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팔자 상팔자

 

 

                                                                                            吳景子

애견 열풍이 크게 일어나 몇 년째 기승을 부리고 있다. 퇴계로 일대는 가히 애견 거리라 할 만큼 개들에게 점령되었고, 구매력이 형편없는 변두리 우리 동네까지 애견용품 가게가 들어서고 요즘에는 ‘애견 미용 아카데미’란 이름의 개 미용사 양성소까지 생겨 꽤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새 단장을 마쳤다.

오래 전에 스쳐 지나간 십자매, 잉꼬 따위 애완 조류 열풍과 메추리 열풍, 금붕어, 금잉어, 열대어 열풍과 달리 애견 열풍은 좀체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연간 매출액이 천문학적인 숫자로 올라가고 있고, 텔레비전까지도 덩달아 애완견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있다.

우리 고유의 대가족 제도가 무너지고 부부 중심의 핵가족 사회가 되고 나 홀로 가구까지 늘어나 개한테서 외로움을 풀어보려는 심정이 이해되긴 하지만, 날이 갈수록 사치와 낭비로 흘러감을 볼 때 매우 한탄스럽다.

개를 데리고 탈 수 없는 지하철에 강아지를 가방에 숨겨 탄 후, 넘쳐나는 사랑을 잠시도 참지 못하고 그 밀폐된 공간에서 남이야 어떻든 강아지를 꺼내 입맞추고 쓰다듬으며 개털을 풍기는 사람이나, 머리에 예쁜 꽃리본 달고 앙증맞은 꼬까옷에 네 발에 신발까지 신겨 끌고가며 자랑스러워하는 사람 정도는 애교로 봐 줄 수도 있다. 그러나 휴가 동안 개를 맡겨둔다는 개 호텔의 호사스러움이나, 수십만 원의 비행기 요금을 들여 외국 여행에까지 동반한다는 것은 개 팔자 상팔자는커녕 개 팔자 특상 팔자가 아닐 수 없다.

관광 여행, 휴가 여행, 골프 여행 등 외국 여행의 행렬이 이어져 수없이 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려도 그런 여행의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보다 몇 배 더 많은 사람이 비행장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다는 현실을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예쁜 옷 차려입고 네 발에 거추장스런 신발 신고 어설프게 걷거나 특급 호텔에서 온갖 호사하는 것, 비행기 타고 졸경을 치르며 외국 여행가는 것이 진정으로 개들이 원하는 것일까?

개에게는 개다운 삶, 비바람을 가릴 잠자리와 배고프지 않을 정도의 먹이와 친구들과 어울려 맘껏 뛰놀 수 있는 흙바닥과 거기에 서늘하고 아늑한 나무 그늘이라도 있다면, 개들은 그 이상의 것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실직을 걱정할 일도 없고 자식들 먹여 살리려고 피나게 노력해야 할 일도 없고 머리에 띠 두르고 데모에 나가 목고듬을 써야 하는 딱한 처지도 아닌, 개 팔자는 상팔자가 아닌가.

우리 집도 개를 기르고 있다. 여름이, 다롱이, 썰렁이 세 마리다. 나는 우리 개들이 개다운 만족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유난스레 쓰다듬고 입맞추지 않아도 그저 이따금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정도로 개들과 우리 가족 사이는 깊은 신뢰로 맺어져 있다. 간혹 대문이 열린 경우에도 개들은 문 밖에 나가지 않고 제 몫의 먹이만을 먹고 화초 밭에서 뒹굴지 않는다. 가르치지 않아도 자기들 나름대로 정해 놓은 규율을 잘 지켜서 있는 듯 없는 듯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얼마 전에 개들 구충제를 사러 가축 병원을 찾아간 적이 있다. 시장에 오갈 때 그 앞을 무심히 지나다녔는데 정작 문 안에 들어서 마주친 뜻밖의 광경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젊은 여자가 여섯 명이나 둘러앉아 있고 한 옆 침대에는 조막만한 강아지가 링거 주사를 맞고 있는 중이었다. 흰 가운을 입은 여자가 일어나 나를 반기며 자기가 수의사라고 말했다. 수의사는 남자일 거라는 고정관념이 박힌 내 머릿속에 혼란이 일었다. 그 여자 수의사는 노랑머리를 늘어뜨린 한 여자를 가리키며, 이분은 미용사예요, 하고 소개해 다시 한 번 더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다른 여자들을 살펴보니 강아지 한 마리씩을 끼고 앉아 쓰다듬고 있었고, 다른 한 여자는 링거 주사를 맞고 있는 개의 주인인 듯, 우리 얘는요, 몸이 약해서 자주 링거를 맞아야 해요, 하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다른 여자들도 질세라 소곤소곤 자기 개를 자랑하기 시작했다.

수의사는 구충제를 받아들고 돌아서는 나를 불러세워 개 사육의 주의점을 전문가답게 말하기 시작했다. 예방주사의 종류와 가격과 맞춰야 할 시기 등을 일러주는데 그 값이 만만치 않았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철들고 나서 60년 가까이 개를 먹였으나 광견병 예방주사 정도 맞췄어도 다 10년 이상 살다 자연사했으면 됐지요, 하고 말했다. 그들은 어처구니없이 무지몽매한 야만인을 만난 듯 까르륵거리며 나를 비웃었다.

졸지에 야만인이 된 나는 젊은이들을 향해 퍼부어댔다.

“당신들, 이 바쁜 아침 시간에 강아지 끼고 마실 다닐 시간 있으면 부모님 찾아가 팔다리라도 주물러드려요. 영아원의 고아들 좀 안아주러 가고요.”

가축 병원을 나서는 내 등에 젊은이들의 비명 소리가 꽂혀왔다.

나도 진정한 애견가임을 말하고 싶다. 서로 사랑의 방법이 다를 뿐이다. 개를 개답게 대우하는 것이 가장 개를 행복하게 하는 길이고, 소외된 삶을 사는 고달픈 사람들을 향한 배려와 예의라고 나는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