가 홍콩과 얼마나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지, 홍콩에 그들이 없으면 우리 경제가 얼마나 큰 파국을 맞게 되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바로 우리들을 위한 희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의 가족들이 차라리 아빠와 함께 죽겠다며 다시 홍콩으로 돌아오겠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누군들 콧날이 시큰하지 않겠는가!

분명 비전형폐렴을 조기에 소멸시킬 수 있는 세 번의 좋은 기회를 놓쳐 결국 이 지경으로 만든 중국 정부 당국은 비난을 당해 마땅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을 비난할 때가 아니다. 지금은 그들을 도울 때이다. 지금은 그들의 노력과 일련의 조치에 적극적으로 따를 때이다. 그리하여 함께 대처해 나갈 때이다. 우리는 그들과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영원히 함께 살아야 한다. 결코 더러운 짱골라라고 욕할 것이 아니다. 우리는 더럽다는 그들에게 문화를 전달받았고, 심지어 그들에게 압제당할 때도 있었다. 오히려 지금은 우리가 점잖게 그들을 토닥거려야 할 때이다. 재난을 당하면 같이 대처한다는 의젓한 모습을 보일 때이다.

굳이 자연의 섭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차면 기울고, 극(極)에 달하면 반(反)하는 법이다. 언젠가는 사라지겠지. 그렇지 않다면 홍콩 특구 장관이 말한 대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할지도 모른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렵다. 다만 죽음 앞에서 의연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인간뿐이다. 비전형폐렴이 만연하고 있는 2003년 중국의 봄날,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계간 수필>로 등단(99년). 제주 포럼 대표.

제주산업정보대학교 중어과 교수. 현재 중국 양주대학 방문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