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에서

 

 

                                                                                     사공 정숙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을 들여다본다. 세수를 마치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면서 또 화장수나 로션을 바를 때도 거울 속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외출할 때도 거울 앞에서 남 보기에 흉하지는 않은지 전신을 훑어본다. 그럼에도, 그렇게도 자주 보는 얼굴인데도 나는 나를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확하게 타인을 보는 것과 똑같은, 객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나를 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니면 타성에 젖어 거울 안에 있는 얼굴을 그냥 나려니 하고 무심히 넘겨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기는 그럴 것이다. 어느 곳 하나 반듯하게 생긴 부분이 없는 얼굴에 매번 실망하거나 속이 상한다면 살아가는 의욕이 없어 곤란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객관적인 미의 잣대를 쓰지 않고 대충 넘어가는 나의 태도는 삶의 지혜를 터득한 사람처럼 꽤나 훌륭하다. 결코 잘생기지 않은 얼굴을 매일 쳐다보면서도 그런대로 괜찮은 얼굴로 윤색해 버리는 뇌의 작용은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그리고 끊임없이 쌓아온 마음의 수양도 한 몫을 했을 터이다. 나의 외모는 스스로의 잘못이 아닌 유전의 결과라는 인식이다. 마흔 넘은 나이에서 오는 여유까지 보태어 내 얼굴에 그지없이 너그러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며칠 전 한 장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건 아니야, 이건 내가 아니야.”

내가 찍힌 증명 사진을 보면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사진 속의 얼굴이 너무 실망스러웠던 것이다. 비자 신청용 사진이라 흰 바탕에 보통 증명 사진보다 사이즈가 컸다. 사진에 칠해지는 어떤 윤색도 용납되지 않는다니 사진은 아주 정직하게 나를 옮겨 놓았을 것이었다.

지금껏 사진첩에 보관된 스냅 사진은 그래도 나았다. 나를 조금은 괜찮게 보이게끔 만드는 기능이랄까, 여지가 있었다. 물론 내가 너무 정직하게 찍힌 이상한 사진들도 많았지만 그것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슬금슬금 사라지고 말았다. 마치 사진에 발이 달려 저들이 스스로 잠적해 버린 것처럼. 나는 그 사진들에게 유감을 품은 적은 없었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던 일상화된 습관처럼 스냅 사진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사진들을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싶은 것만 보았다. 장점은 보고 단점은 외면하였다. 보고 싶지 않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들은 머리 속에서 지우고 휴지통 속에 던져버렸다.

나는 비자 사진을 동네에서 찍지 않았다. 사진에 가해지는 보정 작업을 내심 기대했을까. 딸이 권하는 대로 버스를 타고 젊은 사람들로 북적대는 삼성동의 코엑스몰까지 갔다.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다듬고 화장을 한 것은 물론이었다. 그렇게 반나절의 시간을 투자하여 나온 사진이었다. 사진을 보자마자 딸에게 엉터리 사진관을 소개해 주었다며 터무니없이 화를 냈고, 집으로 오는 내내 마음이 상해 있었다. 그런 나를 보고 딸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사진 속의 나는 엄숙하게 앞을 응시하고 있다. 불과 몇 미터 앞에 놓인 카메라 렌즈를 의식한 듯하다. 좀더 멀리, 먼 미래의 꿈을 향해 시선을 두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입을 앙다물고 바로 앞을 쏘아보는 눈매에는 제법 힘이 들어가 있지만 어색해 보였다. 알고 있다. 아직도 나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숨기지 못하고 있음을. 눈빛만이 그럴까. 뺨과 턱에는 욕심이 덕지덕지 붙어 자라고 있었다. 좌우의 균형이 맞지 않는 입매는 매사에 시니컬한 사람의 정조情調가 엿보인다. 스냅 사진 속의 나를 나의 참모습이라 믿고 싶었던 나. 증명 사진 속에는 애써 숨겨두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결점이 송두리째 드러나 있었다. 거짓은 언젠가, 어느 경로를 통해서든 드러나게 마련이었다. 남보다 나 자신이 먼저 알아보는 나의 참모습을 말이다.

딸에게, 나 자신에게 화를 낸 것은 사진을 통해서 나의 내면을 순간 일별한 까닭이었다. 온통 멋대로 나를 모양새 좋게 포장해 온 사람은 바로 나니까, 애써 눈을 가리고 모른 척 지낸 것과 다르지 않았다. 내 앞에 디밀어진 한 장의 사진에서 나의 전부를, 살아온 날들의 집합을 본 것이다. 나는 조금 억울하였다. 내가 아무리 나를 멋지게 과대 포장한 죄가 있다해도 그 멋을 향해 지향한 나의 수고는 보상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탈속과는 거리가 더 멀어진 나의 모습이다. 왜 좀더 반듯하게 살지 않을까. 꿈을 잃어버리지 않고 좀더 열심히 살 수는 없을까. 여전히 초라한 나의 모습을 마주하기란 어려웠다.

그렇지만 이런 나를, 삶의 여정 속에서 너무 심하게 나무라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내게 말해 본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이번 사진은 내 사진첩 속에서 오래도록 머물게 될 것이다.

 

<예술 세계>로 등단.

수필집 『꿈을 잇는 조각보』, 『노매실의 초가집』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