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사랑

 

 

                                                                                             李應百

  

서울 근교 하남시의 어느 식당 입구에 일념차(一念差)란 말이 붓글씨로 씌어 걸려 있었다. 모든 일은 생각하기 나름이니 한 생각 차이로 좋게도 나쁘게도 된다는 말이다.

예전 우리 나라에서는 대가족주의로 5대가 같이 사는 집도 꽤 있었다. 그러기에 조부모를 모시고 3대가 사는 것은 항다반(恒茶飯)이었다. 그리하여 자녀들이 부모가 조부나 그 위의 어른을 어떻게 모시느냐를 이론보다 실제 행동으로 보면서 자라기 때문에, 가정이 곧 교육의 장(場)이 되었다. 층층 시하(侍下)로 웃어른을 모시고 사는 것이 물론 어려움이 많지만, 인간은 응당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딴 생각을 할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전통 있는 가문(家門)에서는 대대로 내려오는 가훈(家訓)이며 언행, 예의 범절을 철저하게 준수함으로써 거기에 대한 자부심(自負心)이 대단했다. 그리하여 그러한 가문의 자손과 혼담(婚談)이 나오면 두 말할 나위 없이 믿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른바 핵가족(核家族) 제도라 하여 아들이 혼인하면 으레 따로 나 사는 것이 통례로 됐다. 부모도 자식도 그러려니 한다. 그야 직장 관계로 부득이 그리 해야 할 경우도 있지만, 그럴 필요가 없을 때도 하나의 관례(慣例)처럼 그렇게 하고 있다.

핵가족 제도는 전통성(傳統性)의 단절로 모든 것을 새잡이로 손수 해결해 나가야 하는 불편이 있다. 그러나 어른을 모시고 살면 아기를 가질 때 임신중의 음식이나 언행(言行),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가가 자연스레 전수(傳受)되고, 산후 조리며 육아(育兒)의 과정에서도 크게 신경쓰지 않고 자연스레 해결되어 특별히 시행착오(試行錯誤)를 겪지 않고도 노력과 시간이 절약되는 상황이 비일비재(非一非再)다.

종족(種族)의 발전 역사가 각 집안의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흐름을 부부만이 신천지를 개척하여 자유를 구가(謳歌)하려는 이기주의가 부질없는 노력과 가정 경제의 허비를 가져오고, 때로는 한때의 착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를 외면한 데서 오는 실수다.

출산 양육(養育)의 초기 과정에도 여러 어려움이 붙따르지만, 성장 과정에서 영양 관리와 인성(人性) 수련이 더욱 중요하다. 애들은 내버려두어도 하루가 다르게 발육(發育)된다. 그런데 타고난 바탕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환경 요소다. 식물의 경우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도 척박(瘠薄)하고 수분과 햇볕이 부족한 데서는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좋은 씨를 환경 조건이 좋게 해줄 때, 그 바탕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다.

교육은 학교 이전에 가정에서 언어 행동이나 습관을 잘 길들여야 한다. 우리의 선조들은 전통 교육에서 물 뿌리고 쓸고 어른이 부르시면 ‘네’ 하고 분명히 대답하고, 어른 앞으로 조심스럽게 나아가 분부 말씀을 듣고 두어 발작 물러나 뒤로 돌아서 자기 자리로 되돌아오는 쇄소응대진퇴지절(灑掃應對進退之節)을 어려서부터 철저히 몸에 배게 했던 것이다.

예전 서당(書堂) 교육은 첫째도 둘째도 사람다운 사람이 되게 하는 데 목적을 두었었다. 오륜(五倫)까지 거론할 것 없이 효제충신(孝悌忠信) 네 글자만 근본 뜻을 알아 실천하면 윤리(倫理) 교과서 몇 권 뗀 것보다 정신적인 실효를 거둘 수 있다 하겠다. 부모에게 효도하고(孝), 윗사람에게 공손하며(悌), 자기 속에 품은 양심(良心)에 부끄러움이 없고(忠), 남에게 하는 말이 거짓이 없으면 남이 나를 믿게(信) 되어, 훌륭하게 인격이 갖추어지기 때문이다. 이 네 가지는 전통 교육의 핵심(核心)이다. 그것의 실천으로 가정에서는 부모께 효도하고 형제 간에 우애가 있으며, 사회에서는 웃어른과 손윗분에게 예절바르며, 모든 일에 충실하고 개인이나 국제 간에 신의(信義)가 있게 된다.

이렇게 인성 교육의 핵을 이루는 한자(漢字) 교육이 1970년 이후 정부의 한글 전용(專用) 교육정책 실시로 소홀히 될 뿐 아니라, 각종 시험에도 한자를 다루지 않아 서울대생이 신문 지면에 나오는 상식적인 한자(漢字)도 못 읽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리하여 전통적인 효제충신(孝悌忠信)이 도외시되고 극단적인 이기(利己)주의로 총체적 불신 풍조를 일으키게 되었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핵가족 제도로 웃어른을 존경하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오직 내리사랑에 힘과 정열을 쏟고 있는 사실이다. 이 결과 자녀들은 웃어른 모시는 말씨며 행동거지(行動擧止0도 배울 기회를 얻지 못하고, 무엇이든 요구하는 대로 불편 없이 척척 충족시켜 주는 편리한 생활을 해감으로써, 어려운 지경에 처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고 뚫고 나갈 것인가의 자세와 성의, 노력도 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철두철미 의타적(依他的)인 무기력한 존재로 돼 가는 것이 현실이다.

그뿐 아니라 남을 위하고 남에게 베풂으로써 느끼는 보람을 경험하지 못하고, 부모가 늙어 생활을 제대로 못해도 딴 일로 여겨 마음으로부터의 애틋함과 정성을 기울이려는 의식(意識) 자세가 싹돋지 않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부모가 내리사랑에 쏠려 논밭 팔고 소 팔아 자녀 교육시키고, 빚을 져 가며 혼인시킨 뒤, 노후에 무일푼으로 자식한테 푸대접받는 딱한 신세에 놓이는 일이다. 서구(西歐)처럼 노후의 사회보장 제도도 없는 우리 나라에서는 그러한 결과를 가져올 씨앗을 그 자신이 뿌리기 전에 슬기로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하겠다.

무엇이든 오냐오냐로 가정의 질서가 서지 않고 나라도 무기력증에 빠지지 않게 하려면, 우리 선인(先人)들이 했듯이 종아리를 따끔하게 다스리거나, 미국에서처럼 20세가 넘으면 공부며 기타 일은 본인이 알아서 해 어려움을 꿰뚫고 나가는 진취력(進取力)이 길러지게 해야 할 것이다. 이야말로 일념차(一念差)에 따른 해결의 실마리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