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회추천>

 

소혹성

 

 

                                                                                            강형오

  

1) 딸의 방

토요일은 아들 내외와 만나는 날이다.

큰아이가 결혼해서 분가한 후 아들 며느리가 오는 날은 아침부터 바쁘다. 쌓인 먼지들을 닦아내고 식사 준비까지 하자면 시간이 모자라 딸이 쓰던 방 청소는 생략할 때가 많고, 오히려 구지레한 물건들을 눈가림하여 감춰두는 곳이 되기도 한다. 이런 사실을 빤히 알고 있는 아들 내외는 집에 들러서도 그 방에 대한 관심을 접은 지 오래다. 딸이 집을 떠난 후 긴요한 물건들은 부치고, 필요 없는 물건들은 없애 방을 정리했지만 얼마 간의 시간이 흐르면서 또다시 잡다한 물건들로 채워져 방은 늘 작은 창고 같다.

딸과 한 방을 쓸 때 딸은 가끔 제게도 방을 주세요, 저도 방을 갖고 싶어요 하고 졸랐다. 그때마다 금을 그을까? 방을 커튼으로 나눌까? 얼버무리고 지나쳤지만 혼자만의 공간은 딸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우리 모두는 크든 작든 자기만의 공간 갖기를 원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 밭이 있을 테니까. 아니, 사람은 누구나 원천적으로 고독하며, 그런 마음 상태를 가족에게만은 들키고 싶지 않을 것이니까.

두 칸짜리 방에서 세 칸짜리 아파트로 이사하던 날, 차례대로 방을 배정하니 딸에게는 그 중 제일 작은 방이 할당되었다. 책상과 의자와 작은 옷장을 들여놓으니 겨우 발을 뻗고 누울 만한 공간이 남았다. 딸은 별 불평 없이 이 방을 보금자리로 여고와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방은 작았지만 한없이 넓은 바닷가에 한 점 달팽이가 작은 나선형의 자기 세계 속에 안주하듯 딸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제 방으로 쏘옥 들어가 숨었다. 그러다가 살그머니 나와, 거실을 조용조용 걸어다니거나 냉장고 문을 살짝 열어보다가 다시 제 방으로 들어가 문이 닫히면, 나는 차단된 문 저쪽의 세계가 궁금하여 방문 손잡이를 가만히 돌려보기도 했다. 냉장고 안에 있던 버터가 없어진 것으로 보아 딸은 자기만의 작은 우주 공간에서 비스킷을 버터에 찍어먹으며 책을 보거나 만화책에 푹 빠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밤중, 살그머니 문을 밀고 딸이 누워 자는 옆자리로 비집고 들어가면 이불 속은 포근했고, 딸의 체취는 한없이 달착지근했다. 어린 왕자가 살았던 소혹성 612호보다 방은 더 작지만 나의 몸은 호리호리하고 유연해서 딸을 껴안고 이 작은 혹성에서 무한한 우주 공간을 밤새도록 유영할 수도 있었다.

딸도 어린 왕자처럼 의자를 돌려 앉아, 혼자만의 고독한 표정으로 조용히 해 지는 모습을 보았을까.

나는 지금 딸이 쓰던 방에 들어와 있다.

딸이 떠난 지 여러 해가 흘렀건만 아직도 이 방에 들어서면 딸의 앳된 음성과 따뜻한 체취와 어린 시절 이야기들이 나를 에워싸, 민들레 씨앗처럼 떠다니고 있다.

 

2) 아들 방

방에 들어서면 변성기를 갓 벗어난 아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새벽 3시에 깨워주세요, 엄마아.”

아들에게는 자명종보다 확실한 게 엄마였다. 그도 그럴 것이 기계적으로 울리다가 목적 달성과 관계없이 소리가 그치는 자명종에 비하여 엄마라는 자명종은 기계가 지닌 정확성에 애정과 정성까지 곁들여 있기 때문이다. 태엽을 감지 않고도 공기의 파장을 통해서 입력된 아들의 소청이 장치의 고장으로 작동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다. 하루의 일과로 몹시 피곤한 한밤중이라도 ‘마음이 때로 몸을 지배한다’는 정신적 현상이 ‘아들 잠깨우기’에서 어긋난 일은 없다.

처음 얼마간은 “일어나. 3시야. 깨워달라고 했잖아” 하며 흔들었다. 그러다 보니 잠이 싹 달아난 것은 나였고, 방으로 돌아와서도 뒤척이며 나는 다시 잠들지 못했다. 어슴푸레 창문이 밝아지면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하다가 주방 가까이에 있는 아들 방문을 가만히 밀고 들여다본다. 그러면 아들은 책상 위에 엎드려 있다가 부스스 고개를 들며 “엄마, 시험인데 왜 안 깨워줬어요” 한다.

그 다음부터 나의 ‘아들 깨우기’는 조금 더 적극적이 되었다. 아들을 안아 일으켜 앉히며 내가 누구냐고 물어 “엄마, 엄마예요”라는 뚜렷한 대답이 나올 때까지 질문을 반복했다.

첫 출산 후, 병원의 하얀 시트에 누워 품안의 아이를 내려다보며 아들의 먼 미래를 생각했다. ‘의사가 되는 거야’ 이런 나의 소망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수유로, 피부의 접촉으로 자연스럽게 전이되어 아들은 진로 선택에서 별 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아파트 뒷 동에 살던 동료 교사의 말이 생각난다. 한밤중에 일어나 문득 앞 동을 보았을 때, 아들 방에 불빛이 비치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아들의 그림자가 희미하게 창가에 어리면 별을 보듯 감동을 받았다던가.

아들은 식구들을 위기에서 구하기도 했다. 연탄을 때며 단칸방에 세 들어 살 때였다. 퇴근하면, 저녁 먹고 자리를 펴기까지 하는 일이 있었다. ‘방바닥 때우기’였다.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철썩 쳐 먼지가 일면 미세한 구멍을 찾아 종이를 붙이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눈오는 날, 아이의 칭얼대는 소리에 잠에서 일어나 젖을 먹이던 중 배가 슬슬 아프기 시작했다. 몸을 비틀며 참고 있는데 아이가 코로 젖을 토했다. 정신이 번쩍 든 나는 식구들을 깨워 방을 환기시키고 아궁이에서 급히 연탄불을 꺼냈다. 첫 교사 발령지인 충북 한수면에서 였다. 그날 종일토록 얼마나 골이 흔들리며 아팠던가. 세월이 훌쩍 건너 뛴 기억의 저편에 아이는 지금도 젖을 토하고 있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분화구 위, 얇은 풀밭에서 인간은 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다.”

생텍쥐페리가 『인간의 대지』에서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