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옷 입은 개구리

 

 

                                                                                                 김우종

솜뭉치 같은 흰 눈이 펄펄 내리고 있는데 새와 토끼와 개구리가 밖에 나와 놀고 있다. 하얀 토끼는 귀 하나가 몸집보다 길고 크다. 보라빛 새도 머리가 몸집보다 크고 머리의 반 이상은 눈동자가 차지하고 있다. 또 잠망경처럼 눈이 튀어나온 갈색 개구리도 머리가 몸집만큼 크다.

그 중의 인기 스타는 개구리다. 초록빛 재킷을 입었기 때문이다. 골프스타 타이거 우즈처럼.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것은 그냥 재킷이 아니라 방한용 털옷이었다.

이런 그림은 아이들 것이 아니면 좀처럼 보기 힘들다. 나도 그림을 그리지만 겨울에는 개구리가 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에 매여서 이런 그림은 못 그린다.

이 아이가 이런 그림을 그린 것은 개구리가 겨울에는 동면한다는 상식이 없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이 그림을 보면 아이는 생물 선생이 가르치는 상식의 세계에서가 아니라 천국같이 누구나 다 함께 친구가 될 수 있는 꿈의 세계에서 그림을 그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 그림 속에서는 아이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비록 하찮은 새나 네 발 짐승이나 개구리 한 마리에 지나지 않지만 이 아이와 그 대상 사이에는 아무런 거리감이 없다. 아이도 그 그림을 그리면서 그 속에서 그들과 함께 함박눈을 맞으며 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 따뜻한 배려 때문에 가슴이 찡해 오기도 한다.

아이는 어딘가에 혼자서 웅쿠리고 있을 고독한 개구리를 밖으로 끌어내어 다른 친구들과 함께 노는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개구리가 추울 것을 걱정해서 털옷까지 입히고.

개구리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개구리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개구리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부터가 난센스다. 왜냐면 우리는 우리 주변에 그렇게도 많던 개구리가 다 사라져도 그런 변화에 대해서 거의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으며 살고 있으니까.

10년 전만 해도 중학교 교실에서는 자주 개구리 해부 시간이 있었다.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의 한 장면이 늘 재연되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수업이 거의 사라지고 있다. 특히 서울에선 그렇다. 개구리가 거의 멸종되었으니까.

어쩌다 비온 뒤에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는 수도 있다. 그가 멸종 직전의 마지막 개구리라면 우리 인간들이 그들에게 저지른 죄는 너무 크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무도 이를 의식조차 하지 않으니 개구리는 우리에게는 전연 아무 의미도 없는 존재인 셈이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는 개구리에게 털옷까지 입혀주고 있다. 이렇게 털옷을 입혔다는 것은 아이가 개구리와 인간 사이의 엄청난 장벽을 의식하지 않고 친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처럼 벽을 헐고 상대를 볼 때 비로소 상대의 진실을 보게 된다. 추운지 배고픈지 그 진실을 다 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아이처럼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가능해진다.

사실 개구리는 대한민국에 태어난 소설가 정을병 씨 입버릇대로라면 너무 더러운 세상에 더럽게 태어났다.

토끼, 고양이, 쥐새끼 등 다른 네 발 짐승들은 온혈동물인데도 털이 나 있는데 개구리는 냉혈동물로 만들어지고서도 아주 발가숭이다. 털이 한 가닥도 없다. 시장에 나가면 옷을 얼마든지 사 입을 수 있는 사람도 쓸데 없는 곳까지 털이 나 있는데 개구리는 없다. 그러니까 겨울이 되면 얼어죽든 말든 마음대로 해 보라는 식으로 더럽게 태어난 것이다.

나는 꼬마 화가에게 물어봤다.

“이 녀석아, 왜 개구리만 털옷을 입었지?”

“추울까봐요.”

“토끼와 새는 왜 안 입었지?”

“옷을 입었잖아요?”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런데 개구리는 겨울에는 땅 속에서 잠을 자는 거야. 아주 오래 오래. 그래서 눈이 와도 나와 놀지 않는 거야.”

그런데 이런 시절이 언제까지 계속 될까? 아이들은 이렇게 미지의 세계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면서 세상을 배우고 성장해 나간다. 그리고 이렇게 배우면서 성장하고 어른이 되어 가는 사이에 우리는 잃어버리는 것도 있다. 어린 시절에 가슴 속에 지니고 있던 따뜻한 마음을 잃어간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귀중한 보석을 길바닥에 하나씩 둘씩 흘리면서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살아간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것을 주워서 이것이 당신이 흘리고 잃어버린 보석이 아니냐고 물으면 고개를 옆으로 흔들 것이다.

“아니요. 나는 그런 것을 잃어버린 일이 없어요. 그리고 그것은 보석도 아니군요” 하고.

물론 누구나 다 그렇지는 않듯이 우리 꼬마 화가도 그렇게 변하지는 않으리라고 믿는다.

 

 

 

문학평론가. 덕성여대, 경희대 교수 역임.

작품 『옛이야기로 쓴 수필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