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평>

 

한흑구韓黑鷗의

 

‘밤을 달리는 列車’

 

 

일  시 : 2003년 2월 15일

장  소 : 수필문우회 회의실

참석 인원 : 문우회 회원 24명

사  회 : 정진권

정  리 : 최순희

 

 

  

사회 : 안녕하십니까? <계간 수필> 제32호, 2003년 여름호를 위한 합평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합평 작품은 수필가 한흑구韓黑鷗(1909~1979) 선생의 ‘밤을 달리는 열차’입니다.

한흑구 선생은 1909년 평양에서 출생했으며, 본명은 세광世光입니다. 1929년 보성전문 상과에 입학했고, 1933년 미국 템플 대학 신문학과에 유학하였습니다. 어떤 자료에는 1929년 노스파크 대학 영문학과에 유학했다고 나와 있기도 합니다. 1935년 위 대학을 수료했고, 일제 말기 사상범으로 1년간 투옥되기도 했으며, 광복 후 월남하였습니다. 1958년부터 1974년 정년 퇴임할 때까지 포항수산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고, 1979년 타계했습니다.

선생은 1934년 월간지 <대평양大平壤>, 순수 문예지 <백광白光>을 창간 또는 주재했으며, 1971과 1974년에 일지사에서 수필집 『동해산문東海散文』과 『인생산문人生散文』을 각각 상재했습니다. 시·소설·평론 등의 다양한 글쓰기를 했지만 한흑구 선생은 역시 수필가로 널리 알려진 분입니다.

오늘 합평할 ‘밤을 달리는 열차’는 1957년 동아일보에 발표된 글로 첫 수필집 『동해산문』에 실려 있습니다.

 

오늘은 유경환·김수봉·염정임 선생님, 이렇게 세 분께서 지정 토론을 해주시겠습니다. 지정 토론자들께서 발표하신 다음 객석에서 이분들께 질문하는 방식으로 토론을 진행하겠습니다. 먼저 문혜영 선생님께 낭독을 부탁드립니다.

 

<본문>

 

밤을 달리는 列車

 

 

 

저녁 아홉 시, 서울을 떠나서 釜山으로 달리는 밤 열차 속에 나는 자리를 하나 잡았다.

달도 뜨지 않은 캄캄한 밤을 열차는 漢江을 건너자 소리를 지르면서 南으로 달음박질을 하였다.

 

列車 안에는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交椅 하나에 세 사람씩 앉아서 서로 어깨를 비벼대고 있었다. 그러나 좁은 자리를 불평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나의 옆에는 젊은 대학생이 타고 있었고, 또 창가에는 늙은 할머니가 타고 있었다.

맞은편 자리에는 안경을 쓴 二十대의 청년이 앉아서 희미한 불빛 아래서 신문을 읽고 있었다.

그 옆에는 四十대의 신사 한 분, 또 그 옆에는 三十대의 피부색 좋은 여인이 앉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 캄캄한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통로를 건너서, 나의 왼편 자리에는 노동복을 입은 三十대의 젊은이가 둘, 그 옆 창가에는 보따리 장사꾼인 듯한 四十대의 여인이 앉아 있었다.

그 맞은편 자리에는 六十이 넘어 보이는, 수염이 흰 늙은 할아버지가 파리한 얼굴을 하고 가로누워서 가끔 기침을 쿨룩쿨룩 하였다.

늙은이가 누운 발끝에는 늙은이의 딸인 듯한 四十대의 시골 여인이 늙은이의 등을 어루만져 주고 있었다.

 

기차는 어느덧 天安驛을 지나서 鳥致院으로 향하여 달리고 있었다.

밤은 깊어서 기차 바퀴가 더욱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달카닥 달카닥…….”

단조로운 소리였다.

 

“따스한 벤또(도시락)가 나왔습니다. 시장한 손님에게 따스한 벤또가 나왔습니다.”

도시락 장수가 나타났다.

“나 하나 주시오.”

맞은 자리에 앉아 있던 뚱뚱한 신사가 五百圓짜리 하나를 꺼내었다.

“나도 하나 주세요.”

그 옆에 앉아 있던 三十대의 피부색 좋은 여인도 하나 받아들었다.

 

통로 건너편 맞은 자리에 누워 있던 늙은이는 또 기침을 시작하였다.

“케힘…, 헤케힘…….”

딸인 듯한 시골 여인은 일어나려는 늙은이의 허리와 등을 받들고 손수건으로 늙은이의 입을 닦아주었다.

늙은이는 “에헤음!” 하고 한숨을 쉬고, 또 다시 자리에 눕자 희멀건 눈으로 시커먼 차창을 내다보았다.

“아직 병이 낫지 않았는데 왜 퇴원을 했어요? 잘 고치고 나오지.”

맞은편에 앉아 있던 장사꾼인 듯한 四十대의 여인이 딸인 듯한 여인에게 물었다.

“병원에서도 무슨 병인지 모른다요. 석 달이 되었어도 안 낫는 걸……. 돈도 없고, 죽어도 집에 가서 죽는다요!”

늙은이의 딸은 기운 없이 대답하면서 새끼손가락으로 눈시울을 문질렀다.

늙은이는 또 기침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뼈만 남은 흰 손을 차창 가로 내둘렀다.

“가만히 누워 계세요. 다리를 이리로 뻗으시고, 병을 완전히 고치시지도 않고!”

장사꾼인 듯한 여인은 친절하게 말하면서 늙은이의 다리를 자기 옆으로 걸치게 하였다.

“죽어야지! 집에 가서 죽어야지!”

늙은이는 혼잣말 같이 거쉰 목소리로 말하며 또 캄캄 어두운 차창을 쳐다보았다.

창 위에는 달도 별도 새벽놀도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기차는 쉬지 않고 칙칙 펑펑 소리를 내며 천천히 기어올라갔다.

언덕을 넘고 굴을 뚫고 秋風嶺 고개를 올라가는 모양이었다.

옆에 앉은 대학생도 늙은 할머니도 다 숨소리도 없이 교의에 기대서 잠이 들어 있었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二十대의 청년은 입을 있는 대로 벌리고 고개를 꺾은 채 수그려져 잠을 자고 있었다.

신사도 여인도 다 머리를 맞대고 잠을 자고 있었다.

통로 옆에 있는 노동자 두 사람도 장사꾼 여인도 늙은이의 딸도 다 고개를 숙이고 잠들고 있었다.

시계는 밤 두 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혼자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면서 늙은이의 희멀건 눈이 띄어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의 턱에 매달린 흰 수염을 나는 말 없이 바라보았다.

“죽어야지! 집에 가서 죽어야지!”

금방이라도 또 늙은이가 일어나서 이렇게 말할 것만 같아 보였다.

 

기차는 아직도 숨이 가쁘게 어두운 밤의 고개를 넘어가고 있었다.

칙칙 펑펑 언덕을 기어오르고 산의 굴을 뚫으면서 아직도 秋風嶺 고개를, 우리 나라의 지붕인 秋風嶺 고개를 넘어가느라고 애를 쓰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나도 以北에 있는 나의 집을 한 번 다시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그러나 기차는 아직도 숨찬 소리를 내면서 秋風嶺을 넘어 南으로 달리고 있었다.

 

달도 별도 새벽도 없는 캄캄한 밤을 기차는 그냥 내달리고 있었다.

 

                                                                                      <1957, 동아일보>

 

 

사회 : 감사합니다. 먼저 유경환 선생님부터 시작해 주십시오.

유경환 : 저는 타일로 만든 모자이크 그림을 생각해 봤습니다. 타일 하나하나를 따로 떼어놓고 볼 때는 의미를 발견할 수 없으나, 전체를 완성해 놓았을 때 무엇을 그린 그림인지 비로소 눈에 들어오게 되지요. 이 수필 속에는 20대에서 60대에 이르는 많은 승객들이 등장합니다. 그 사회를 사는 개인으로서는 별 의미가 없으나, 전체를 통해서는 한 수필가의 마음의 거울에 비친 1950년대 한국 사회의 단면을 드러낸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개별적인 모자이크를 통해 보여주는 전체적인 그림은 무엇인가? 저는 인생무상을 느꼈습니다. 절망이라고 하면 너무 비참하고, 절망 직전의 인생무상 말입니다. 같은 열차를 타고 가면서, 단 한 사람 40대 여인을 제외하고는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는 60대 노인의 고통에 죄다 무관심합니다. 타인에 대한 위로나 관심도 없으며 고통을 나누려는 마음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없다는 얘기지요. 선생은 굴을 뚫고 지나 우리 나라의 지붕인 추풍령 고개를 넘어가느라 애를 쓰는 열차로 당시 사회상을 상징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왜 60대 노인을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는 노인으로 기술했을까요? 60대야말로 전후 50년대 후반의 시대적 고통을 가장 심각하게 감당한 세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김수봉 : 저는 전후 좌우로 렌즈를 돌려가면서 비디오를 찍듯 열차 안의 풍경을 스케치한 글로 읽었습니다. 대학생·신사·노인 환자·30대 여인 등등, 필자가 앉은 위치에서 앞으로 옆으로 또 건너편까지 살펴보는 방식이지요. 그런데 이들은 하나같이 고달픈 군상들입니다. 제목이 암시하듯, 당시 우리 나라가 달려가는 암울한 상황을 보여주었고, 또 미리 그렇게 의도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어둠 속을 달리는 열차처럼 암울한 현실을 달려가지만 창 밖에는 달도 별도 새벽놀도 없고, 따라서 개개인에게도 또 나라 전체에게도 희망이 보이질 않지요. 60대 병든 노인의 기침 소리란 얼마나 처량합니까. 말미에서 작가는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짐으로써, 가정과 나라의 평안을 갈망은 하고 있지만 전망은 참으로 암담하다고 염려하며 쓴 글로 보았습니다. 또 대화나 장면 묘사를 통해 상황을 간접적, 비유적으로 표현한 점에서 소설의 한 부분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염정임 : 선생의 본명은 한세광으로, 평양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929년 일제의 요주의 인물이 된 선생은 당시 도산 안창호 선생과 함께 시카고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아버지를 찾아 미국으로 가기 위해 요코하마에서 상해로 가는 배를 타게 되었지요.

그런데 한 떼의 갈매기가 배를 따라오다 다른 갈매기들은 더 이상 따라오지 않는데 유독 검은 갈매기 한 마리가 계속 뒤쫓아오고 있었답니다. 그 모습이 마치 나라 잃고 고향을 떠나 방랑하는 자신의 신세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필명을 검은 갈매기, 즉 흑구黑鷗라고 쓰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나의 필명의 유래’라는 글을 통해 밝히고 있습니다. 선생은 포항 수산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면서 도로우와 에머슨의 자연주의의 영향을 받아 제목도 자연·비·바다 등 자연에 귀의하는 내용의 수필을 많이 썼습니다. 그런데 유독 오늘 합평 작품에는 사람이 많이 나옵니다.

한흑구 선생은 1934년 중앙일보에 연재한 수필론을 통해 문학으로서의 수필관을 피력한 바 있습니다. 수필은 창작 문학의 하나로서 예술적 가치를 지녀야 하고, 어떤 주관적인 주제가 있어야 하며, 아울러 시 정신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한 문장마다 행갈이를 하는 등 산문시와 같은 수필을 쓰신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지금 우리가 흔히 보는 수필문학 형식과는 아주 다른데, 한흑구의 스타일이나 개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선생의 수필엔 문장의 리듬을 중요시하는 느낌이 있는데, 여기서도 달카닥 달카닥 하는 기차 바퀴 소리에서 리듬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기차가 칙칙 펑펑 소리를 내면서 추풍령을 올라가는 장면이 시처럼 두 번씩 반복되어 있는데, 이것 역시 이분 수필의 특성입니다. 모든 것이 암담하고 사회적으로 혼란스런 분위기에서, 새로운 나라로 태어나고 보다 나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진통을 겪는 과정을 상징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보리’에서 보듯 다른 글에서는 강인한 정신력과 희망적인 주제가 많은데 반해, 이 글은 상당히 어둡습니다. 이분은 새벽을 매우 좋아하고 희망의 상징으로 보았는데, 여기서는 새벽도 없다고 했으니까 상당히 절망적이지요. 그리고 민족과 동포에 대한 애정과 연민의 정을, 승객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세밀히 묘사함으로써 나타내지 않았나 봅니다. 묘사로만 일관했지만 마지막 7행에서는 작가의 심중을 헤아려볼 수 있습니다. 암울한 현실에 대한 수심, 그래도 조그마한 희망이라도 갖고 싶어하는 작가로서의 마음을 표현한 글이라 생각합니다.

 

사회 : 세 분 중에서 아직 못다 한 말씀이 있으신 분은 지금 부연해 주십시오.

유경환 : 한흑구 선생 수필의 전체적 특징은 수필 소재에 대한 시선이라고 할까 서술 기준이 매우 가치중립적이란 점입니다. 즉, 자기 주관이 철저하게 배제된 객관적 서술 방법을 도입하고 있다는 얘기지요. 시나 소설과는 달리 수필은 주관적인 서술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분은 ‘밤을 달리는 열차’에서 보듯 철저하게 주관을 배제하고 소재를 객관화시켜서 독자 스스로 무엇인가를 찾아내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아마도 템플 대학에서 공부할 때 배운 기법이 아닐까 싶은데, 1930년대 다른 수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지요.

 

사회 : 사회자는 원래 끼여들면 안 되지만 저도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이 수필의 구성요소를 추출해 내면 텍스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첫째, 검은 밤이란 무엇인가? 이 글의 시간적 배경인데, 앞서 두세 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시대의 암울한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지요. 둘째, 열차는 대단히 불편하고 힘들고 아무 전망도 보여주지 못하지요. 단지 힘들게 추풍령을 기어오를 뿐이지요. 당시의 어렵고 무기력한 정치적 현실을 나타낸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 다음 중요한 요소는 승객인데,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이 바로 노인입니다. 연배로 보면 절망하는 승객들을 격려하고 이끌고 가는 역할을 해야 하나, 실상을 보면 얼굴은 파리하고 눈은 희멀겋고 뼈만 남은 손에 연신 기침을 하는 등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단 말이지요. 무슨 병인지도 모른다니 속수무책인 거지요. “죽어야지. 집에 가서 죽어야지”라고 말하는데, 집이라는 것은 우리가 휴식하고 새로운 활력을 얻는 곳이건만 이 노인에게는 병원보다는 좀 편안하게 죽을 수 있는 그런 곳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 지도층의 모습이 그렇다는 것이겠지요. 승객들은 전혀 진취성이라곤 없고 다들 괴롭게 자고 있어요. 지도층이라 할 노인은 죽음의 그림자 속에 속수무책이고 절망적인 상태고요.

그 다음에 지은이 자신은 집은 북쪽에 있는데 남으로 가고 있어요. 분단의 아픔 같은 게 드러나는 대목이지요. 결국 이것은 50년대의 우리 암울한 사회에 대해 한흑구 선생의 시대 의식을 드러낸 글이 아닌가 합니다.

그럼, 이제부터 객석의 질문을 받겠습니다. 세 분 토론자들께 질문해 주십시오.

박재식 : 1956년에 대통령 선거가 있었지요. 해공 선생이 돌아가시고 민심이 소요하는 등, 자유당 말기의 암담한 사회상을 반영한 작품이라는 점에는 이의 없습니다. 소설적인 은유를 하고 있어서, 상허의 단편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자기 주관을 하나도 섞지 않고 당시 시대 상황을 그려냈다는 것은 참 놀라운 기법이라고 봅니다.

‘교의 하나에 세 사람씩 앉아서 서로 어깨를 비비대고 있었다. 그러나 좁은 자리를 불평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같은 대목도, 사소한 듯하나 기막힌 표현이지요. 소설 작법에서 단편 미학의 진수는 좁은 공간, 짧은 시간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내용을 형상화하는 것이라고 하지요. 열차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착잡한 상념을 불러일으키는 등장인물들이 야간에 추풍령을 넘어가는 정경을 가지고 이만한 글을 만들어냈다는 건 소설적인 수필로 매우 성공적이라고 봅니다.

김진식 : 저는 자연을 대상으로 한 그분의 다른 글들에 비해서는 솔직히 조금 실망했습니다. 노장의 무위자연처럼 자연을 있는 그대로 대상화해서 볼 때는 객관적인 서술 방법이 효과적일 수 있으나, 은유로서 사회를 볼 때는 좀더 치열한 모습이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시헌 : 앞서 선생이 사상범으로 1년간 투옥되었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그 내용은 <대평양> 잡지 간행 당시 일제의 사전 검열 중에 독립의식을 고취시키는 수필 한 편에 대해 그건 싣지 말라고 한 것을 무시하고 그대로 게재했다가 투옥된 겁니다.

 

사회 : 윤모촌 선생님께서 보내오신 의견을 소개하겠습니다.

― “이 글의 건조체는 글의 맛을 못 느낄 만큼 담담합니다. 그러나 작품 속에 담긴 의미는 매우 심장해서 담담한 글에 실린 중량감을 읽게 합니다. 광복 후 분단된 조국의 어지러운 현실과 희망이 교차되는 상황이 ‘밤을 달리는 열차’로 상징되었습니다. 열차 속의 승객 묘사와 추풍령을 힘겹게 넘는 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유의 무게와 깊이를 지닌 건조체 문장이 비범한 면을 보이는 작품입니다. 밀도 없고 장황하여 수필의 격을 저하시키는 오늘의 글들과 비교하면서 음미해야 할 작품이고, 마지막 줄에서 그것을 더 극명하게 읽게 됩니다. 한편, 산문 구성에서는, 앞의 내용과 문맥이 이어지는 경우에는 시의 형태처럼 띄어서는 아니 되고, 행갈이로 토막 글을 만드는 것도 아니 됩니다. 원문도 과연 이러한지 궁금합니다. 의자·좌석이라 하지 않고 ‘교의交椅’라고 한 것으로 본다면, ‘할아버지·할머니’가 아니라 ‘노인·노파’이지 않았을까요?”

 

사회 : 텍스트는 글자 한 자 바꾸지 않은 원문 그대로입니다. 다만 세로쓰기로 되어 있어, 원문에서 동그라미로 구분해 놓은 곳을 여기서는 1행을 띄어 표시한 것만 다릅니다. 그밖에 다른 말씀은 없으신지요?

허세욱 : 열차를 저는 ‘축도’라는 말로 바꾸고 싶습니다. 50년대 말의 한국 사회의 모든 병증이 다 나왔거든요. “죽어야지!”를 특히 추풍령을 힘겹게 올라가는 부분에서 몇 번씩 반복 강조한 점이 상당히 애절하게 다가옵니다.

추풍령을 고통의 절정으로 보고 거기서부터는 이제 내려간다, 이젠 나도 죽으러 간다, 그리하여 안식에 대한 강한 의지와 염원을 표현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고향은 못 가니 이젠 추풍령도 넘었겠다, 그냥 이렇게 가야지, 이렇게 말미에는 매우 귀의적인 염원이 보여서 더욱 애절하게 여겨졌습니다.

 

사회 : 광복의 벅찬 감격을 담은 ‘닭 울음’이나 ‘새벽’처럼 선생의 글은 매우 애국적이고 희망적인 것이 많은 편인데, 이 글은 사실 상당히 절망적입니다.

김수봉 : 열차와 기차를 혼용하고 있는데, 요즘엔 ‘열차’라는 말로 통일되었지요. 1957년에는 ‘열차’라는 말은 쓰이지 않았을 것 같은데, 원문에도 이렇게 되어 있습니까?

 

사회 : 아까 말씀드린 대로 틀림없는 원문 그대로입니다.

김수봉 : 저녁놀이란 말은 있지만 새벽놀이란 말도 있는지요? 말뜻은 저도 짐작이 갑니다만 사전에는 나와 있지 않던데요.

 

사회 : 옛 시에 ‘산노을(山霞)로 아침 밥 해먹고…’라고 한 것이 있고, 아침놀이란 말이 있으니 아마 새벽놀이란 말도 있을 겁니다.

염정임 : 한흑구 선생은 시·수필·소설을 다 쓰셨지만, 수필에 대한 애정이 특히 컸고 중년 이후엔 수필을 중점적으로 쓰셨습니다. 1934년에 이미 수필론을 쓰는 등, 수필문학사적으로도 상당히 비중 있게 다뤄질 만한 분이라고 봅니다. 다만 이 글의 산문시 같은 면이나 문단 나누기 등의 문제를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사회 : 저는 문장마다 행갈이를 한 점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산문은 시와 달라서, 산문대로의 사유의 단위가 있는 거니까요. 그리고 수필을 상당히 일찍 발표하고 수필론까지 쓰신 분으로서 수필문학사적으로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함께 연구해볼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진식 : 산문의 문학정신에 시 정신을 접목하여 이미지의 통일성이라는 점에 더 비중을 뒀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엄정식 : 묘사가 상당히 의도적이고 인물들도 너무 작위적이어서 실제 상황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어떤 목적을 갖고 소설적인 글을 엮기 위해 소도구로 마련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그렇게 의도했다면, 너무 어설프고 설득력이 약하거든요? ‘청년은 입을 있는 대로 벌리고 고개를 꺾은 채 수그러져 잠을 자고 있었다’고 했는데, 제가 실제로 해보니까 너무 어설픈 픽션 같더라고요.(웃음)

유경환 : 그래서 제가 아까 모자이크 하나 하나는 의미가 없는데 전체를 봐야 그림이 그려진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이지요.

고봉진 : 엄 선생님이 지적하신 그 젊은이만 해도 실은 입이 다물어지는 자세이지요.(웃음) 누워 있는 노인의 등을 발치에 앉은 딸이 만져준다는 것도 과연 가능한 일인지 궁금합니다. 언뜻 듣기엔 좋은 수필이라고 의견이 모아지는 듯하나, 이런 수필이 과연 바람직한지 어떤지를 특히 이 글을 합평 작품으로 고른 사회자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사회 : 어려운 시절에 다른 문학인들이 감옥을 들락날락할 때에 수필가들은 자연 얘기, 가족 얘기 등등 편안한 소리나 하고 있다는 비난을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글을 읽었을 때 수필로도 시대 상황을 웬만큼 그려낼 수 있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때문에 고른 것입니다.

이런 글이 수필로서 바람직한가 아닌가는 개인의 평가 기준에 따라 다를 것이므로 사회자로선 뭐라 말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작위적이란 말에 일부 공감은 하나, 어쨌든 기차를 탄 것은 사실일 것이고 많은 승객들 중에서 자신이 쓰려고 구상중인 작품을 위해서 골라낸 사람들이겠지요. 다소 개연성은 부족할지 모르나, 글 한 편을 만들어보려한 그런 노력은 필요한 게 아닌가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허세욱 : 결국 가상적인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서 효과는 반감된다는 이야기이겠지요.

한형주 : 드라마고 연출이고 말이지요.(웃음)

고봉진 : 저는 수필은 이런 게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전체적으로는 사회상을 객관적으로 서술해 담을 수도 있겠으나, 대화도 많고 문장의 품위도 없는 등, 이러려면 차라리 단편소설을 쓰는 게 낫지 않겠는가, 별로 바람직한 수필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입니다.

김국자 : 동아일보에 발표된 글이라는데, 요즘에 이런 글을 써서는 실리기 힘들 것 같은데요? 수필도 아니고 기사도 칼럼도 아니지 않습니까.

김시헌 : 옛날엔 문화면 전체에 소설 한 편을 싣던 시절이 있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은 한 면 전체에 수필만 싣기도 했고요.

허세욱 : ‘나는’이 없을 뿐 충분히 주관성이 강한 글입니다. 시 정신, 시적인 기교 면에 편중하다 보니 수필로서는 효과가 적은 셈이지요.

 

사회 : 행을 나누는 것은 시적인 기교이긴 하나 이 글에서는 시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서사적이지요.

문혜영 : 서서 가는 군상도 하나쯤 끼워 넣었으면 더 실감나지 않았을까 싶은데, 거기까지는 스케치가 안 된 것 같습니다.

또 저는 검은 색은 모든 색을 흡수하는 색이라고 생각하는데 선생은 오히려 수용하지 않는 색이라고 말하는 등, 검은 색에 대한 그분의 생각이 매우 강합니다. 검은 밤, 검은 열차, 검은 갈매기, 또 다들 집을 향하고 있는데 자기 혼자 집과는 거꾸로 가고 있는 정황 등의 이미지를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사회 : 이쯤에서 토론을 접고 명예회장에게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김태길 : 나는 어두운데 열차 안 풍경을 어떻게 메모했는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엄 교수가 허구라고 단정하는 것을 듣자 ‘아, 허구라고 생각하면 간단한 것을, 내가 순진하다면 순진하고 어리석다면 어리석은 사람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웃음)

그 외엔 이 수필에 대해서는 달리 할 말이 없고, 대신 매우 훌륭한 합평회였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사회자와 토론자들도 준비를 잘 해주셨고, 객석에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발언을 해주셨습니다. 동시에 ‘합평회 수준은 높으나 수필 수준은 어떨까’ 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수필을 평하는 비평적 안목과 직접 쓰는 능력 사이의 함수 관계도 생각해 보게 되었구요. 어쨌든 좋은 수필을 읽는 안목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 수필문우회가 수필 보는 안목이 높아졌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앞으로의 욕심은 비평 능력에 걸맞는 창작 능력을 겸비하는 것이 되겠지요.

 

사회 : 이것으로 합평회를 마치겠습니다. 지정 토론자들과 토론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