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음악

 

 

                                                                                              박용화

  

흰색과 검정색의 대비로 깔끔한 피아노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트릴 표시에 따라 꾸밈음을 표현하기 위해 손가락이 빠르게 율동하며 시작하는 곡.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위먼(A.P. Wyman)의 ‘은파’다. 갈고 닦아 제법 익숙된 기교에 따라 미끄러지듯 감미로운 선율을 좇아가면 사랑과 꿈, 기쁨과 슬픔이 뒤범벅되어 가슴을 적신다.

음악의 축제에선 단연 음표가 주인공이다. 음표 속에 숨어 있던 현란한 무늬에 맞추어 아름다운 화음을 쏟아내는 피아노. 저마다 품고 있는 높낮이를 따라 손가락은 건반 위에서 춤을 춘다. 어린 시절의 꿈이 서려 있는 음표 속으로 빠져들면 미처 태우지 못한 열정의 불씨가 꿈틀거린다. 더욱더 화려한 변신을 시도하는 나는 무희가 되어 음표와의 밀어를 속삭인다.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해운대 조선비치 호텔 커피숍이다. 6월의 햇살이 눈부신 바다는 은비늘을 물고 찬란한 알몸을 펼친다. 그때 찰랑거리는 작은 물결을 일으키며 바다의 움직임이 넋을 사로잡는다. 창 밖에 펼쳐지는 드넓은 바다의 적요를 타고 귀에 익은 ‘은파’가 흘러나왔다. 바다는 특유의 맑고 귀여운 몸짓으로 물방울을 튀기며 감성을 시샘이라도 하는 듯 푸른 바다 한가운데로 ‘은파’를 쏟아냈다.

예술이 고귀한 것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인격의 영적인 표현에 있다고 한다. 작곡자의 정신 감동이 기품 있는 연주가에 의해 재현되어 바다와 더불어 새롭게 창조되는 순간이다. 피아노의 음은 작곡자의 깊은 정서와 조화를 이뤄 맑고 깨끗한 아침 이슬을 맞닥뜨렸을 때의 순결함으로 다가왔다. 영롱한 울림으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순수한 사랑의 느낌을 고스란히 껴안게 하는 피아노. 은빛 찬란한 바다에서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있을 무렵 와르르 쏟아지는 ‘은파’의 웅장하고도 드라마틱한 선율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꿈을 보는 양, 몽상적인 분위기에 젖게 했다.

십 여 년 만에 찾은 해운대는 추억의 상자를 열었을 때처럼 가슴을 마구 설레이게 했다. 대학 시절 강의가 끝나면 친구들과 곧잘 해운대를 찾았었다. 낡은 호텔 커피숍은 커피 값이 싼데다 바다가 한눈에 보여 아지트로 삼았다. 언제 보아도 바다는 낭만과 멋으로 넘실 댔다. 주로 비가 오거나 흐린 날에 해운대행이 이뤄졌는데, 특히 억수 같은 비가 바다를 적시는 모습은 장엄하여 말을 잃어버리게 했다. 그 아득한 빗줄기에 혼을 뺏긴 채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있노라면 더 이상의 사치란 있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직 비는 오지 않아 온통 잿빛으로 물든 밖의 풍경에 취해 있을 때였다. 젊은 부부가 아이를 데리고 바닷가를 거닐고 있다. 아이 아빠는 어린애를 무동 태운 채 팔을 올렸다내렸다 한다. 철썩이는 파도에 리듬을 타며 오르락내리락하는 그들은 삽시간에 우리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까르르 웃어젖히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바로 곁에서 들리는 것만 같다. 먼 훗날, 함께 할 가족과 해변을 거닐게 된다면 아마 저런 모습이 아닐까 연상되는 그림을 그려본다. 앞에 앉아 있는 친구들도 같은 상상을 했는지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들이 비켜간 자리는 언제 그들이 그곳에 있었나 할 정도로 여전히 침울한 빛이다. 잿빛 하늘 아래 맨몸뚱이를 고스란히 드러낸 바다는 다시금 우리를 깊은 사색에 잠기게 했다. 스치듯 지나간 정겨운 가족의 여운은 아주 잠깐 눈가에 아른거릴 뿐.

아름답고 풋풋하던 시절에 꿈꿔 왔던 일 중 거의 대부분은 추억의 상자 속에서 세월의 무게를 보듬어가고 있다. 어느 순간 주문을 외우면 홀연히 모습을 드러낼 태세로. 한 각도에서만 보던 시야가 트이고 무관할 것 같던 일들을 겪으면서 피아노 앞에 앉는 횟수도 차츰 줄어들었다. 그러나 멀어진 꿈만큼 메마른 가슴을 손으로 쓸어내릴 때도 있지만, 둘러쳐진 나이테만큼 편안한 숨을 몰아쉬기도 한다.

추억을 회상하게 하며 한순간 기쁨과 슬픔의 소나기를 맞게 하는 음악은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빼놓을 수 없는 산소 같은 존재다. 예전에는 특권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만이 이를 향유할 수 있었지만 오늘날 음악은 누구나 가까이 할 수 있어 생활에 운치와 윤택한 빛을 안겨준다.

황홀경에 빠뜨렸던 은빛 찬란한 바다 위로 흐르던 음악의 정서적이고 미적인 체험은 오랫동안 파노라마로 남아 있다. 어둠이 내리면 찬란했던 바다도 옷을 갈아 입을 것이다. 북적대는 사람들이 하나 둘 제자리로 돌아가면 행복을 덤으로 안겨주던 음악은 더 이상 흐르지 않고, 검푸른 바닷가엔 정적만이 흐를 테지. 훗날 다시 그곳을 찾을 땐 주변의 건물은 첨단의 유행을 타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다는 변함없는 신비로 여전히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바닷가의 낭만을 한층 더 고조시키는 음악은 축제의 가락을 뿜어내리라.

 

 

 

<계간 수필>로 등단(2000년).

시문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