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판의 낮과 밤

 

 

                                                                                     宋圭浩

하노이에서 라이카이를 거쳐 이틀만에 올라온 표고 1,650m의 사파 마을이다. 산악 민족의 터전인 이 오지의 마을은 지난날 프랑스 사람들의 피서지이기도 하다.

새벽부터 내리는 짙은 안개비 속에 떠나는 낯선 판시판에의 길이다. 표고 3,143m의 판시판은 프랑스 사람들이 말하는 통킹알프스의 최고봉이다. 그리고 검정 옷을 입기 좋아하는 몽족이 우러러 받든 성스러운 산이기도 하다.

현지인 포터 15명을 더하여 모두 23명으로 짜여진 등반대다. 포터는 사파에 사는 몽족의 젊은이들이다.

오르는 들머리부터 아름드리 나무가 빗살처럼 들어선 밀림 지대다. 정글 속을 오르내리는, 마치 수수께끼와 같은 이 길 아닌 길이 옛 베트콩 루트였나 보다. 그나마 길을 아는 이는 포터의 우두머리 한 사람뿐이다.

이름도 모르는 봉우리들을 넘고 또 넘어 내려선 계곡에 맑은 시냇물이 반갑기도 하다. 좁다란 쉼터에는 버펄로와 사슴들이 실컷 물을 마시고 오순도순 놀다 떠난 흔적이 뚜렷하다.

15세짜리 소년 포터가 짊어진 닭도 어지간히 지쳤는지 꼬꼬댁 소리 한 번 내지 않는다. 아니다. 다가올 운명을 체념한 것이 아니라면 무언 단식의 항변인지도 모른다.

소년은 하늘의 별이라도 딴 듯이 노상 싱글벙글이다. 일찌감치 포터라는 영예로운 대열에 끼었기 때문이라 한다. 포터들은 말 없는 가운데 지켜지는 질서 속에 언제나 밝은 표정이다.

드문드문 기높이 늘어선 고사목이 마치 깨끗이 삶을 마친 선비처럼 안개비 속에 더욱 허옇게 돋보인다. 어두컴컴한 숲속에 초롱꽃보다 산나리가 더 환해 보인다.

표고 2,760m 봉에의 가파른 오르막보다도 더욱 험하고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깊은 계곡에 가로놓인 긴 외나무다리를 한사코 건너야 하는 두 다리가 달달달 떨린다.

 

그저 자연밖에 없는

한밤의 쉼터에

안개비가 내린다.

그런데

따스한 가슴은

어찌 이리 포근한가.

 

오늘은 토요일이다. 지금쯤 사파에서는 몽족 젊은이들의 모임인 ‘사랑의 마켓’이 한창이겠다. 그들은 노래로서 데이트 신청을 한다. 그러나 여기 젊은 포터들의 커다란 천막 안에서는 닭고기 요리가 한창이다. 이들에게는 짊어 나르는 짐이 애인이며, 정글을 헤치고 오르내리는 인생길이 흐뭇한 것이다.

새벽으로 접어들자 짙은 안개 속에 비는 더욱 기승을 부린다. 아침을 마친 등반대는 포터 3명만을 데리고 정상을 향해 떠났다.

혼자 남아 있는데 프랑스의 에리에네 씨가 자기의 침낭을 가지고 와서 보다 따뜻하게 지내라는 것이다. 어제 정상에서 내려와 하산길이라고 한다. 일행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남아 있다고 하자, 83이라면 자기 할아버지와 같은 나이라면서 거듭 눈인사를 한다.

한 포터가 ‘피그 피그’를 외치며 기뻐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산행을 마치고 마을로 내려와서 베풀겠다는 잔치 돼지를 기다리다 못해 한사코 지고 올라온 것이다. 저들이 드디어 솜씨 자랑을 하는 모양이다.

텐트를 나선 지 10시간, 정상을 향해 떠난 일행이 지칠 대로 지친 다리를 끌며 돌아온다. 짙은 안개 속에서는 헤드라이트도 쓸모가 없다. 완전히 파김치가 된 이들은 아무것도 싫다면서 몸을 내던지듯 드러눕는다.

돼지고기를 맛보라는 전갈이다. 그런데 넓적하고 두꺼운 바윗돌 밑에서 생나무가 눈물 맵도록 검게 그을리고 있다. 바비큐는커녕 큼직큼직한 고깃덩이가 어느 세월에 핏기라도 가실지 부질없는 기다림이다. 그러나 이것저것을 가리지 않는 포터들이 군침만을 흘리며 언제까지나 기다릴 리 없다.

시계바늘로서는 낮과 밤의 구별이 실감나지 않는, 비와 안개가 하나로 버물러진 판시판이다. 내일의 또 다른 하산 코스가 만만찮으리라 한다. 비바람이 텐트를 흔들고 두드리는 가운데 무심한 것이 잠이었나 보다.

 

“그대는 어찌하여 그 부드러운 관 속에 드러누웠는고! 아직 멀었거늘…….”

“예, 판시판의 화신님. 까마득히 옛스런 당신님이 그리워 찾아왔나이다.”

“그래! 우주의 질서와 따뜻한 손길은 자연의 품안에서 자라나니라. 그만 일어나야지 지지지…….”

 

아, 꿈이었구나 하는 순간 소년 포터가 천막의 문자락을 젖혀 열고 더운 찻잔을 공손히 내민다.

“까몽(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