깩살각시 낭자

 

 

                                                                                            최은정

‘깩살각시풀’을 잊어버리고 산 지 오래 되었다. 작년 여름에 어떤 일본 사람이 깩살각시풀을 찾아 영산강 둑으로 왔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도 그제야 새삼스럽게 깩살풀이 생각나면서 소녀 시절을 회상하였다.

깩살이라는 풀은 어린 시절 영산강 둑에 많이 나 있었다. 바람이 불면 여인의 머리 단처럼 나부꼈다. 물이 흐르는 개울가에 깩살풀은 물살 따라 길게 누워 있기도 했다. 나는 이것으로 각시 인형을 만들고 머리칼처럼 긴 풀로 머리 땋아 늘이기도 하고 낭자를 틀기도 하였다.

풀각시를 만들자면 풀을 비벼야 하는데 한참 비벼대면 마음대로 만질 수 있게 부드러워진다. 그때 감촉을 말하면 부드럽기가 명주실을 만지는 기분이었다. 손바닥으로 비벼대면 풀잎은 체온과 염분이 호와지면서 손끝에 부드럽게 앵겼다. 이때 수수깡이나 싸리나무에 풀을 묶어 뒤로 넘기며 낭자를 트는데 너무 높이 올리면 초랭이 같고, 또 낮으면 미련해 보인다. 예쁘게 하려면 머리 숱도 알맞아야 하고 낭자의 위치도 제대로 잡혀야 한다. 거기다 풀각시 머리에서는 풀내음이 났다.

내가 자랄 때만 해도 마을 아녀자 중에 신식머리 파마를 한 사람이 드물었다. 어머니부터 그러했지만 아버지는 내가 결혼 후 집안의 경사가 있어 한복으로 성장을 할 때면 낭자를 올리라 하였다. 하지만 나는 낭자를 올려보지 못했다. 낭자를 올리는 모습이 갸름해야 미인형이 되는데 나는 얼굴 모습이 둥글어서 어울리지 않아서였다.

화가들의 미인도를 보면 거의가 달걀형으로 갸름한 모습들을 하고 있다. 내 얼굴 모습이 그런 형이라면 나도 낭자를 틀고 나다닐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여자의 아름다움이 여러 가지 요소에 의해 정해지지만 낭자 머리의 여인 모습에서는 한국 여성만이 지니는 아름다움을 볼 수가 있다. 현대 여성의 머리 스타일에서 매력을 느낀다는 남성도 있지만 낭자 머리에서 매력을 느끼는 남성은 풍류를 아는 사람일 것이다.

잠자리에서 흰 속적삼의 여인이 비녀를 뽑아내며 낭자를 풀어 내리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욕실에서 머리 풀고 나오는 여인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낭자는 머리를 묶어 일정한 규격으로 감아 비녀를 꽂는 일이다. 말하자면 여인이 자신의 정조를 스스로 다스리는 표징이다. 그런 머리를 침실에서 스스로 푼다는 것은 정인에 대해 베푸는 최고의 사랑이리라. 그만큼 우리는 여인의 낭자에 의미를 부여해 왔다. 이런 낭자 여인의 정을 받은 사람은 그 이상의 행복이 없을 것이다.

여인이 머리를 빗는데도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규중심처의 규수가 머리를 빗는다면 그냥 빗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 그린 님을 향해 몸과 마음을 올올이 빗어내려 하나의 정성으로 묶어 내리는 일이다. 그것은 또 여인으로서 지녀야 할 정절에 빗질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단정한 여인의 머리를 보면 그 여인의 가슴 속 깊은 곳까지를 볼 수가 있다. 그래서 며느리를 맞을 때 함에다 비녀 일습을 넣어주었다. 우리 나라 여성으로 지켜야 할 전통 정신을 일깨우는 의미로 넣어준 것이다.

내가 영산강 둑에 난 깩살각시풀을 가지고 낭자를 만들 때 그런 것까지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그때 풀을 만지면서 무엇인가를 기도하는 자세처럼 다루었었다.

이 깩살각시풀을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나이 육십이 넘은 어느 날에 문득 그 풀을 회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깩살각시풀을 떠오르게 한 것이 일본 사람이었다는데서 묘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잊어버리고 있는 깩살각시풀을 일본 사람이 왜 찾았을까? 나는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문득 그가 나와 함께 소꿉놀이를 하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다.

 

<한국 수필> 천료. 한국 수필 이사.

광주 문인협회 부회장. 광주 여성문학회 시누대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