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닮은 사람

 

 

                                                                                                 최예옥

  

세 자매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열흘 별러 하루 쓸 날 없다’고 짜여진 일상 한 귀퉁이를 허물지 않으면 떠나기 어려워 벼르기만 하던 친정 나들이 길이다. 애초 생각은 집안 행사만 끝나면 곧바로 돌아올 생각으로 기차표를 예매해 두었는데 내려온 김에 며칠 쉬어가라는 권유가 간곡하다. ‘넘어진 김에 쉬어 갈’ 요량으로 표를 무르고 싸둔 짐을 푼다.

보성에 있는 부모님 산소를 둘러보고 근처 온천장에 들었다.

가슬가슬한 삼베 이불을 덮고 언니랑 나란히 누워 별을 본다. 어둔 하늘에 별들이 점으로 박혀 있다. 노독路毒으로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겁고 눈꺼풀은 천근으로 내리누르는데 언니는 세월을 훌쩍 몇십 년 뒤로 돌려놓은 채 회억回憶에 잠긴 목소리가 촉촉하게 젖어 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마주 할 수 있어 좋은 것이 가족이다. 오랜만에 언니에게 귀를 맡기고 반은 담아 듣고 반은 흘리는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아름다움으로 미화된 추억담이다.

언니는 이제 칠순에 더 가까운 나이가 되었다. 낮에 진도 ‘운림산방’에 들렀을 때 매표소에서 표를 끊으려 하자 경로 우대증을 내밀었다. ‘운림산방’은 몇 채의 건물로 나뉘어 다 돌아보려면 1시간 정도 걸어야 한다. 기념관 뜰 앞에 이르자, 그늘에서 쉴 테니 마저 보고 나오라고 한다. 여름 한낮이라 더위에 지쳤겠거니 가볍게 생각했다. 혼자 나무 밑에 앉은 언니 생각을 한참 동안 잊고 있었다. 구경을 마치고 나오니, 연못에 떠 있는 수련을 바라보고 있는 언니는 미동도 없다. 바람 한 점 없는 뙤약볕 아래, 나무가 만든 손수건만한 그늘에 앉아 있는 언니는 그대로 구부러지고 휘어진 나무를 닮아 있다. 볼거리만 있으면 눈이 빛나면서 수첩부터 챙겨드는 내게 행여 방해가 될까 따라나서지 않은 마음을 짐작으로만 느낄 뿐, 차가운 음료수 한 모금으로 미안함을 얼버무리고 만다.

이제는 내가 챙겨야 할 노인이 되었는데도 나는 아직 무거운 짐보따리는 당연히 언니 몫이라고 생각한다. 종일 운전하느라 힘들었을 거라며 찬 물수건을 덮어 내 다리를 주무르는 언니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손바닥 자국이 남는다. 차마 아프다는 소리를 못하고 바라본 손은 가슬한 삼베보다 더 거칠다.

한평생 오로지 살림만 알고 살아온 삶이 거친 손바닥에 증거처럼 남아있다. 그 손을 보니 언니네 대문 옆을 지키고 서 있는 오래된 감나무가 생각난다. 겨우 고욤을 면한 부실한 열매를 맺는 재래종 감이라 누구의 관심거리도 되지 못하던 나무가, 자식들 모두 성가成家시키고 내외만 남은 이즈음에서야 정이 간다고 한다.

아침 저녁으로 빨래 하고 난 물도 그 나무 밑에 부어주고 쓰다듬어주며 ‘잘 자라라, 네 모습이 꼭 나를 닮았구나’ 혼잣말을 한다고 한다. 항상 거기에 있지만 바쁜 일 많은 젊은 시절에는 그저 정물이던 나무 한 그루가 이제는 언니의 불편한 발걸음 소리를 듣고 같이 늙어가는 친구가 되어간다.

언니 내외는 시골에 작은 집 한 채를 마련해 놓고 광주와 구례를 오가면서 지낸다. 한 달에 반은 비워둔 집에 돌아와 대문에 열쇠를 꽂으면서 쇠창살 문틈으로 거무튀튀한 나무등걸이 보이면 내 집에 왔다는 안도감이 든다고 한다. 이제는 제법 큰 그늘을 만들어 줄 만큼 커버린 나무 밑에서 언니는 김치거리를 다듬고 잔 빨래를 헹군다.

그렇게 봐서 그런지 언니는 고목이 되어가는 감나무를 닮아 있다. 여린 묘목 시절을 가늠할 수 없게 굵어진 몸통과 갈라진 손등으로 오로지 자식들 잘되길 기원하는 발걸음으로 살아온 평생은 영락없이 잔가지 드리운 채 바삭하게 마른 고목이다.

글 쓰는 동생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밤샘 작업에 건강을 해칠 세라 이것저것 챙겨 먹이려 드는 언니는 내게 그늘을 드리워주는 한 그루 큰 나무다.

‘나’는 사라지고 누구의 엄마로 일관된 삶, 모두 사회에 한 몫을 하는 성인이 되었지만, 지금도 자식에게 보낼 김치와 양념거리를 다듬는 일이 즐겁고, 저녁 일곱 시면 번 차례로 울려오는 전화 소리에 얼굴이 밝아진다. 자식 자랑에 입 다물 줄 모르고 행복해 하는 표정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라면 땅 속 깊숙이 뿌리를 뻗어 수액을 빨아들여 잔가지 끝까지 영양분을 보내려 안간힘을 쓰는 나무를 닮았다.

나무는 큰 가뭄이 든 때일수록 뿌리를 멀리 뻗는다고 한다. ‘가문 뒤에 큰 물 진다’고, 미리미리 대비하는 식물의 한 생. 그래서 커다란 나무는 어지간한 비나 가뭄에는 끄덕도 않고 제 가지를 살린다. 그럴 때 한 그루 큰 나무는 긴 고난을 이겨낸 사람의 잔잔한 미소를 닮았다.

자그마한 키에 내 발목보다 연약한 언니의 발목을 보고 있노라면 진액을 다 자아낸 고목을 보고 있는 것 같다. 형제들 사이에서도 화려하게 핀 꽃보다는 묵묵한 나무가 되고자 했던 삶은 연륜을 더해 갈수록 그늘을 넓혀간다. 열흘 피고 마는 꽃보다 백 년을 두고 나이테를 늘려가며 질긴 생명력을 보이는 나무에서 이제사 건강한 생의 환희를 본다. 애옥살이 같은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을 때, 언니가 만들어놓은 그늘 밑 평상 자리는 한걸음에 달려가고 싶은 마음 속 고향이다.

밤이 깊어 초사흗날 눈썹달이 하얗게 이울었어도 언니는 연신 사위어 가는 등잔 심지를 돋구듯 이야기를 끌어낸다. 이 다음에 만날 때는 나무등걸 같은 손바닥이 얼마나 더 메말라 있을까. 언니 손을 살며시 잡아본다. 거칠지만, 익숙하고 푸근한 온기가 손가락 끝을 타고 심장까지 전해져 온다.

 

 

 

 

<현대수필>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현대수필문학회 회원.

수필집 『그녀가 아름다운 이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