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

 

 

                                                                                               유선진

나는 매일 밤 일기예보를 본다. 아홉 시 뉴스는 놓쳐도 그 말미에 있는 예보 시간은 잊지 않고 챙긴다. 특별히 외출할 일이 있어서 미리 준비해 놓으려는 게 아니다. 그냥 일기예보 보는 일이 좋은 것이다.

기상 캐스터의 설명을 듣기보다 화면에 나오는 기상도에 흥미가 있다. 그래서 나에게 일기예보는 듣는 일이 아니라 보는 일이다. 그리고 인생을 생각하게 하는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일기를 비 오고 바람 불고 맑은, 날씨로가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로 느끼게 되었다.

어느 해 태풍이 대단하던 가을이었다. 곳곳에서 피해가 속출했었는데 그때 화면을 통해 태풍의 눈을 보았다. 힘차게 돌고 있는 팽이의 무늬 같은 태풍 속에서 한가운데 있는 태풍의 눈이 마치 살아 있는 맹수의 눈처럼 날카롭고 번뜩이는 것이었다.

태풍은 살아 있는 생물이구나. 그러고 보니 큰 나무를 뿌리 채 뽑아버리는 바람도 살아서 작용하는 힘이지 않은가. 날씨가 생명체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었다. 그 스스로가 물러가지 않는 한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괴력의 소유자. 그래서 나는 일기예보를 볼 때면 힘있는 어떤 위대한 존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즈음은 ‘날씨와 생활’이라고 이름을 바꿔서 날씨에 따라 알맞은 생활을 하도록 정보를 주고 있다. 아이들은 쉽게 새로운 명칭에 익숙해지는데 나는 끝까지 일기예보라고 고집한다. “날씨와 생활 시간 되었나요?” 물음에 아직 “일기예보 시간 아니야”라는 식으로…….

예보 시간에 통보관은 기상도에서 한반도 지도 위에 곳곳의 일기예보를 그림으로 보여준다. 우리 나라를 지나는 기류를 따라 지방마다 날씨가 다른데, 일기에 따라 햇님 또는 뭉게구름을 그려놓는다. 주간 예보의 요일 밑에도 예상되는 날씨를 주홍색의 태양, 흐린 날의 구름, 비 오는 날의 빗줄기의 표시들로 해놓는다. 이 그림들을 보면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시간에 곳에 따라 날씨가 다르고, 고작 일주일 사이에 똑같은 날씨가 거의 없다는 사실은 나를 조용히 흥분시킨다. 물론 장마 기간이나 가뭄이 계속될 때는 예외이긴 하지만 유심히 관찰하면 그때의 하늘빛도 각기 다르다.

내가 일기예보 시간을 열심히 챙기는 것은 이처럼 맑고 흐리고 비 오고 태풍 부는 고르지 않은 날들을 거기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비 오고 바람 불고 천둥치는 것을 아무도 막지 못한다는 이치를 거기서 알 수 있는 까닭이다. 그리고 비가 온다고 아무리 예고해 주어도 우산을 준비할 뿐, 태풍이 분다 해도 부두의 선박을 묶을 뿐, 사람은 다만 그치기를 기다리는 무력한 존재임을 거기서 확인하기 때문이다.

일기예보를 보면 사람이 살아가야 하는 길이 그 곳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맑은 날도 있지만 흐리고 바람 불고 비 오는 날이 많은 일기처럼, 그리고 그 비 오고 태풍 몰아치는 것을 아무도 거절할 수 없는 것처럼, 다만 비 오면 우산 받고 바람 불면 배를 묶듯 그렇게 조용히 인생길의 폭우가 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일기예보를 보면서 생각을 정리한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시간에도 맑은 곳, 비 오는 곳이 있다는 사실, 고작 일주일 간의 하늘의 색이 각기 다른 것도 나를 위로하는 일이 된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내게 주어져 나의 존재를 규정지어 놓은 것들에 대해 때때로 의기소침해지고 쓸쓸할 때가 많았는데 생존하는 모든 것은 다르게 되어 있고, 이 다르다는 것이야말로 개체를 가장 귀하게 만들어주는 최고의 예우임을 알게 한다. 잘났든 못났든…….

홍수와 가뭄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 산에 나무를 심고 물길을 내고 둑을 쌓으며 그것에 대비할 수는 있지만, 비 오고 가무는 것을 거부하지는 못한다.

일기예보는 내 인생에도 풍우와 한발이 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것을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것임을 가르쳐준다. 다만 감당할 수 있는 내적 힘을 기르라고 이야기한다.

살아가는 길에도 일기를 예보해 주듯 인생예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볼 때가 있다. 인생예보만 있다면 미리 준비하여 낭패를 면할 것이 아닌가. 그러나 화면에서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기예보와 다를 뿐 인간사란 현재에서 내일의 예고가 이미 이루어져 있는 게 아닐까. 오늘을 튼실하게 사는 일이 내일의 예고가 될 것이다.

나는 지금도 일기예보를 듣고 있다. 아니 보고 있다. 일기예보를 보고 있으면 내게 오는 비바람을 이길 힘이 생긴다. 오늘은 흐리지만 내일은 맑을 거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그리고 내 삶의 내일의 예고를 나의 오늘에서 찾게 된다. 일기예보를 보는 일이란 나에게 오늘을 잘 살게 하는 힘이다.

나는 일기예보 보기를 아주 좋아한다.

 

<월간 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섬이 말한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