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론飮食論 초抄

 

 

                                                                                      정진권

돼지머리고기

내가 전에 근무하던 중앙청 근처에 욕쟁이 할머니집이라고 있었다. 다섯 평도 채 못 되는 작은 순댓국집이다. 유명했다. 그러나 순댓국보다는 돼지머리고기로 더 유명했다. 바람 찬 겨울날의 퇴근 때면 주머니 가벼운 공무원들로 늘 만원이었다.

숭숭 썰어서 한 쟁반 푸짐하게 내오는 그 돼지머리고기는 보기만 해도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소주 한 잔 죽 들이키고 고기 한 점 새우젓 꾹 찍어 널름 입에 넣고 나면 찬바람 이는 허전한 뱃속이 어느 새 든든해졌다. 천 근 쇳덩이도 번쩍 들 것 같았다.

둘러앉은 동료들의 이야기는 늘 즐거웠다. 더러는 음담패설도 늘어놓고, 더러는 사라진 왕년을 과장하기도 했다. 갑자기 비분강개하며 팔뚝을 휘젓다가 욕쟁이 할머니의 걸쭉한 욕지거리에 폭소도 터뜨렸다. 그러노라면 하루의 피곤이 싹 가셨다.

욕쟁이 할머니집은 별로 깨끗치가 못했다. 아니, 구질구질했다. 게다가 이리 앉으라 저리 앉으라, 좁혀 앉으라 다가 앉으라 할머니의 잔소리도 퉁명스러웠다. 그런데도 늘 만원이었던 걸 생각하면, 그런 집이 마음 편한 나 같은 사람도 많았던 모양이다.

 

우거지국

내가 근무하던 학교 근처 올림픽공원 안에 큰 음식점이 하나 있다. 교문에서 천천히 걸어 5분 거리다. 나는 그 집의 우거지국을 좋아했다. 가기도 쉽고 맛도 있고 무엇보다 값이 싸서다.

이따금 내 연구실을 찾는 친구들이 있었다. 오다가다 들르기도 하고 얼굴이나 보자며 멀리 찾아오기도 했다. 그럴 때가 혹 점심 무렵이면 나는 그들을 데리고 공원 안 그 음식점으로 갔다. 소주 한 잔 죽 들이켜고 따끈한 우거지국에 밥술을 뜨며 우리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노라면 창 밖엔 어느 새 새 잎이 푸르고 소나기가 퍼붓고 붉고 노란 단풍잎이 곱게 빛났다. 더러는 흰 눈이 내리기도 했다. 우거지국은 값이 싸지만, 이야기는 즐겁고 자연은 아름다웠다.

내가 보고 싶어서 나를 찾아오는 내 친구들, 좀 나은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우거지국밖에는 먹을 줄을 몰랐다.

 

순두부

나는 이따금 아내와 함께 도봉산道峰山엘 간다. 등산이라기보다는 그저 산책이다. 이 이야기 저 이야기하며 걷다 보면 어느덧 점심때다. 그러면 내려와 순두부집엘 간다. 도봉산 어귀에는 순두부집이 많다. 아내는 순두부에 밥을 말아 천천히 뜨고 나는 아내의 눈총을 받으며 순두부를 안주 삼아 소주잔을 기울인다. 겨우 순두부나 사 주는 내가 아내는 좀 섭섭할 것이다.

길을 가다가 친구를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때 제일 만만한 곳이 순두부집이다. 한낮에 해장국집엘 가자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빈 주머니로 비싼 집을 가잘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장면이 제일 쌀 것 같지만, 중국집엘 가면 안주 하나는 시켜야 한다. 어떻든 자글자글 끓는 순두부에 소주 한 잔 땡 하고 나면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내 친구도 별수없이 그런 사람이다.

내가 내 아내와 걷는 길에 순두부집이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내가 내 친구와 만나는 길에 순두부집이 있다는 것도 고마운 일이다.

 

해장국

우리 동네에 선지 해장국집이 하나 있다. 나는 이따금 새벽에 그 집엘 간다. 우거지도 후물후물 푹 물렸고 선지도 인심 좋게 뻑뻑하다. 나는 소주를 좋아하지만 그때만은 막걸리여야 한다. 찬 막걸리 한 대접 죽 들이켜고 따끈한 국물에 선지 한 점 우물거리고 나면 답답하던 속이 확 풀린다.

우리 집에서 승용차로 한 20분 거리에 뼈다귀 해장국집이 하나 있다. 나는 일요일 아침, 아내와 초등학교 꼬마 두 녀석을 태우고 그 집엘 더러 간다. 국물도 시원하고 뼈에 붙은 살코기도 많다. 꼬마들은 할머니 앞에 그 뼈다귀를 치켜들고 공룡 뼈라며 깔깔댄다. 그러나 해장술은 할 수 없어 좀 섭섭하다.

자, 여러분,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속을 풀고 싶거든 선지 해장국집엘 가시라.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꼬마들에게 생색을 내고 싶거든 뼈다귀 해장국집으로 가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