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놋그릇

 

 

                                                                                         최성옥

며칠 전부터 닦으려던 놋그릇 하나를 장식장 위칸에서 내려놓았다. 오래 쓰지 않고 보관만 해와서 놋그릇에는 때가 끼어 빛은 어둡고 노인의 얼굴에 핀 검버섯처럼 푸르스름한 반점마저 생겼다. 수세미를 들고 닦는다. 나의 손놀림이 빨라지며 이리저리 궁굴리며 닦자 비누 거품에 섞여 검은 땟물 속에 노르스름한 얼굴을 드러냈다. 방금 세수를 마친 놋주발이 유난히 아름다워 보인다. 주발 속은 깊고 넉넉하고, 봉긋한 뚜껑은 부드러운 곡선을 지녔다. 치자빛 생모시 한복이 잘 어울리던 단아한 시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느 해인가, 시댁에서 시제를 지내고 그릇을 정리할 때였다. 나무 궤에는 쓰지 않고 쌓여 있는 놋그릇이 가득했다. 나는 문득 옛 친구라도 만난 듯이 반가웠다. 차곡차곡 쌓여 있는 놋그릇들은 지난 세월의 많은 사연들이 담겨 있을 것 같았다. 시어머니는, 놋그릇 몇 개만 달라는 내게, 그걸 가져다 무엇에 쓰려느냐 하시며 골라 보라고 하셨다. 나는 그 중에서 펑퍼짐한 합, 둥근 밥 주발과 대접, 작은 술잔 몇 개 그리고 뚜껑 달린 앙증맞은 종지 등을 골랐다.

내가 가져갈 놋그릇을 가방에 담고 있는 옆에서 대견한 듯 지켜보시던 어머니는, “내가 젊었었을 때는 추석을 앞두고 하루 날을 잡아 놋그릇을 닦았다. 볕 좋은 안마당에 멍석을 깔고 놋그릇을 가득 꺼내다 놓았지. 문 중에 아주머니들과 행랑채 식구들이 어울려 지푸라기에 곱게 빻은 기와 가루를 묻혀 노란 빛이 감돌며 윤이 나도록 닦았단다. 손으로는 그릇을 닦으며 입으로는 정겨운 이야기들로 시끌벅적 했단다. 이렇게 준비한 놋그릇으로 추석날 정성스레 조상님께 차례를 드렸지.”

어머니의 표정에서는 언뜻 가벼운 미소가 스쳤다.

결혼을 하고 종갓집 막내며느리가 되어 처음 시댁에 갔을 때도 시어머님은 놋그릇으로 밥상을 차리셨다. 5월의 신부만큼이나 고운 황금빛의 그릇 속에는 산나물의 향기가 가득했었다. 이제 그 그릇의 일부를 막내며느리인 내가 간직하게 된 것이다.

어머니의 놋그릇들이 어떻게 지금까지 남겨져 왔는지 나는 잘 안다.

우리 역사의 불행한 시기를 사신 어머니처럼 놋그릇도 수난을 겪었다. 일본이 힘겨운 전쟁을 할 때 공출이란 명목으로 집에서 쓰던 놋그릇을 거의 몰수당하고 그나마 용케 숨겨놓은 놋쇠 기물과 마루 밑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던 놋그릇이 지금 남아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해방이 되고도 광복 이후 토지개혁으로 없어진 땅, 동란으로 100년 넘은 고택의 사랑채가 불타버리는 바람에 소실된 서책, 서화, 골동품들, 하지만 어디 인명 피해만 하겠느냐는 어머니의 말씀 속에서 한국의 수난사가 스며나왔다.

나는 위엄 있고 냉정하게 보이던 어머니가 늘 어렵기만 했다. 어머니의 이런 모습에서 역사의 질곡과 한 가문의 종갓집을 이끌어오신 보이지 않는 힘을 느껴보곤 했다. 하지만 남에게 베푸는 마음은 너그러우셔서 지나는 길손에게도 음식을 대접하던 정 많던 분이었다.

내가 첫아이를 출산했을 때, 친정어머니도 안 계시니 걱정이 크셨나 보다. 그때는 시어머니의 건강도 좋지 않으셨는데, 산모에게 좋다는 누런 호박을 싸들고 먼 길을 달려오셨다. 그리고 그 손자가 크는 걸 지켜보시며 철부지로만 비쳤을 막내며느리를 대견해 하셨다.

열네 살 어린 나이에 종갓집 종부로 시집을 오신 나의 시어머니는 70년의 세월을 그 한 곳에서 사셨다. 시부모 섬기는 일이나 집안 대소사, 일 년이면 열두 번씩 올리는 제사에도 소홀함이 없으셨다.

종갓집 음식 솜씨는 맛 좋기로 소문이 났었는데 음식 만드는 일은 항상 어머니가 본보기를 보이셨다. 마디가 굵은 어머니 손에서는 늘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떠나지 않았다. 어쩌다 시어머니가 만드시는 음식을 옆에서 거들기라도 할 때면 나는 긴장되고 주눅이 들기 일쑤였다. 언제 시어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질지 몰라서였다. 그러면서 나는 시어머니의 음식 솜씨를 어깨 너머로 배워 까다로운 남편의 입맛도 맞출 수 있었다.

몇 해 전 우리 네 식구는 어머니를 뵈러 시댁을 방문했었다. 그때 어머니는 우리를 기다리며 대문 밖 돌계단에 앉아 계셨다. 돌 틈 사이로 비집고 피어난 색색의 채송화 때문이었을까? 순간 어머니의 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일어서서 아들과 손자에게 다가가시던 시어머니의 반갑던 시선이 내게 머물고, 내 손을 덥석 잡으시며 어머니의 눈에서는 촉촉한 물기가 어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얼른 앞장서서 대문 안으로 발걸음을 총총히 옮기셨다. 평소 어머니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 순간 무엇인지 모를 불길함이 스쳤지만 이젠 연로하셔서 마음이 약해지셨나 보다고 애써 나의 마음을 다독였다.

그리고 두 달 후 어머니는 주무시는 듯이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가 어머니와의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그 후 나는 어머니의 그때 표정이 자꾸 떠올려지곤 했다. 분명 어머니는 며느리인 네게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하셨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셨을까?

오늘도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난다. 어머님이 즐겨 해주시던 약식을 솥에 앉힌다. 밤, 대추, 잣이 어울어진 갈색의 밥알들은 뽀얀 김을 토하며 반드르르 윤이 난다. 따뜻한 약식을 놋대접에 정성스레 퍼 담는다. 잘 닦인 놋대접에 담긴 약식은 한결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남편은 약식을 먹으며 어머니 이야기를 할 것이다. 놋그릇에 서린 어머니의 자취를 더듬어보면서 그 속에 깃든 깊은 뜻을 되새길 것이다.

머지않아 나도 며느리를 얻게 될 것이고, 어느 날 며느리는 이 놋그릇에 대해 나에게 물어올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는 놋그릇에 스민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가문의 맥도 심어주어야겠다.

 

<수필과 비평사> 신인상 수상. 도봉 수필 회원.

<도봉 수필> 1~4집 공저. <산골의 작은 음악회> 동인지 작품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