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꽃

 

 

                                                                                      이경수

떡과 묵은 김장김치가 친정어머니 보따리에서 나왔다. 실은 떡과 김치보다 노란 꽃 프리지어 한 다발이 먼저 내게 안겨졌다. 내가 꽃을 좋아해서라기보다 어머니 당신이 꽃을 좋아하기에 무슨 꽃이든 꼭 가져온다. 꽃 향기에 어머니 냄새가 덤으로 얹혀 있다.

열흘쯤 지나자 꽃이 곱게 말랐다. 작은 항아리에 꽂아 우산꽂이 옆에 놓는다.

주둥이 떨어져 나간 구리주전자에도 석 달 전쯤 어머니 보따리에서 나온 카네이션이 마른 채 꽂혀 있다. 마른 카네이션에서 다사로움이 느껴진다. 창호지에 바람을 걸러 내고 들어온 겨울 햇살. 이런 겨울 햇살의 다사로움이 바로 그것이다.

 

화훼농장 한 곳을 잘 알고 있는 어머니는 가끔 그 곳에 들러 꽃 일을 도와준다. 그리고 꽃을 한 아름씩 얻어온다고 한다. 어머니와 아버지 둘만 사는 집은 그래서 늘 꽃집 같다.

우리 집에 올 땐 실한 것으로 골라 사온다. 그래서인지 꽃병에서도 봉오리들이 활짝 핀다. 시들기 시작할 때 빈 그릇에 꽂아두면 버리기 아까울 정도로 곱게 마른다. 그러면 구석으로 옮겨놓는다.

싱싱할 땐 잘 보이는 곳에 놓으려고 여기도 놓아 보고 저기도 놓아 보고 하지만, 마를 땐 으레 눈길이 잘 닿지 않는 구석진 곳에 놓게 된다. 이상하게도 마른 꽃을 놓으면 그 곳이 고즈넉해 보인다. 세월이 지나간 자리에 고요가 대신 고인다.

 

어머니 생신 날, 자식 육 남매가 모였다. 이야기꽃이 피었다. 모두 자신들 얘기와 아이들 얘기였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부터 대학교 다니는 아이의 이야기이니, 속 썩는 얘기며 자랑거리가 얼마나 많겠는가. 아버지와 어머니는 멀찍이 앉아 그저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이따금 ‘그래 그런 거란다. 너희도 우리 속을 그렇게 썩혀단다. 그게 부모란다’ 하는 뜻의 엷은 웃음으로만 참견했다. 다 알고 있는 것이기에 그럴 것이다.

그 날 그렇게 그들은 뒷자리에서 웃고만 있었다.

아, 그 모습이 바로 마른 꽃이었다.

당신들이 있던 자리에 자식들이 있고, 그 자식들 자리에 자식의 자식들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이제 당신들 자리는 뒷전이다. 그래도 여전히 자식의 모습 감싸주느라 애쓴다. 내 부모만 이러겠는가. 세상 모든 부모가 한결같이 다 이럴 것이다.

머지않아 내 모습도 마른 꽃이 될 것이다. 아니 꼭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꽃이 마른다고 다 마른 꽃이 되는 건 아니다. 꽃잎뿐 아니라 꽃 냄새까지도 잘 마른 것이어야 마른 꽃이라 할 수 있다.

 

사람에게도 냄새가 있는데 마음 상태에 따라 다르게 난다. 불안하고 초조할 땐 단내가 난다. 욕심으로 부글댈 땐 쉰내가 나고, 집착에 사로잡힐 땐 찌든 내가 난다. 모두 삶의 냄새인 것이 틀림없다.

금방 푸새한 무명 헝겊 냄새가 어디에선가 풍겨왔다가 이내 사라진다. 고향 집 빨랫줄에 걸렸던 그 수수한 냄새가 요즈음 들어 자주 코끝을 스쳐가곤 한다. 내게 무언가 넌지시 일러주려는 속셈일 것이다.

무명 헝겊 냄새. 이런 냄새의 삶을 꿈꾸어 보라는 것이리라.

 

어머니는 꽃에서 무엇을 찾아 낸 것일까.

마른 꽃에 코를 바짝 대 본다. 자신의 냄새를 하얗게 말린 마른 꽃의 꼿꼿한 표정에서 무어라 말할 수 없는 향기를 느낀다. 이 향기, 그냥 느껴질 뿐이니 하얀 냄새다.

하얀 냄새를 일깨워주려고 어머니는 늘 가지가지 꽃을 한 아름씩 들고 온 것일 게다.

 

<계간 수필>에 천료(200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