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평>

 

김교신金敎臣의

 

 ‘조와弔蛙’

 

 

일 `시`:``2003년 5월 17일

장` 소`:`수필문우회 회의실

참석 인원`:`문우회 회원 20명

사` 회`:`정진권

정` 리`:`최순희

 

 

<본문>

 

조와(弔蛙)

 

작년 늦은 가을 이래로 새로운 기도터가 생겼었다. 층암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가느다란 폭포 밑에 작은 담潭을 형성한 곳에 평탄한 반석 하나 담 속에 솟아나서 한 사람이 꿇어앉아서 기도하기에는 천성天成의 성전聖殿이다.

이 반석에서 혹은 가늘게 혹은 크게 기구祈求하며 또한 찬송하고 보면, 전후 좌우로 엉금엉금 기어오는 것은 담 속에서 암색岩色에 적응하여 보호색을 이룬 개구리들이다. 산중에 대변사大變事나 생겼다는 표정으로 신래新來의 객客에 접근하는 친구 와군蛙君들, 때로는 5, 6마리, 때로는 7, 8마리.

늦은 가을도 지나서, 담상潭上에 엷은 얼음이 붙기 시작함에 따라서 와군들의 기동이 일부일日復日 완만하여지다가, 나중에 두꺼운 얼음이 투명을 가리운 후로는 기도와 찬송의 음파가 저들의 이막耳膜에 닿는지 안 닿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이렇게 격조隔阻하기 무릇 수개월이여!

봄 비 쏟아지던 날 새벽, 이 바위 틈의 빙괴氷塊도 드디어 풀리는 날이 왔다. 오래간만에 친구 와군들의 안부를 살피고자 담 속을 구부려 찾았더니, 오호라, 개구리의 시체 두세 마리 담 꼬리에 부유浮遊하고 있지 않은가!

짐작컨대, 지난 겨울의 비상한 혹한酷寒에 작은 담수潭水의 밑바닥까지 얼어서 이 참사가 생긴 모양이다. 예년에는 얼지 않았던 데까지 얼어붙은 까닭인 듯. 동사凍死한 개구리 시체를 모아 매장하여 주고 보니 담저潭底에 아직 도어 마리 기어다닌다. 아, 전멸全滅은 면했나 보다!

(1942. 3.)

 

  김교신(1901~1945)

   ▶ 일본(도쿄 고등사범학교)에 유학 시절 일본인 스승(우치무라 간조內村監三)에게서 기독교를 배우고, `무교회주의無敎會主義` 운동을 통해 독립운동을 꾀한 한국 기독교의 선각자.

   ▶ 1901년 함경남도 함흥 출생.

   ▶ 함흥 보통학교·농업학교·동경 고등사범학교 졸업.

   ▶ 1928년 귀국, 양정고보·제일고보 교사로 재직. <성서조선> 발간.

   ▶ 1942년 <성서조선> 158호 권두언 ‘조와’가 반일反日이란 이유로 구속 수감. 잡지는 폐간.

   ▶ 1943년 출소. 흥남질소비료공장 취업.

   ▶ 1945년 4월 발진티푸스로 운명.(45세)

 

 

사회`:`안녕하십니까? <계간 수필> 제33호, 2003년 가을호를 위한 합평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합평 작품은, 일본 도쿄 고등사범학교에 유학 시절 일본인 스승 우치무라 간조(內村監三)에게서 기독교를 배우고, ‘무교회주의 운동’을 통해 독립운동을 꾀한, 한국 기독교의 선각자 김교신金敎臣 선생(1901~1945)의 수필 ‘조와弔蛙’입니다.

김교신 선생은 1901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출생했고, 함흥 보통학교와 농업학교를 거쳐 동경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1928년 귀국, 양정고보와 제일고보 교사로 재직하면서 <성서조선>을 발간했습니다. 1942년 3월 <성서조선> 158호의 권두언 ‘조와’가 반일이란 이유로 구속 수감되어 1년 여 옥고를 치렀고, 잡지는 폐간되었지요. 1943년 출소, 이듬해 흥남 질소비료공장에 취직했으나, 발진티푸스에 걸려 1945년 45세를 일기로 타계했습니다. 저서로는 『김교신 전집』 6권이 있습니다.

오늘은 김수봉·변해명·구양근 선생, 이렇게 세 분께서 지정 토론을 해주시겠습니다. 먼저 변해명 선생께서 김교신 선생의 연보 중 빠진 부분을 보충해 주십시오.

변해명`:`말씀하신 대로 선생은 1901년 함경남도 함흥 사포리에서 엄격한 유가 가문에 태어났고, 1912년 4세 연상인 한매와 혼인하여 2남 6녀를 두었습니다. 1919년 함흥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고 동경에 건너간 선생은 성결교회의 노방설교를 듣고 기독교에 입신, 이후 무교회주의 기독교의 창시자였던 우치무라 간조의 성서연구회에 들어가 7년간 성서를 배웁니다. 1922년 동경 고등사범 영문과에 입학했다가 이듬해 지리·박물과로 전과하여 1927년 졸업과 함께 귀국, 함흥 영생여고보에서 교편을 잡습니다. 그 해 7월, 우치무라 선생의 문하생인 함석헌·송두용 등과 조국 구원의 유일한 길로 믿고 동인지 <성서조선>을 창간합니다. 1928년 양정고보로 전근하고, 이 무렵 남강 이승훈·춘원 이광수 등과 교유하지요. 1930년 5월 <성서조선> 제16호부터 주필을 맡았고, 1933년 7월에 <산상수훈연구>를 발간했으며, 1940년 복음 전도에 전념하기 위해 양정고보를 사임한 뒤 함석헌과 공저로 『우치무라 간조와 조선』을 출간합니다. 같은 해 9월, 현 경기고교인 제일고보에서 교편을 잡게 되나 불온 인물로 낙인찍혀 6개월 만에 쫓겨납니다. 1942년 3월, 권두언 ‘조와’가 발단이 된 세칭 ‘성서조선사건’으로 함석헌·송두용·류달영 등 12인과 함께 1년간 미결수로 옥고를 치릅니다. 선생은 일제 말까지 끝내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고, 일제의 극심한 국어 탄압 정책 하에서도 우리말 수업을 고집했으며, 1943년 3월 불기소 처분으로 출옥한 뒤 이듬해 7월 흥남 질소비료회사에 입사했으나, 1945년 4월 발진티푸스 감염으로 급서하셨습니다.

 

사회`:`수고하셨습니다. 그럼 김수봉 선생부터 발표해 주시지요.

김수봉`:`겉보기로는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산 속 기도터에서 발견한 개구리가 혹한에 얼어죽었으나 그래도 전멸은 면한 듯하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생명존중 정신을 주제로 한 글이라고도 볼 수 있겠으나, 이 글의 시대적 배경과 한국 기독교계의 선각자로서 독립운동을 했고, 학생들에게 독립정신을 고취시킨 선생의 사상적 배경, 그리고 이 글로 인해 옥고를 치른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암시성과 상징성이 매우 짙은 글이 됩니다. 개구리, 곧 ‘친구 와군’들은 우리 민족을 암시하고, 자신의 암상기도는 구국을 염원하는 정신으로 볼 수 있겠지요. 혹한의 얼음 속에 죽어가는 와군은 1942년 일제 말의 한층 혹독한 탄압 속에 죽어간 우리 동포들을 암시한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살아 남은 두어 마리 개구리처럼 우리 민족의 강인함과 끈질김을 보면서 안도하고 감사하는 마음, 바로 이것을 말하고자 쓴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글 속에는 여러 가지 상징이 나오는데, 먼저 ‘담潭 속에서 암색岩色에 적응하여 보호색을 이룬 개구리들’은 우리 민족이 일제 치하에서 살아 남기 위해 창씨개명 등을 통해 그들에 예속되어감을 나타낸 것 같고, ‘예년에 얼지 않았던 곳까지 얼어붙었다’고 한 것은 그 무렵 일제 탄압이 더욱 가혹해진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두 군데 표현이 어색한 곳을 지적하자면 ‘천성天成의’ 성전은 ‘하늘이 만들어준’이란 뜻인 듯하나 사전에도 없고 어색하니 차라리 ‘천혜의’ 성전이 낫지 않는가 싶습니다. 또한 ‘작은 담수’란 말도 ‘얕은 담수’란 말이 옳을 듯합니다. 이렇게 오늘의 문장 감각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 몇 군데 있었습니다.

 

사회`:`고맙습니다. 변해명 선생은 어떻게 읽으셨습니까?

변해명`:`원래 김교신 선생은 수필가가 아니고 우리 나라에 무교회주의를 뿌리내리게 한 종교지도자거든요. <성서조선> 창간사에 보면 ‘다만 우리 마음의 전부를 차지하는 것은 조선이라는 두 글자이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낼 제일 좋은 선물은 성서 한 권뿐이니…’라고 했고, 맨 뒤에 보면 ‘성서조선아, 너는 소위 기독교 신자보다는 조선 혼을 소유한 조선 사람에게 가라’라고 했습니다. 이분이 무교회주의를 바탕으로 성서 연구를 하는 동아리를 만들고 활동한 것은 진실로 우리 나라를 생각하고 일제 압박으로부터 조국을 구해 낼 애국 혼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이 글은 다중적 상징성을 지닌 수필로서 ‘개구리’는 우리 민족을, ‘담’은 우리 민족이 살고 있는 공간을, ‘보호색’은 점점 일본에 동화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나타낸 것으로 보입니다. 많은 개구리가 동사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전멸은 면했나 보다며 기뻐하는데, 158호가 나올 때까지 호시탐탐 노려보고 있던 일제가 감옥에 잡아넣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따라서 이 글은 하나의 단순한 수필이기보다는 선생의 애국적인 염원이 담겨 있는 글이라고 봅니다.

구양근`:`누구도 경험하기 어려운 구도자의 은밀한 체험을 은유적으로 말하면서 민족의식을 고취한 작품이라고 봅니다. 담 속에서 반석 위로 엉금엉금 기어오르는 와군들의 모습은 우리 민족의 항일 기개를 표현한 것으로 읽힙니다. 내용 면에서는 일제의 통치가 굳어진 것을 얼음이 두꺼워지고 투명을 가리운 것에 비겨서, 기도소리, 즉 독립의 염원이 이막에 닿는지 안 닿는지 알 길이 없다고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종국에는 빙괴가 풀리고 서로 안부를 묻는 환희의 날을 말하고 있지요. 말미의 ‘아, 전멸은 면했나 보다!’는 민족의 재생을 확신하는 말투이지요.

세부적으로 보면 너무 짧아서 현재의 시각에서는 완전한 수필이라고 하긴 좀 곤란합니다. 또한 ‘일부일日復日’, ‘이막耳膜’, 이런 생경한 어휘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금 같으면 어떤 수필 잡지에서도 받아주지 않을 만한 내용인 것을 생각하면 일제가 어지간히 자신 없었던 모양입니다. ‘조와’는 오히려 <성서조선> 권두언이었기 때문에 또한 그로 인해 <성서조선>이 폐간되고 함석헌 등 12인과 함께 1년씩 옥고를 치른데서 더 많은 의미가 부여된 글이라고 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역시 수필은 글쓴이의 인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글이란 것을 저는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다른 분들도 말씀하셨듯이 김교신 선생은 가히 마틴 루터와도 견줄 수 있는 인품의 소유자였다고 느껴집니다. 같은 무교회주의의 길을 가셨고, 제가 대학 시절 가장 존경하던 인물인 함석헌 선생은 종국에는 해방 후 종교다원주의를 수용하고 퀘이커 교도로 개종하였으나, 김교신은 천국은 교회를 통해서 단체로 할인해서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며 끝까지 자기 발로 천국에 걸어 들어가는 ‘김치 냄새 나는 한국식 기독교’의 무교회주의를 고수했다는 점에 존경을 금할 길 없습니다.

손기정 선수는 양정고보의 ‘비범하였던 스승’을 회상하면서 지식보다도 덕을 가르쳐주신 분이라며 ‘어머니의 젖’과도 같은 것을 먹여주신 분이라 했는데, 옥고를 치르고 나온 뒤 흥남 질소비료주식회사에서 오천 여 조선인 노동자들의 복지를 위하여 진력하다가 그토록 염원하던 조국 광복을 4개월 앞두고 서거하신 것은 더욱 우리를 안타깝게 합니다.

 

사회`:`그럼, 지금부터 질문을 받겠습니다. 회장님부터 시작해 주십시오.

허세욱`:``민족혼·생명력·투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데 왜 하필 개구리를 내세웠을까요? 개구리가 마지막까지 버티는 강인한 동물로 여겨지지는 않는데 말씀입니다. 또, 제목을 ‘경칩’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이 수필의 원형은 개·사슴 등의 작은 동물에 빗댄 당나라 유종원柳宗元의 우언寓言 수필에 있지 않은가 싶은데, 개구리를 등장시킨 것이 문화사적으로 전후 좌우에 연관되는 바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변해명`:``저도 왜 하필 개구리인지 곰곰 생각해 봤는데요, 반석 기도터에서 실제로 봤을 수도 있겠고, 또 하나는 개구리가 동면하는 동물이지 않습니까? 겨우내 죽은 듯이 잠을 자다가 깨어나는 개구리처럼 우리 민족도 지금은 죽은 듯이 엎드려 있지만 언젠가는 깨어나 세상 밖으로 뛰어나오리란 것을 암유하는 함의가 있지 않겠는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회``:`세 분 토론자들 중 또 다른 답변은 없으십니까? 없으시면 사회자가 잠깐 개입해 보겠습니다.

수필을 쓰다 보면 주제를 먼저 설정하고 그에 맞는 자료를 구해 글을 쓰는 경우도 있고, 거꾸로 눈앞에 있는 소재에서 주제를 도출해 내는 경우도 있지요. 이 경우엔 아마 후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개구리와 작은 담을 보고 소재로 삼아 쓴 글로, 개구리의 특성 때문이 아니라 우연히 눈에 띈 개구리에서 절묘한 주제를 뽑아낸 경우로 보입니다.

허세욱`:`우연한 발견인데 거기에 의미부여를 했다는 이야기로군요.

김진식`:`부여의 금와왕 탄생 설화에서도 보듯이 우리 민족 토템 신앙 중에 개구리를 신앙화하는 게 있었습니다.

 

사회`:`토템은 단군신화의 곰처럼 숭배의 대상인데, 여기서 개구리는 연민의 대상이 아니겠습니까? 그 갭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하는 흥미로운 문제가 생기는 군요.

이경은`:`저는 중문과 출신이라 한자어에 비교적 익숙한 편이지만 오늘날의 일반 독자들에게는 언뜻 잘 다가오지 않을 듯한 어휘가 많아요. 또 제목에 왜 ‘조弔’ 자를 붙였을까 의아하기도 하고요.

 

사회`:`‘조’ 자는 앞부분에 나오는 죽은 개구리를 대상으로 한 것이지요. 이 글은 살아 있는 개구리에 중심을 둔 글이므로, 아까 회장도 ‘경칩’이란 제목이 더 어울릴 듯하다고 하셨듯이 주제를 잘 드러내는 제목은 아닌 셈이지요. 염정임 선생께선 어떻게 읽으셨습니까?

염정임`:`논란의 여지가 별로 없는, 주제에 공감과 일치를 볼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비록 혹한의 압박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전멸은 면한 개구리처럼 언젠가는 해방이 되리라는 희망의 여지를 남겨둔 작품이라고 봅니다. 이 글은 개구리를 기도터에서 실제로 보고, 그것으로부터 수필을 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짧지만 응집되어 있고, 수필사적으로도 중요하고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소경`:`저는 수필 작품으로보다는 애국지사가 쓴 우리 민족에게 고하는 글로 읽었습니다.

김국자`:`퍽 좋은 수필이라고 전에 배웠으나, 왜 좋은가, 어떻게들 평하시나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아, 전멸은 면했나 보다!’라는 결미가 멋지고 감명적입니다. 다만 문장은 ‘작년 늦은 가을 이래로’, ‘또한 찬송하고’에서 보는 것처럼 ‘이래로’, ‘또한’ 이런 불필요한 말 때문에 오늘날의 감각에서 보면 다소 늘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사회`:`이 글을 쓴 때로부터 한 60년이 흘렀으니 아무래도 차이가 있겠지요?

정부영`:`‘보호색을 이룬 개구리들’의 의미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봤는데요, 일제에 동조한 우리 민족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제 치하라는 그런 상황에 처하여 억지로 동조하지 않을 수 없었던 우리 민족 전체를 이야기하는 것인지가 궁금합니다.

 

사회`:`보호색이란 말을 굳이 ‘일본을 닮아간다’ 이렇게 의미부여를 하기보다는 그저 사실을 쓴 것으로 보는 게 어떨까요. 우리가 여기서 좀더 주목해야 할 점은 나중에 몇 마리는 살아 남았음을 발견했다는 사실이 아닐까요? 남기수 선생님은 어떻게 읽으셨습니까?

남기수`:`언어의 진행이 퍽 굵고 담대한 기상이 느껴져서 독자로서는 즐거웠습니다. 한자를 겸용한 문체 또한 압축미가 있고 힘이 있어서 좋았고요. 글의 상징성은 누구나 보면 알 수 있고, 그 다중적인 의미가 독자에 따라선 얼마든지 달리 해석 가능할 뿐더러, 징검다리처럼 글에 대한 믿음을 부여하고 안내 역할도 해서 아주 좋았습니다.

어떤 글이든 길이나 정서 혹은 주제에 관계없이 나름의 장점을 지닌 좋은 수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재확인시켜 주는 것 같아 기뻤습니다. 다만, ‘기도’나 ‘찬송’은 개신교에서 주로 사용하는 어휘인데, 이 둘을 동일한 의미의 다른 어휘로 바꾼다면 종교와 시대성을 넘어서는 더욱 포괄적인 글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한형주`:`김교신 선생은 우리 동향이고 중학교 선배이며, 함흥 사포리는 제가 어려서 뛰놀던 들판입니다. 더욱이 제 누님뻘 되는 분들이 이분이 재직하던 영생여고보에서 가르침을 받아서, 김교신이란 이름은 제겐 아주 어려서부터 이곳 저곳서 자주 들은 귀익고 정다운 이름입니다. 저는 선생이 이런 글을 쓰신 것을 몰랐고 또 발진티푸스로 돌아가신 것도 오늘 알았습니다. 작품에 대해서는 꽤 깊이가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듭니다.

이응백`:`앞서 왜 ‘조상 조弔’ 자를 썼을까 했는데, 전멸은 면한 것 같긴 하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살아 있는 개구리를 향해서도 조상을 한 거지요.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되지만, ‘활 궁弓’에 막대기를 걸어놓은 것이 ‘조상 조弔’ 자입니다. 활은 싸울 때 쓰는 것인데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휴전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휴전할 때는 막대기에 활을 걸어놓으니까 ‘조弔’ 자가 된 것입니다.

 

사회`:`이 글을 한일 간의 과거 역사를 전혀 모르는 외국인에게 번역해서 읽힌다면 주제를 무엇이라고 잡을까요? 글쓴이가 개구리가 죽으니까 묻어주고 또 몇 마리 살아 있는 것을 보자 ‘아, 전멸은 면했구나!’ 하며 안도하는 것을 보고는 생명존중 사상을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작품을 읽는 방법으로 상반되는 두 가지가 있는 듯합니다. 하나는 작가의 전기적 사실이나 작품이 씌어진 시대적 배경을 중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작품 외적인 것을 철저히 무시하고 작품 자체만을 분석하는 것인데, 지금 우리는 전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후자를 취한다면 생명존중사상쯤에서 끝나겠지요.

또 하나, 한때 수필가들 중에는 우리가 쓰는 서정적 수필에 회의를 품고 수필가도 서정성을 배제하고 논리를 주장하자, 심지어 어떤 이는 논설문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저는 거기 반대했었습니다. 수필은 역시 따지는 글이 아니라 독자의 정서에 호소하는 글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예로 이 ‘조와’를 내세웠지요. 이 글은 무슨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면서도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지 않습니까. 정서적 글이라고 해서 주장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게 제 생각이었는데, 나중에라도 회원 여러분께서 이 문제에 대해 한번 숙고해 볼 기회로 삼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김수봉`:`사회자께서 이 작품을 합평 작품으로 선정하신 배경과 의도가 궁금했었는데 지금 하신 말씀으로 모두 풀리는 군요. 짧은 수필에 대한 반응과 이 글의 문학성에 대한 반응 그리고 오늘날 수필가들이 이런 글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두루 보고 싶으셨던 것이겠지요.

 

사회`:`네, 수필 길이에 대한 제 개인적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과거엔 원고지 12~13장이 수필 길이로 적당하다고 생각했었으나, 원고지 5, 6장 혹은 6, 7장으로도 충분히 깔끔하게 만들 수 있는 글을 수필 길이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괜히 물을 탄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반면 서른 장은 되어야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글이 있는데, 억지로 12~13장 안에 우겨넣다 보니 도시 무슨 말을 하려던 것인지 종잡을 수 없는 글이 되어버리기도 하지요. 결국 3장이 됐든 30장이 됐든 생각이 미치는 데까지, 그 생각을 다 담을 때까지 쓰면 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합평 작품에 대해서는 짧은 글이라는 점, 서정 수필로도 메시지 피력이 가능한가 하는 점을 살펴보면서, 한문이 많이 섞여 있긴 하지만 60년 전 글 치고 상당히 정확한 문장이라고 여겨져 골라본 것입니다.

윤모촌 선생님께서 보내 온 작품 평을 읽어드리겠습니다.

─ 일제 말기 조선의 지성이 ‘조와’라는 비유와 상징을 통해 일제의 침략성을 고발하고 항거한 글입니다. ‘층암이 병풍처럼 둘러싸고’는 조국의 암울한 상황을 말한 것이고, ‘평탄한 반석, 천성의 성전’은 유구한 역사의 조국을 뜻합니다. ‘엉금엉금 기어오는 암색의 보호색 개구리’는 억압과 착취에 시달려온 민족을 말한 것이고, ‘산중의 대변사’는 조국에 위기가 닥쳤음을, ‘엷은 얼음 두꺼운 얼음’은 저들의 가혹한 침략 행위가 날로 심해져 감을 암시합니다. ‘기도와 찬송 소리가 이막에 닿는지’는 비탄과 절망을 읽게 하며, ‘바위 틈의 빙괴도 드디어 풀리는 날’은 머지않아 저들이 패망한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개구리 시체 두세 마리’는 민족의 불가피한 고통과 희생을, ‘지난 겨울 혹한에 밑바닥까지 얼어서’란 대목은 일제의 탄압이 극한 상황에 이른 것을 뜻하지만, ‘아직 두어 마리가 기어다닌다. 전멸은 면했나 보다!’로 희망을 잃지 않는 의지를 피력했습니다.

 

사회`:`이상으로 김교신 선생의 ‘조와’를 함께 읽어보았습니다. 김태길 명예회장께 총평을 부탁드립니다.

김태길`:`총평이 아니라 다시 읽은 독후감이 되겠습니다. 1970년대 후반 월간 <수필문학> 시절에 이 작품을 가지고 좌담회를 했는데, ‘좋은 수필’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나온 이야기들보다는 오늘 합평회에 나온 이야기가 더 폭과 깊이가 있었습니다.(웃음)

이 글은 수필입니다. 서정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수필의 범위를 넓게 잡아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입니다. 몽테뉴나 파스칼의 에세이는 전혀 서정적이지 않지요. 너무 짧지 않은가 하는 견해에는 사회자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수필이 짧아야 될 것도 없고 길어야 될 것도 없고, 짧게 좋은 글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사회`:`이것으로 오늘 합평회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