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료작-

 

 

버들피리

 

 

                                                                                           이정하

  

드디어 왔다. 한 번 가 보리라, 벼르던 일이라 녹동항에 들어서자 가슴이 설레였다.

“저기가 소록도요.”

뱃머리에 내려주면서 택시기사가 그랬다. 바로 눈앞에 숲을 둘러쓴 섬이 보였다. 멀리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섬이려니 했던 나의 상상이 찡~ 금이 갔다. 배를 탔다. 섬까지는 채 십 분이 걸리지 않았다.

하얀 시멘트길이 은어처럼 무늬를 놓으며 숲 속으로 헤엄쳐 간다. 나는 돌계단이 사다리를 놓고 있는 사잇길로 들어섰다. 조르르 나오던 다람쥐가 얼른 나무 뒤로 숨는다. 돌 틈 그늘에 이끼가 반갑다. 한참을 걸어 중앙공원에 다다랐다. 숲이 울창하다. 속살이 보이는 나무, 휑하니 구멍 뚫린 나무, 마치 나는 새처럼 나무들이 저마다 팔을 벌였다. 그 우듬지에 햇빛이랑 바람이 머물러 있고, 한 조각 흰구름도 내려와 앉았다.

소곤소곤 말소리가 들린다. 저들은 무슨 말을 주고받을까? 어쩌면 저 바다 건너 물을 다녀온 바람의 이야기일까? 아니면 웬 낯선 아낙이 가고있다고 속닥거리는 걸까? 나는 저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그래도 정겹다. 멀리 바다에 버려진 섬이 되어 외로운 세월을 질겅거리며 눈이 슬펐던 사슴들, 나무들은 외로워 이렇게 울창한 숲이 되었을 것이다.

푸석한 바위가 얼굴을 내밀었다. 한하운의 시비였다. 핏물 밴 바위가 비스듬히 누워 황사빛 보리 피리를 불고 있다.

 

보리 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리리

 

불현듯 만식이가 떠올랐다. 내가 살던 읍내에서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훤칠한 키에 체격이 좋았다. 그가 군에 갈 때는 장가를 갓 든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그러나 돌아왔을 때는 문둥이였다. 그의 집에는 그를 기다리던 아내와 어린 아들이 있었다. 만식의 아버지는 손자와 며느리에게 그 몹쓸 병을 옮길까 봐 아들을 내쫓았다. 만식이는 집 주위를 맴돌았다. 그러다 아버지에게 들켜 매를 맞고 쫓겨나기를 거듭했다.

만식이는 무법자 같은 모습이었다. 발가락이 삐져나오는 군화를 신고 벙거지 모자를 깊숙이 눌러쓴 채 팔자걸음으로 온 읍내를 어슬렁거리면 마주치는 동네 아낙들은 게걸음을 치며 지나갔고, 아이들은 무서워하면서도 따라다녔다. 만식아, 만식아, 이름을 부르며 돌을 던지기도 하고, 간 큰 아이들은 기다란 작대기로 벙거지 모자를 툭툭 건드렸다. 그래도 그는 웃는 낯이었다.

종달이가 보리 이랑을 폴폴 넘나들 무렵, 버들피리 소리가 달빛을 타고 마을로 흘러들었다. 피리 소리는 봄 아낙들의 고달픈 잠을 깨우며 아지랑이처럼 속을 헤집었다. 만식이가 짚동 사이 깊숙이 몸을 묻고 버들피리를 불었던 것이다. 달 밝은 밤에는 이슥하도록 불었다. 그럴 때면 그의 아내는 자기 집 뒤란에 나와 허수아비처럼 서 있었다. 또 나왔을까? 피리 소리가 들리면 동네 아낙들은 만식이 각시를 보러갔다. 일곱 살 가시나였던 나는 흰 소복 차림의 여인을 그때 처음 보았다. 달빛이 흰 치마에 길게 쏟아지는 여인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푸르스름해 보이던 가녀린 괴기스러움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 봄이 서너 개 지나갔다. 봄이 올 때마다 만식이는 더 남루해졌다. 다시 보리 이랑이 파릇해질 무렵 만식이의 아내는 빨래터에도 나오지 않았다. 집을 나갔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버들개지에 봄이 올랐지만 만식의 피리도 울지 않았다. 그를 본 사람도 없어졌다. 아내를 찾아 나섰다는 말도, 소록도로 갔다는 소문도 잦았다.

만식이는 문둥이가 아니었다. 군에서 혹독한 추위에 동상이 걸려 손발의 살이 헐고 손가락, 발가락이 휘어졌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 이상한 병을 이해하지 못했다. 병을 가진 자의 변명으로, 아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게 ‘몹쓸 병’으로 소문이 나고, 세월이 가면서 그는 ‘문둥이’가 되었다. 무지의 소치라 할까? 그의 아버지와 읍내 사람들이 동상이란 병을 알았을 때는 여인도 만식이도 가고 없었다.

길이 좁다. 군데군데 붉은 흙이 눈에 밟힌다. 만식이는 어느 길로 갔을까? 천형의 죄를 지고 혼자 가는 길은 어둡고 무섭고 외로운 길이었을 것이다. 핏발 선 눈에 그렁거리는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져, 흙도 해울음을 울다가 이렇게 붉어진 듯하다.

인간들이 만든 천형의 땅, 핍박과 멸시와 소외로 유배시킨 땅이지만, 만식이들은 함께 울어줄 숲과 나무, 바람이 있는 길을 이렇게 텄다.

사람은 저마다 길을 닦는다. 기다림의 길을 닦는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줄 번연히 알면서도 달 밝은 밤 피리 소리 들으며 뒤란에 서 있는 흰옷의 의미를 알게 된 뒤에도 나는 막연히 그 여인을 동경하곤 했다. 나 또한 누군가를 기다리는 아름다운 숙명을 지녔나 보다.

‘버들피리 불며, 고향 그리워, 피이~ㄹ 닐릴리’

언덕빼기에 성당이 보였다.

 

 

 

-천료 소감-

 

부활의 잔잔한 기쁨을 맞는 날 내겐 커다란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당선 소감을 적어서 보내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동안의 많은 일들이 스크린의 화면처럼 나타났다 사라져갔습니다.

어느 날, 아름다운 수필 한 편을 읽었을 때 그 감동이 오래 머무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아름답고 맑게 걸러주는 것이 수필이었습니다.

나는 늘 그리움에 목말라 있었습니다. 가끔 그 그리움 때문에 몸져 누울 때도 있었습니다.

영원히 다가설 수 없는 그리움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도록 도와주신 배정인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무덤덤한 내 남편의 환한 미소도 감사에 보태고 싶습니다.

내 글의 첫번째 독자였던 벗과 축하 전문을 보내온 아들과 딸아이, 하누헤 회원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미숙한 글을 뽑아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이정하

 

 

 

개천문학 신인상 수상.(2000년)

진주문인협회 회원. 하누헤 회원. 진주 그림내 시 낭송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