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료작-

 

여 음餘音

 

 

                                                                                            전윤미

 

 TV로 방영하던 화제의 사극이 있었다. 내용보다 흥미를 끈 것은 배경 음악이었다. 가사도 없이 허어이로 시작되다 어어~로 마무리되는 것이 비위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는 것 같았다. 그러하던 음악이 들을수록 매력 있었다. 그것은 뭐랄까. 밤새 고아낸 곰탕의 구수함 같기도 하고, 곁들여 나오는 깍두기의 칼칼한 맛 같기도 했다. 그런데 궁금하던 그 음악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얼마 후였다.

단소를 배우던 큰아이가 해금도 배우게 되어 국악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셔틀버스가 운행되지 않아 별 수 없이 내가 기사 노릇을 해야 했다. 아이가 레슨 받는 시간에 나는 학원 상담실에 있기로 했다. 조용한 상담실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 귀찮은 기사 노릇도 괜찮겠거니 여겼다. 하지만 웬걸, 그곳엔 나보다 먼저 자리를 잡은 주인이 있었다.

“덩더쿵, 애~ 앵, 디딩~ 딩딩…….”

네 개의 방에서 울리는 여러 악기의 소리와 판소리를 배우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공간 가득히 어우러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동안 익숙해져 있던 소리와는 다른 우리 가락이 오히려 부담스럽게 귓전을 겉돌았다. 비발디의 사계四季와 모차르트 교향곡으로 클래식 감상 시험을 봤으면서도 정식으로 우리 가락을 감상한 적이나 있었던가. 그나마 ‘중 임 무 황 태’라는 오음계를 알게 된 것이 단소를 배우던 아이의 어깨너머였으니 말해 뭐하랴.

그런데 아이의 레슨 횟수가 더해 갈수록 낯설기만 했던 그 소리가 어 느 순간 귓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이 들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해금의 울림, 시원한 여운을 남기는 대금 소리, 오금이 저리는 듯한 가야금의 음音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선명하게 똑 떨어지는 피아노 소리와는 다르게, 또 당당한 산자락을 연상케 하는 트럼펫의 소리와도 다르게 내 가슴에 울려퍼졌다. 폭포수처럼 뚫리는 소리이면서도 모든 것을 감싸 안고 흐르는 물줄기 같은 너른 테두리의 음이었다.

나는 그 소리에 차츰 취해들었다. 소리는 숨겨져 있던 내 영혼의 현絃을 건드려 놓고는, 어느 새 추억 속으로 나를 밀어넣었다.

지난 겨울,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 불린다는 강원도 정선의 골짜기를 가 보았다.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도 끝이 없는 그곳에서 살얼음에 덮여 있는 아우라지 나루터를 만났다. 살얼음을 깨보니 얼음 밑의 강물이 속살을 드러내듯 맑게 흐르고 있었다. 학원에서 들었던 국악의 소리가 실제로 내 앞에 펼쳐진 것이다. 구슬픈 가야금의 선율이 정선 아라리가 되어 강산에 퍼지는 것 같았다.

올 초에는 충남 부여를 찾았다. 부소산성을 오를 땐 훤하던 하늘이, 타사암墮死巖(낙화암의 별칭)에 이르렀을 때는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 어두워졌다. 그래도 발길을 돌릴 수 없어 더듬거리며 난간에 서 보았다. 거기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한 절벽이었다. 그 절벽 밑으로 강이 흐르고 있었다. 무심코 들어왔던 유행가 속의 불새 울음은 듣지 못했지만, 해 끊긴 달밤에 도도히 흐르던 강줄기가 시들하게 와 닿았다. 그것은 명예를 지키려 목숨을 버린 백제인의 절개 같기도 하고, 그 넋을 기리는 흐느낌과도 같았다. 마치 해금의 가락처럼 가늘게 이어지던 애닯은 그 소리가 어스름한 풍경 속의 백마장강白馬長江에 허옇게 흐르고 있는 듯했다.

아이의 레슨을 기다리는 상담실에 앉아 정선과 부여를 훌쩍 다녀온 것 같은 내 감흥이 다채로운 장단으로 높낮이를 내고 있다. 날이 갈수록 소리의 공감이 되는 자리에서 차를 마시다 보니 벽보 쪽에도 눈이 갔다. 어떤 국악인의 사진과 함께 ‘구음 시나위’라는 글귀가 보였다. 그것은 허이이로 늘어지던 정체 모를 음악에 대한 설명이었다.

나는 그 동안의 호기심을 풀 수 있을 것 같아 너무나 반가웠다. 그런데 제목을 알고도 뜻을 잘 몰라서 학원장을 붙들고 물었다. 그러고도 애매하여 도서관에 가서 찾아보니, 구음口音은 전통 악기의 음색을 흉내 내는 것이고, 시나위는 즉흥적인 허튼 가락으로 산조라 한다. 알 만한 이는 다 아는 것을 사전을 찾아보고야 이해하게 된 나의 무지몽매함이 부끄러웠다.

언젠가 일제의 민족말살 정책 중에 음악도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의 횡포가 혼이 깃든 예술에까지 미쳤다는 역사도 이젠 옛이야기처럼 되었으니 다행이다. 가슴에서 가슴으로 흐르는 정겹고 애틋한 소리, 민족의 정서를 실은 가락은 오늘도 이 나라 강산에서 흐르고 있다.

나는 이제 와서 이 강산에 흐르는 우리 가락을 알았지만, 그 가락이 흐르는 곳이 어디 강산일 뿐이랴. 천둥 치는 하늘과 햇살 밝은 하늘을 이고, 어제에 이어 내일 또 내일에도 여전히 강물처럼 흐르듯 할 것이다.

레슨이 끝나고 귀가하는 길, 시원스레 뚫린 외곽 순환도로 옆으로 산기슭이 아득했다. 달라진 산 빛 사이로 초록의 소리들이 들리는 듯하다. 소리는 기력을 다한 뒤에도 아련히 남아,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는 우리 민족의 혼처럼 울려질 것이다. 산조차 봄의 입타령을 하니 나도 따라 가락을 타고 싶어졌다.

“이이~ 이이~”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허튼 가락이라도 흉내 내 보려 하지만, 잡음일밖에 없었다. 이번엔 아이에게 해금을 켜라고 무리한 요구를 했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입이 뽀로통 나온 아이가 마지못해 정좌正坐를 하고, 어설프게 활을 당긴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흥겨운 우리 가락이 차 안에 가득하다.

 

 

 

-천료 소감-

 

코앞의 수리산을 오랜만에 올랐습니다. 화사한 산 벚꽃에 마치 돌아가신 내 어머님을 뵈온 듯했습니다. 어머님을 보내놓고야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충동에 시달렸습니다. 강산이 한 번 바뀌고 겨우 턱걸이 했나 봅니다.

잡문 일밖에 없는 아둔한 저의 글을 사랑으로 이끌어주신 분들이 계십니다. 어려서부터 글과 가깝게 해 주신 아버님이 계십니다.

아무 자격 없이 받은 은총의 삶을 나누고 싶습니다. 진솔한 삶의 문향이 배어나는 글로 정진하고 싶습니다.

편집위원님들께 감사드리며, 초심으로 일관하기를 기도합니다.

 

                                                                                         전윤미

 

 

상명대학교 사범대학 일어교육과 졸업. (주)신원기획 편집부 근무.

현 군포시 자원봉사센터 소식 책자 편집인. 수필집(공저) 『월요일의 그 낯선 외      출』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