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야

 

 

                                                                                        정원훈

나는 바티칸 궁의 교황과 동갑이다. 그러다 보니 그의 거취에 각별한 관심이 간다. 거동이 불편한 것 같지만 말소리가 쟁쟁한 것을 들으면 대견하게 생각된다. 그보다 법의에 쌓인 육중한 모습에 풍기는 그의 품격을 보면 나도 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현역現役이지만 할일을 다 마치고 삶에 대한 대오大悟의 경지에 이른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럼 자네도 그런 경지란 말인가?” 그런 질문이 있을 수 있다. 나의 답은 그러나 반드시 “No!”만은 아니다. 시정市井의 필부匹夫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약간 호연浩然한 심경에 잠겨도 무관하지 않을까. 무관치 않을까 하고 의문부를 붙인 것은 별반 자신이 없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우연히 내일 아침이라도 뒷간 변기를 타고 있다가 아찔해진다면 어떨까. 야! 이렇게 해서 나는 가는구나 하고 느끼며 “아이구, 죽기 싫어, 죽기 싫어!” 하고 소리나 지르지 않을까. 그런 약골의 추태를 부릴 것 같기에 큰소리는 못칠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죽음에 대해 제법 담담할 것이란 자신을 버릴 수 없다. 그런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한 손에 막대 들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백발 아닌(다 빠져 셀 머리털도 없다) 노쇠老衰를 치고 막고 하지만 별반 효과가 있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효력체감效力遞減 철칙에 꽉 물려 있는 것이다. 얼마 안 가서 이제는 자기 몸도 지탱할 수 없구나 하는 각성覺醒에 도달할 것으로 추측된다. 그때쯤 되면 신체뿐 아니라 두뇌세포의 감소로 뇌신경 작용도 현저히 퇴화되어 있을 것이다. 휴가에 온 손녀 보고 “어느 집 새색시지요?” 하고 헛소리나 하는 게 일쑤가 아닐까.

이렇게 노닥거리고 보면 “아니, 자네는 그렇게 쉽게 이 고해苦海를 벗어날 줄 알아?” 하고 꾸지람을 주시는 친구도 있을지 모른다. 내 자신도 그런 자연사 같은 행운이 내게 올 것이라고 꼭 그렇게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제 이 세상을 떠나게 될 만큼 나이를 먹은 한 고독한 영혼이 스리슬쩍 현세를 떠났으면 하는 소원을 품었던들 그게 뭐 그리 큰 ‘나무람감’이 될 것인가.

이렇게 이야기하고 보니 나는 죽음에 대해 담담할 이유를 또 하나 밝혀놓은 것과 다름없다. 그것은 내가 제법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이다. 고래로 고희古稀라 했다. 칠십이면 동갑내기 십중 팔구는 가 버리고 하나 둘 살아 남았을까 말까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후는 지면 절약을 위해 조선시대의 서예가를 중심으로 몇 분 소개한다. 우암尤庵 송시열, 겸재謙齋 정선, 위창葦滄 오세창 들은 80을 넘긴 예외적 장수자들이다. 『동의보감』의 허준, 석봉石峯 한호, 원교圓嶠 이광사, 추사秋史 김정희 등은 60, 70대에 세상을 떴다. 기타 낯익은 서화가들은 50대에 갔다. 그 중 공재恭齋 윤두서가 40대에 타계한 것이 아쉽다. 아마도 너무 비대했던 것이 원인이었던 같다. 이 사실은 유명한 그의 자화상이 잘 말해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몇 사람 외국의 예를 덧붙이자. 중국 한자 정자正字의 원조인 채옹蔡邕, 행초行草의 왕희지王羲之는 60을 못 넘기고 세상을 떴다. 서양에서는 예수님은 말할 것도 없고 고대 이집트의 투탕카멘 왕은 20을, 알렉산더 대왕은 40을 넘기지 못하고 가버렸다. 이렇게 보면 나는 이미 약년에 대공大功을 세울 나이는 지났다. 그러나 현대 교황뿐 아니라 공자, 우암 선생들과 어깨를 겨누고 대기만성大器晩成의 두량斗量을 꽃피워야 할 텐데. 어림도 없다. 만사를 체념하고 삶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할 나이이자 처지인 것이다.

생사에 소탈해야 할 근거가 또 하나 있다. 그것은 DNA다. 내가 죽어도 나의 유전자遺傳子는 거의 변동 없이 내 자손에게 전해진다. 그래서 나는 손자 손녀들을 보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너는 나야.”

그놈들이 커서 다음 세대에 내 피를 전할 것이다. 이것이 영생이 아니고 무엇인가. 중국의 우공愚公의 고사가 떠오른다. 구십 나이에 집 앞을 막고 있는 두 큰 언덕을 깎아버리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그런 바보 같은 일을? 남들이 비웃으니까 그가 말한다.

“내 아들들이 그리고 내 손자들이 해 낼꺼야.”

이렇게 쓰다 보니 성삼문成三問의 생각도 난다. 부친과 모의해서 단종端宗을 쫓아낸 세조世祖를 제거할 음모를 꾸민다. 발각이 나서 3족이 멸살을 당한다. 그 집 DNA가 속속들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충성심은 그의 족문뿐 아니라 온 배달민족의 DNA에 족적을 남겼다. 죽음 자체를 두려워할 근거는 별반 없는 게 아닐까?

 

재미 은행가. 클라크 대학 졸업(경제학 석사).

미국 남가주 한인 미술가협회 회원. 미주 한인서예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