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金奎鍊

곱게 물든 단풍잎들이 나를 창 밖으로 불러낸다.

아파트 뜨락으로 나와 무리지어 서 있는 나무들에게 다가가 본다. 나무 잎새들은 저마다 붉고 노랗고 다갈색인 가을 옷을 갈아 입고 먼 길을 떠날 차비에 여념이 없다.

지금쯤 팔공산에는 나무 잎새들의 마지막 열정이 불타는 축제가 장관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생각이 이에 이르니 나도 모르게 마음은 이미 팔공산에 가 있다. 행길에 나와 잠시 기다렸다. 동화사행 버스에 오른다. 차는 이내 도심을 빠져나와 산을 오르고 있다. 차창 밖은 홍·황·갈·녹색의 물감을 뿌려놓은 듯 온 천지가 울긋불긋 눈부시도록 찬란하다.

젊은 시절엔 때때로 탕심이 나를 팔공산으로 유인했다고 할까. 친구들과 함께 이 산에 오르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팔공산은 마음껏 떠들고 노래 부르고 춤추며 놀 수 있는 유흥의 장이었다. 새 소리, 바람 소리, 물 소리는 흥을 돋우는 풍악이었다. 풍류와 멋을 즐긴다며 제법 호기를 부렸다.

그러다 삼십대 후반에 폐결핵의 재발로 휴직을 해야만 했다. 당장 눈앞이 캄캄했다. 다섯 식구의 부양 책임, 계속되는 각혈, 죽음의 공포, 조여드는 가난, 서러운 고독… 그야말로 절망의 늪 속에 깊이 빠져 괜한 분노와 비애와 저주로 허우적거렸다. 그 무렵 허무감에도 두께가 있음을, 슬픔에도 짙음과 옅음이 있음을 깨달았다.

허나 궁핍할 때 영혼은 깨어나고 고독할 때 내면의 자기와 만날 수 있다고 했던가. 소년 시절 절 집에서 들었던 그리고 까맣게 잊어버렸던 말씀이 문득 찾아왔다.

‘오늘의 나는 누구 때문이 아니고 내가 지은 업(karma) 때문이다.’

생각이 이렇게 돌아서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비참한 현실이 쉽게 받아 들여졌다. 마치 니체의 운명 사랑처럼. 잠이 잘 왔다. 살아 있는 것만 해도 고마웠다. 지루하고 답답했던 시간이 금방금방 지나갔다. 이태 동안의 요양 끝에 직장에 복귀하게 됐다.

그 후로 철이 좀 들었다고 할까. 산에 오면 마음이 겸허하고 숙연해졌다. 나무며 바위들은 선정에 든 수도승처럼 보일 때가 많았다. 움직이는 모든 생명체는 그것이 비록 벌레일지라도 나의 도반道伴같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자연의 온갖 소리는 때때로 설법인 양 들리기도 했다.

어느덧 차는 팔공산 중턱 주차장에 와 섰다. 차에서 내려 사위를 둘러본다. 아름답기도 하고 장엄하기도 하고 비장하기까지 한 대자연의 경이로운 생명력에 홀연 머리가 숙여진다. 산정에서는 연신 소리 없이 불타는, 붉은 색깔 주조의 모자이크 바람이 파도처럼 밀고 내려온다. 몸에 와 부딪치는 산기가 도심의 공기와는 촉감이 다르고 맛이 다르고 향이 다르다.

저만치 유난히 잎새가 붉은 단풍나무가 서 있다. 다가가 햇볕에 반사되어 투명해진 잎새들을 응시해 본다. 실바람이 불 적마다 요것들은 서로 악수를 하기도 하고 껴안기도 한다. 된서리가 내리고 찬바람이 불면 이들은 일시에 산화해서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들은 지금 한순간의 짧은 생을 아쉬워한다고 할까, 아니면 고별의 애틋한 정을 나눈다고 할까. 필연적인 퇴락과 소멸이 있는 존재가 괜히 아프다. 하기야 사라져가는 존재가 어찌 잎새들뿐이랴.

어느 해 봄 파계사에 왔다가 숲의 경관을 보고 감탄했던 기억이 얼핏 지나간다. 파계사 뜨락에는 수령 삼백 년이 넘는 소나무, 느티나무, 회나무… 등 노목들이 성자처럼 합장하고 서 있다. 그들의 자태며 기품이며 분위기며 빛깔이 그 날 따라 우러러보였다. 식물에도 감각기능이 있다고 했던가. 오랜 세월 조석으로 목탁, 범종, 법고, 목어, 운판… 등 법음法音 소리를 들어왔으니 그럴지도 모른다. 어찌 그뿐이랴. 고승 대덕들의 법문이며 독경 소리도 무량으로 접해 왔으니 그 모습이 거룩할 수밖에.

사람들은 말하기를 ‘자연은 신의 예술이다’, ‘자연은 지혜의 보고다’ 또 ‘자연은 생명의 고향이다’라고들 한다. 모두 깊은 뜻이 함축된 명언이라 하겠다.

어쩌면 자연에는 겉모습과 속모습이 다른 양면이 있을지도 모른다. 겉모습은 끊임없이 변하고 생멸한다. 무량무수의 생명들이 왔다가 돌아가고 또 오고 또 간다. 생과 사가 회귀하는 사이에 물질의 윤회며 영혼의 윤회가 이뤄지는 것이리라. 한 번 왔다간 사람은 그 모습으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모든 생명체가 다 그러리라. 허망함과 덧없음과 슬픔이 여기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속모습은 불생不生이며 불멸不滅이며 불변不變의 자연력이다. 자연력은 모든 사물을 소멸시키는 힘과 태어나게 하는 힘을 동시에 갖고 있다. 자연력이 곧 조물주요 신이요 부처이리라. 이승도 저승도 자연 속에 있지 않을까. 자연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다. 거기엔 시공이 없기에.

오늘은 가사를 어깨에 걸친 파계사의 노목들이 묵언의 설법을 해 오신다.

사람들은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고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고도 아니도 낙도 아니며 그것은 자연일 뿐이란다. 자연 따라 무심히 이승에 왔다가 자연 따라 살고 자연 따라 무심히 가면 됐지 슬플 것도 없고 기쁠 것도 없단다. 생사가 자연이요 하나인데, 따로 해탈해야 할 생사가 또 어디 있느냐고 한다. 내 몸 속에서 도도히 흐르는 감성의 강물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며 크게 출렁인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내년에도 가을은 또 오겠지만 이 가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석양 그늘에서 풀벌레들이 지칠 줄 모르게 울고 있다. 오늘 밤에는 나 또한 깊은 상념으로 늦도록 뒤척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