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나무

 

 

                                                                                          정성화

장터 한복판에 점포도 없는 가정집이 있다는 것은 싱거운 일이다. 왁자지껄한 시장바닥에 양쪽 귀를 틀어막고 앉아 있는 모양새의 집이 바로 우리 집이었다. 그래서 닷새에 한 번씩 장날이 되면 시장판으로부터 온갖 실랑이와 악다구니가,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와 육두문자 섞인 욕지거리가 방안까지 차고 들어왔다.

우리 집이 ‘버드나무집’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집 앞 양쪽에 지붕 높이 만한 버드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방바닥에 누워 창문을 올려다보면 버드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천막을 붙들어 맨 줄에 스칠려서 군데군데 나무껍질이 벗겨지고 위쪽으로 갈수록 성한 가지가 없는 나무였다. 때로는 매어놓은 줄이 너무 팽팽해서 나무는 중심을 잃은 채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기도 했다.

나무는 우리가 그 집으로 이사오기 오래 전부터 거기에 있었던 것 같다. 나무 아래의 둥치 부분이 빤질빤질한 게 처음에는 왠지 되바라져 보였는데, 그것은 장터 사람들이 자주 기대어 앉은 탓이었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장터마다 새로 뿌리를 내려야 하는 장꾼들의 삶이란, 가지를 꺾어 땅에 꽂아놓기만 해도 얼마 안 있어 뿌리를 내리는 버드나무를 닮아야 했다. 그 바닥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가늘지만 잘 꺾이지 않는 버드나무 가지가 되어야 했다. 그래서인지 거칠게 갈라져 있는 버드나무 껍질을 보게 되면 ‘장돌뱅이’ 같은 그들 삶의 질곡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 버드나무는 천막이 날아갈까 봐 천막 주인보다 더 안절부절못했다. 또 무더운 날에는 얼마 되지 않는 그늘로 장터 사람들을 불러들이기도 했다. 버드나무는 그렇게 장터 식구가 되어 있었다.

우리 집 앞에는 고구마 장사가 늘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뙤약볕에 그을려 고구마보다 더 짙은 구릿빛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한 손에 대저울을 들고 있었는데 장사가 그리 잘 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손님이 없을 때면 자기 혼자 그 저울을 들고서 접시에 추를 하나 얹어놓고 막대눈금을 맞추어보고 또 추를 하나 더 얹고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거기 있는 쇠저울 추를 다 합쳐도 잴 수 없을 듯이 무거워보였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그는 웅크리고 앉은 채 팔지 못한 고구마를 부대 자루에다 도로 주워 담았다. 자루 속으로 우두둑 고구마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구마 자루는 금세 그의 덩치만 해졌다.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우두둑 소리를 내는 듯한 우리 삶의 무게를 생각했다. 삶이란 도대체 얼마나 무거운 것이기에 하루를 짊어지기에도 저토록 힘들어 보이는 것일까. 삶이란 것은 아무런 짐 없이 가볍게 나서는 산책일 수는 없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이 되어서야 버드나무는 장꾼들의 악다구니에서 풀려났다. 긁힌 자국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가지를 한번 털어 보이고는 이내 저녁 바람을 탔다. 마치 저녁 무렵 놀이터에 나와 아무 걱정 없이 그네를 타는 아이처럼. 그때 버드나무에게 무슨 말인가 해 보라고 했더라면 아마 버드나무는 제 몸을 배배 꼬면서 “이 정도는 괜찮아요”라고 했을 것 같다.

부러진 버드나무 가지를 봐도 그렇다. 다른 나무보다 훨씬 빨리 수액이 굳어지고 생채기가 아물어진다. 그것이 바로 버드나무의 힘이 아닌가 싶다. 부드럽게 가닥가닥 풀어지면서도 두터운 껍질 속으로는 무섭도록 내공內功을 쌓아가고 있는 나무다. 삶의 가지 하나만 부러져도 그에 미련과 집착을 버리지 못한 채 부러진 가지 끝만 바라보고 있는 우리들 자신에 비하면 나무는 참으로 의연하게 제 몫을 꾸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장바닥을 빗질하는 소리와 함께 장터에도 어둠이 내렸다. 그러면 나는 우리 집 버드나무가 오늘 장날에도 무사한가 걱정이 되어 슬며시 나가 보곤 했었다. 그때의 습관 때문인지 요즘도 어디서든 버드나무를 보게 되면 반가워하며 나무를 쓰다듬어보는 버릇이 있다.

시인 정호승은 그의 시에서 ‘껴안고 있으면 나무가 되는 사람과 결혼하라’고 했다. 사람도 그처럼 나무를 닮을 수는 없는 걸까. 나무처럼 베풀고, 나무처럼 견디고, 나무처럼 제자리를 지킨다면 우리네 삶도 그렇게 신산辛酸하지는 않을 텐데.

사람의 몸은 신기하게도 몸 속에 어떤 성분이 부족해지면 그 성분이 들어 있는 음식물 생각이 간절해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버드나무에 대한 기억을 촘촘히 짚어내고 있는 것도 내게 그런 버드나무 인자因子가 필요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누군가 내 가지를 필요로 하고, 나의 그늘을 아쉬워하며, 나의 듬직한 둥치에 기대고 싶어 나를 찾고 있는 게 아닐까. 가지가 꺾이어도 노래를 부르는 버드나무. ‘삘릴리리 삘리리’ 버들피리가 되어 소리 공양供養까지 바친다. 나의 가지 속에는 정녕 어떤 노래가 들어 있을까.

버드나무 속에는 열熱을 내려주고 염증과 통증을 완화시켜주는 아스피린 성분도 들어 있다고 한다. 그 즈음 내가 거의 병을 앓지 않고 지낼 수 있었던 것은 그 버드나무가 내 방 앞을 언제나 지키고 서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나 역시도 정말 그런 성분까지 갖추어야 좋은 버드나무가 될 수 있을 텐데.

나는 지금 가벼운 감기를 앓으며 마음 속으로 그때 그 버드나무를 쓰다듬고 있다.

 

 

<에세이 문학>으로 등단(200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수필 ‘풍로초’ 당선(200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