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왕리

 

 

                                                                                       이미연

이즈음 서울에서 가까운 바다로 가는 길 하나가 더 생겼다. 시원스레 난 길을 달려 인천 공항을 옆으로 끼고 반대편으로 가면 바닷가에 도착한다. 용유도에 위치한 을왕리 해수욕장이다.

공항이 옮겨오기 일 년 전 여름이었다. 고등학생인 아이들 때문에 피서는 꿈도 꾸기 어려웠다. 바다로 가고 싶어 가까운 ‘을왕리’로 가자고 말을 꺼냈다. 아이들은 월미도에서 배 타고 영종도를 경유해 가는 길이 불편해 싫다고 했다. 황해가 만들어낸 누르스름한 바닷물도 좋아하지 않았다. 게다가 변변한 편의시설도 없는 바닷가, 모래, 햇빛, 서해안의 갯벌을 떠올렸다.

내가 말했다. “지금의 모습은 변할 것이다. 다리가 놓여 배를 타지 않고도 갈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앞으로 변할 모습과 이번 여름의 모습을 비교하면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나한테도 비슷한 경험이 있으니까”란 이야기를 덧붙여 함께 가기로 결정했다.

내가 이 곳에 처음 와 본 것은 중학교 2학년이던 삼십 년 전이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제법 큰 배를 타고 한참을 와야 만날 수 있던 섬이었다. 우리 집 여섯 식구, 외할머니와 친척 세 집을 합한 대식구였다. 섬에 위치한 부두에 도착하여 짐을 들고 얼마간 걸으니 해수욕장이 나타났다. 백사장 뒤편에는 소나무숲이 우거졌고 그 뒤로 민가와 상가가 드문드문 있었다.

오는 길도 멀고 해서 며칠을 머물기로 했다. 긴 갯벌을 자랑하던 곳이라 밀물이면 옅은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썰물이면 개흙에서 조개를 잡았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선을 보면서 물과 갯벌에서 지내다 보면 어느새 하루 해가 저물었다.

저녁이 되자 어른들은 모두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밖에서는 썰물이 된 백사장에 천지를 뒤흔드는 통기타와 야전 전축 소리가 요란했다. 나는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나가고 싶다는 말도 못 꺼내고 하룻밤을 지나고 다음 날 밤이 되었다. 꾀를 써서 대학생이던 외삼촌을 깨워 아버지의 허락을 겨우 받아 숙소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백사장과 이어진 갯벌 여기저기 젊은이들이 불을 피워 캠프파이어를 했다. 깜깜한 검은 바다를 배경으로 모닥불 빛을 가운데 두고 그들은 동그란 원을 그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자 침이 꼴깍 넘어갔다. 신기함과 호기심에 찬 나는 넓은 운동장만한 갯벌 이곳 저곳을 밤이 깊도록 빠짐없이 둘러보며 돌았다.

바다 위 하늘에는 하얗고 동그란 달이 높이 떠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검푸른 바다에 길게 하얀 은가루를 뿌렸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 들리는 바닷가로 향했다. 그 곳에도 사람들은 짝을 지어 해안선 이쪽에서 저쪽으로 발에 바닷물을 적시며 걸어갔다. 나도 바닷물에 발을 담그며 그들 뒤를 쫓았다. 외삼촌은 혼자서 시흥을 돋우고 농경민족인 동양에서는 달이 운치가 있다며 아는 체를 했다. 내 생각에는 한여름의 태양의 열기가 이토록 밤이 되어도 식지 않은 젊음과 닮아 보여 태양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달뜬 마음을 안고 늦은 시간 돌아오니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월미도에서 배를 타고 가는 길에 우리 집 아이들은 내 이야기를 건성 들어주는 듯했다. 배를 타고 영종도에 도착한 후 자동차로 용유도의 오솔길을 달려 바닷가에 도착하자 식구들은 모래사장 둘레를 살피기 시작했다. 백사장에는 온통 우리 집 아이들 또래 청소년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엄마, 엄마가 한 말이 정말이네”라고 소리쳤다. 두 아이는 금세 이곳 저곳으로 구경을 나가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남편과 나는 바닷가에서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음악 소리가 귀를 어지럽히고 온갖 색으로 물들인 염색 머리에 고만고만한 나이를 짐작케 하는 놀러온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다. 옆에 앉아 있는 남편의 안색을 살피니 오기 싫다고 하던 처음과는 달리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는 남자아이들 다섯 명이 모인 텐트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중의 한 명이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그 모습이 남편의 앨범 속에 있던 까까머리 학생과 어느 정도 닮아 있었다.

남편은 학생 시절 친구들과 여행가서 찍은 사진들을 정리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신접살림에 더했다. 칠팔 명의 친구들이 교련복을 입고 또는 밀짚모자를 쓴 채, 여러 날의 야영으로 새까맣게 그을려 볼품도 없고 반항적이기까지 한 몸짓과 눈빛을 한 채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 속의 그들은 내가 본 평상시 직장인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그런 장난꾸러기 같은 그 모습들이 밉지 않았다. 그 사진 속의 친구들은 지금도 남편의 가까운 친구들이다.

밤이 되면 나는 예전처럼 캠프파이어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건만 요즘의 아이들은 밤하늘을 향해 폭죽이나 불꽃을 쏘아대는 것으로 대신했다. 어른이 보기엔 탈선이 걱정되는 아슬아슬한 아이들의 모습도 드문드문 보였다. 우리 집 아이들은 그런 모습들은 건성 보아 넘기며 이 여름의 열기와 바닷가의 정경을 즐기는 듯싶었다.

나는 세상이 무서워 아이들을 쉽게 밖으로 내보내지 못한 채 새장의 새처럼 가둬 키웠다. 또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공부와 냉방시설의 편안함에 길들여진 듯, 더운 여름에는 밖으로 쉽게 나가려 하지 않았다. 목 뒤로 흐르는 땀을 참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내게 남아 있는 오래 된 흑백 사진들을 들여다본다. 조개를 잡으려 허리 굽혀 석양을 뒤로 하고 갯벌에 얼굴을 묻고 있는 15세의 내 모습들이 남아 있다. 멀리서 나도 모르게 아버지가 찍은 사진들이다.

귀찮다는 생각으로 모래사장을 걷는 것조차 마다하면서 학창 시절을 보내는 아이들의 마음에 나는 추억 몇 가지를 넣어주고 싶었다. 나처럼 오랫동안 마음에 새겨지는 여름날의 한 페이지가 있었으면 했다.

나는 오래 된 사진들과 그 시절 식구들의 모습들을 기억한다. 이제는 더 이상 섬이 아닌 이 곳에 어른이 된 나와 내 나이 또래인 아이들이 왔다. 아이들 공부에 방해되고, 더운 여름날 움직이는 것도 못마땅해 하고 쓸데없는 일이라 남편의 핀잔을 들어도 나로서는 꼭 해주고 싶은 일이었다.

웬만한 운동장 두어 개만큼 넓은 갯벌 저 멀리서 파도가 밀려오기 시작한다. 그 거리만큼의 세월과 가버린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도 함께 밀려온다. 언젠가 내 아이들도 그리움을 안고 저 파도를 보게 될까? 그때도 파도는 지금처럼 지나간 세월을 추억과 함께 삼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계간 수필>로 천료(99년). 그레이스 수필문우회 회원.

공저 좬단감찾기좭, 좬창으로 바라보는 풍경화좭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