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또다시 피는데

 

 

                                                                                             권태숙

  

영신(迎神)을 위해 현관문을 열러 간 올케가 한참 후에야 들어왔다. 오늘은 지난 해 유명을 달리한 큰동생의 기일이다.

어둠 속에 두 자루의 초가 신위를 밝히고 향이 타는 연기가 제상 위로 피어오른다. 동생의 영혼은 지금 우리를 보고 있을까. 사랑하던 처자식이며, 대구에서 올라온 동생 내외, 막내아우와 제수, 누나들과 자형 조카들 그리고 사촌 형, 형수, 아우들을 만나고 있을까.

제관들 뒤로 보이는 골프채, 운동 기구, 여행할 때 모아둔 외국의 토산품들, 허리 통증 때문에 맞춘 보조대. 손때 묻은 모두는 주인이 없어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축문을 읽던 중간 동생은 기어이 울음을 터뜨렸다.

“영정 대신 지방 붙이면 됩니다.”

절에 모셔둔 영정을 찾아와야 하지 않겠냐고 묻자, 단호히 대답하던 동생이다. 젊고 활기찬 모습으로 엷은 미소까지 짓고 있는 사진을 보면 눈물이 날 것 같아 아무도 영정을 고집하지 않았다.

오십 살의 생일을 보내고 49일이 되는 날 동생은 갔다, 간암으로.

아홉 수가 나쁘다는 말을 듣고 마흔아홉을 넘기라고 기도하였다. 시간이, 하루하루가 빨리 가기를 살아오면서 그처럼 바란 적도 없었다. 드디어 설을 넘기고, 나흘 후 동생의 생일을 맞았다. 남편 일로 경산에 내려가 있다가 상경하여 미역국과 찰밥을 해서 병원으로 달렸다. 그날을 넘기면 죽음의 그림자는 물러가지 않을까 싶어서.

아빠 없는 한 해 동안 조카딸들은 훌쩍 컸다. 작년 이맘때 상복 치마를 주체 못하던 아이들이 의젓하게 잔을 올리고 절하는 모습에 슬픈 마음이 들었다.

동생의 마지막은 외롭지 않았다. 회사에 사표를 내고도 1년이 지났건만, 선배의 의외의 죽음을 맞아 후배 직원들이 총출동해서 연일 밤을 새워주고 손님 접대도 앞장 서 주었다. 간부들은 “자기 사업을 한다고 나간 줄 알았는데…” 안타까워했고, 연줄로 듣고 온 거래처 사람들의 애도는 심심했다.

지금은 독립해서 일한다는 옛 직원은, 은혜 입은 일을 말하며 울먹였고, 동생이 입원한 후 수시로 오던 아래 직원들은 매일 빈소에 참배하고 가깝지 않은 경북 영천의 장지까지 따라와 주었다. 누나였지만 몰랐던 직장생활을 짐작하며, 잘 살은 동생이 고맙고 다시금 애석했다.

동생은 병이 위중해서도 의연했고, 남은 식구들에게 최선을 다하려 애썼다.

B형 간염이 간경화가 되고 암이 되도록 누나나 형제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나중에 사실을 알고, 눈 쌓인 아파트 앞 정원에 나뒹굴며 뛰어 간 내게, “지병인데요 뭐, 알면 걱정만 끼칠 텐데…”라고 말하며, 오히려 우는 나를 달랬다.

가족의 뒷일을 생각했음인지 회사를 그만두고도 몸져눕기 전까지 사업을 계속했다.

부모님은 물론이고 동기간에, 일가 친척에게도 정성을 다했다. 아버님 돌아가시고 첫 제사를 맞아 주문한 제기를 직접 하나씩 하나씩 씻고 닦았다. 다음 제사를 기약할 수 없는,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업무 차 외국을 자주 드나들면서 가는 곳마다 선물을 사왔다. 아프리카서 가져온 나비 표본, 호주에서 사온 캥거루 가족, 콜럼버스의 범선 모형들은 내 집 거실을 꾸며주고, 상아 브로치는 내 옷을 빛내 주었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이제는 슬픈 기억을 떠올려주는 유품으로 남았다.

동생의 비보를 듣고 대구에서 영천에서 친척들이 달려왔고, 작은아버님은 “허허 참, 아까운 놈을…” 하며 담배만 태우셨다.

의식이 모두 끝나고, 지방과 축문은 불살라 재가 되었다. 동생은 다시 저승으로 갈 것이다.

혼령이나마 전송하고 싶어 현관 밖으로 나왔다. 저 세상은 얼마나 먼 곳일까. 혼은 지금 어디를 날아가고 있을까. 영혼의 자취를 찾으려는 듯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흐린 하늘은 별도 보이지 않고 그저 막막하다. 하염없이 걸어본다. 아파트 정원에 켜진 외등의 빛을 받아 목련꽃이 하얗게 눈부시다.

동생을 묻으러 가던 날도 벚꽃이 봉오리가 벌고, 시골길엔 배꽃도 복숭아꽃도 피어 있었다.

“천지가 다 생명력을 분출하는데 너를 묻으러 가다니, 가다니.”

그렇게 되뇌었었다.

이제 또다시 꽃은 피는데.

 

 

 

<계간 수필>로 등단(98년).

전 서울 성산여중 국어 교사. <四季>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