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놀이

 

 

                                                                                       김형진

제법 햇볕이 다사로운 겨울날. 여인은 뜻밖에 겨울 바다를 보고 싶다고 했다.

서해로 가는 버스 안에서 여인은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려는 듯 계속 창 밖을 내다보았다. 버스가 심히 흔들릴 때면 내쪽을 향해 보일락 말락 미소를 짓기도 했다. 석고처럼 굳어버린 일상의 틀 속에 갇혀 지내서였을까. 항상 까칠해 보이던 입술에 촉촉한 윤기마저 돌았다.

한 시간 남짓 버스에 흔들리며 찾아간 서해안 해수욕장.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겨울 바다와 멋진 첫 대면을 기대하며 소나무 몇 그루가 드문드문 서 있는 둔덕을 향했다. 아무리 다사로운 햇볕이라고는 하지만 역시 바닷바람은 쌀쌀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추위를 잊고 있었다. 어쩌면, 보고 싶던 겨울 바다 앞에 떨며 웅크린 모습을 내보이기 싫어서였는지도 몰랐다. 아니면 겨울 바다를 향해 첫발을 내딛을 때부터 바닷바람쯤 넉넉히 이겨낼 수 있는 열기를 가슴 안에 지펴두었을는지도 몰랐다.

둔덕에 올라선 우리는 힘찬 파도를 앞세우고 밀려드는 속시원한 바다를 맞이하기 위해 가슴을 한껏 폈다. 그러나 첫 시야에 드는 것은 질펀한모래밭이었다. 바다는 아스라이 펼쳐진 모래밭 저 건너에서 하얀 거품을 문 채 헐떡거리고 있었다. 나는 시선을 돌려 여인의 얼굴을 살폈다. 여인의 눈꺼풀은 어느 새 느슨히 처져 내려 있었다. 힘없는 눈길로 해수욕장 모래펄을 떠돌고 있었다.

나는 일부러 목청을 돋우어 말을 걸었다.

“겨울 바다란 게 별거 아니군.”

“가슴 확 트이는 바다를 보고 싶었는데…….”

여인의 말꼬리가 아쉬움에 자지러들었다.

쌀쌀한 해풍이 온몸을 할퀴기 시작했다. 여인의 입술에는 어느 새 푸르스름한 빛이 돋아 있었다. 나도 귓바퀴가 시려왔다.

모래펄 남쪽 끝에 삐쭉삐쭉 돋아 있는 갯바위 사이에서 해풍을 피하기로 했다.

“왜 여긴 갈매기도 없어요?”

바위 사이 모랫바닥에 다리를 펴고 앉아 연방 바다 위 허공을 살피던 여인이 물어왔다.

“먹을 게 없나 보지.”

“……!”

여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무슨 말인가 하려는 듯 입술을 조금 움직이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러고는 들릴 듯 말 듯한 한숨 한 가락을 토해 냈다. 겨울 바다에 기대를 걸고 예까지 찾아온 게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과 바다는 영 어울릴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 누렁이 두 마리가 휑한 모래밭을 온통 휘젓고 다녔다. 앞선 놈이 도망치면 뒤엔 놈이 쫓고, 앞선 놈이 서면 뒤엔 놈이 앞 발을 들고 대들고, 그러다 마주보며 어르고, 뒤엔 놈이 돌아서 도망치면 아까 앞섰던 놈이 이제는 뒤에서 쫓고……. 그 광경이 이 겨울 바다에는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누렁이들 멋진데.”

무심히 새어나온 내 말에 여인은 과민한 반응을 보였다. 싸늘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다가 시선을 거두고는 옆에 놓아두었던 손가방을 집어들었다. 단호히 떨치고 일어설 듯한 기세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가방을 집어들고 멈칫 하는 기색이더니 익숙한 손놀림으로 가방 속에서 손바닥만한 거울을 꺼내 들었다.

거울을 손에 든 여인은 거울에 햇빛을 받아 모래펄 저쪽에서 쓸데없이 물장난만 치고 있는 바다를 향해 되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다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 멀어 들리지 않는 소리처럼 빛은 허공 어디쯤에서 흩어져버리는 모양이었다.

여인은 그 장난도 곧 시들해진 듯 거울을 바닥에 놓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은 계절을 잊은 채 푸르게 떠 있었다. 얼마지 않아 하늘에도 시들해진 듯 맥빠진 얼굴을 바로 세웠다. 이제 돌아갑시다 하는 눈빛으로 내 쪽을 돌아보고 나서 모래밭에 놓아둔 거울을 집을 양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던 여인이 무엇에 홀린 듯 꼼짝않고 거울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한참 뒤에야 얼굴을 돌려 내쪽을 슬쩍 바라보고는 다시 시선을 거울에 못박았다. 서서히 물들어가던 여인의 얼굴에 홍조가 선연해졌다.

“내 얼굴이, 내 얼굴이 하늘에 떠 있어요. 하늘에, 하늘에 떠 있어요.”

여인의 음성은 작았지만 크게 떨리고 있었다. 황홀한 꿈에 취해 있는 듯했다.

“봐요. 하늘에…….”

나를 돌아보며 말을 이으려던 여인이 내 멀뚱한 얼굴을 발견하고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러나 반짝이는 눈빛은 어떤 환호성으로도 다할 수 없는 감격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런 여인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여직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여인은 역시 묵묵했다. 버스가 흔들릴 때에도 미소를 짓지 않았다. 까칠한 입술을 꾹 다문 채 멍하니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