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유산

 

 

                                                                                         정태헌

  

굳게 닫혀 있던 회색 철문이 금속성 소리를 내며 열린다. 영안실 내부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신을 보관중인 냉장고, 빛바랜 감색 침대, 염殮을 하는데 필요한 물품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염사들은 냉장고를 열고 아버지의 맨몸을 들어 낸다. 임종을 못한 탓에 궁금한 것은 무엇보다 얼굴표정이었다. 주무시는 듯 평온한 모습이다. 다행이다. 눈과 턱, 입과 팔다리의 수족 거두기를 잘한 덕분이겠지. 홀로 임종을 한 어머니의 정성이리라. 안도의 숨이 나온다.

“어, 무슨 시계가……?”

얼굴이 붉은 염사의 말에 비로소 아버지 왼쪽 손목에 채워져 있는 시계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도 애지중지하시던 은시계, 잠자리에서조차 풀지 않으시던 아버지의 애물愛物이다. 어찌된 일일까. 숨을 거둔 후 영안실로 옮기며 미처 보지 못했음일까. 탈없이 저녁식사까지 드신 아버지는 급작스런 호흡 곤란으로 병원으로 이송된 지 삼십 분만에 운명을 하신 거다.

“비켜요, 저리들!”

염사들의 손놀림이 시작된다. 어머닌 그 틈을 비집고 아버지의 손목에서 시계를 풀어내어 곁에 있는 내 손에 쥐어준다. 냉장고 속에 있었던 탓인지, 차가운 아버지의 육신 탓인지, 시계의 금속성 촉감이 차갑기만 하다. 찰칵 찰칵, 아버지의 시간은 멈추었는데 시계는 어김없이 제 시간을 간다. 새삼스레 아버지의 죽음이 뭉클거린다. 숨이 탁 막힌다. 초침 돌아가는 소리가 의식 한가운데를 송곳처럼 파고든다. 아버지는 이제 정녕 생명의 끈을 놓으신 건가. 시침은 거꾸로 돈다.

십 여 년 전,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해 절명의 상태에 빠진 적이 있었다. 대학병원으로 실려온 아버지, 뇌를 다쳐 의식을 놓고 있었다. 정밀 촬영을 마치고 다음 날로 수술이 잡혔다. 그날 밤은 길고도 길었다. 링거액에 한 가닥 생명의 끈을 의지하고 있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밤을 새던 그때였다. 깜박 잠이라도 들었던 것일까. 아슴하게 들리는 기계음에 눈을 떴다. 그건 아버지의 왼 손목에 채워진 규칙적인 시계 소리였다. 자식이 외국 여행길에 사다주었다며 잠자리에서조차 풀지 않으시던 은빛 시계였다. 한데 그 힘든 고비를 넘기시고도 아무 탈없이 돌아가는 시계와 함께 무탈하게 살아오신 아버지가 아니셨던가.

염사들의 손놀림이 점점 빠르게 움직인다. 숙부님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울음 반 웃음 반.

“저 봐, 꼭 살아 계신 거 같어!”

둘러선 사람들이 눈물을 삼킨다. 어머니는 침대 곁에 있던 약솜을 들어 아버지의 눈가를 훔치려다 염사의 투박을 듣는다. 오른손으로 어머니의 손을 꼭 잡는다. 왼손에 쥐어진 아버지의 시계만큼이나 어머니의 손도 차갑다. 목울대를 치는 눈물을 꿀꺽 삼킨다. 그 눈물을 타고 내게 처음 시계를 사주셨던 중년의 아버지가 비집고 든다.

내가 처음으로 시계를 갖게 된 것은 중학교에 갓 입학한 후 달포쯤 지나서였다. 도회로 유학간 답시고 집을 떠나 학교를 다니던 자식을 보러 아버지가 올라오신 날이었다. 아버지는 내 손목을 이끌고 밖으로 나섰다. 맛있는 것이라도 사주시려나 잔뜩 기대했었는데 뜻밖에도 들어선 곳은 전당포 골목이었다.

“내 자식놈이오. 좋은 거 하나 골라주시오.”

아버지의 목소리는 힘이 있었다. 이것저것 구경하더니 은빛 시계 하나를 흥정하여 손수 내 손목에 채워주며 말씀하셨다.

“아껴 써라. 시간은 돈이다.”

시계 찬 학생들이 흔치 않았던 시절인지라 과분한 생각조차 들었지만 무언가 가슴에 꽉 차오는 느낌이었다. 그 시계를 차고 동무들 앞에서 얼마나 뽐내며 으스댔던가.

맨몸에 삼베옷 수의가 입혀진다. 손을 싸매고, 솜으로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일곱 매듭으로 동여맨 뒤에 홑이불을 덮는다. 소렴이 끝나고 시신을 관에 옮긴다. 세상 것이라곤 시계 하나 달랑 차고 계시더니 그것마저 자식에게 주어버리고 마지막 옷, 수의 한 벌 얻어 입고 떠나실 차비를 한다.

“끝났습니다. 가족들 다 보셨지요. 이만 덮습니다.”

절름발이 염사는 주위를 돌아보더니 관을 덮고 못을 쳐 대렴을 마친다.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있던 어머니의 곡을 시작으로 영안실 안은 울음으로 가득 찬다. 더는 누를 수 없는 뜨거움이 솟구치더니 눈물로 쏟아진다. 손아귀에 든 시계를 다시 한 번 쥐어 본다. 어느 새 온기가 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리 할 수만 있다면, 차가운 아버지의 몸도 내 온기로 덥혀 드릴 수만 있다면…….

“시간은 돈이다. 아껴 써라.”

시계와 눈물 사이에 시방 난 우두커니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