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 의원 대기실

 

 

                                                                                            김태길

최근에 어느 친구가 보내준 산문집을 들고 집을 나섰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 경우를 지루하지 않게 처리하기 위한 준비 태세였다. 치과 의원 대기실에도 작은 책꽂이가 있지만, 숙녀들의 속옷 구매욕을 일깨우기 위하여 실린 민망스러운 광고 사진을 훔쳐보는 재미도 이제는 시들한 나이가 되었다.

대기실에는 예상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청년 한 사람을 빼고는 모두 여자들이다. 잡지를 뒤적거리는 사람도 있고, 아는 사이인 듯 말을 나누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바로 준비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산문이기는 하나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장소에서 읽기에 아주 적합한 글은 아니다. 수필가이기보다는 시인이라고 해야 할 그 친구의 글은 ‘행운유수行雲流水’보다는 ‘절차탁마切磋琢磨’를 연상케 한다. 상식인과는 다른 시각에서 사물을 보기도 하고, 은유 대신에 연막을 치기도 한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가 하면 대담한 생략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 번 읽어서 뜻이 분명치 않으면 두 번 읽는다. 두 번 읽어도 모르면 그냥 넘어간다. 내가 산문을 읽는 버릇이다.

 

책을 덮고 실내를 둘러본다. 몇 사람이 나가고 몇 사람이 다시 들어온 모양이다. 또 한 사람 나가고 뒤를 이어서 두 사람이 들어왔다. 얼굴 특히 코 모양을 보면 모녀 사이 같으나, 차림새는 크게 다르다. 나이든 부인은 머리를 보골보골 지졌고 옷차림도 농사꾼 아줌마의 그것이다. 젊은 여자는 눈에 뜨일 정도의 멋쟁이다. 한 자리밖에 없는 빈자리에 나이든 부인을 앉히고, 젊은이는 그 앞에 서서 이야기를 나눈다.

 

잠시 눈을 감았다. 고향인 충주의 산골 도랑가에서 엄지와 검지로 모새를 집어서 양치질하던 초등학교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소금으로 양치질하기가 어려울 정도의 가난은 아니었는데, 나도 다른 아이들 따라서 모새로 양치질을 하곤 했다. 모새가 치아에 좋다는 민간 속설이 있었던 것일까.

 

“금니들 해 박으시유우, 금니유우!” 하며 외치고 다니던 무면허 기술자의 목소리도 다시 귓전에 살아난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농촌에 다소의 여유가 생길 무렵이면, 치과의사 아닌 금니 기술자가 골목길을 누비고 다니며 무면허 영업을 했던 것이다. 주로 치아의 벌어진 사이를 금으로 때우는 시술이었는데, 도대체 금을 어떻게 녹여서 어떻게 때웠는지는 알아보지 못했다.

우리 마을에도 금니를 해 박은 아저씨와 아줌마가 있었고, 그분들의 절실한 과제는 금니가 보이도록 멋있게 웃는 방법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일이었다. 너무 노골적으로 입을 열지 않고, 그저 자연스럽게 슬쩍 보이도록 해야 멋있어 보일 터인데, 그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차례가 왔음을 알리기 위하여 내 이름 세 글자에 ‘할아버지’를 붙여서 호명하는 간호보조원의 졸음 섞인 목소리에 눈을 떴다. 모새로 양치질하던 초등학교 소년이 갑자기 ‘할아버지’가 되고 만 크나큰 변화에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며 진찰실로 들어갔다.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작은 화분 하나를 샀다. 빠알간 꽃이 시선을 끄는 귀여운 화분. 꽃을 좋아하지만 잠시 보기 위하여 돈을 주고 살 것까지는 없다고 믿는 노처老妻를 위해서다.

갓난아기 다루듯이 화분에 신경을 보내며 신호등을 기다리는데, 어두운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우산도 준비할 것을 그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