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안 하는 아버지

 

 

                                                                                         윤혜숙

이제 아버님은 아무 일도 안 하십니다. 지렁이가 든 깡통을 들고 낚시하러 강에 가지도 않고 책도 읽지 않으며 술도 안 드시고 담배도 안 핍니다. 아침이면 열리지도 않은 대문을 바라보며 오늘은 무슨 일이 있으려나 하고 화투 패를 떼지도 않습니다. 붉은 목단이 희미하게 닳은 화투장들이 앉은뱅이 책상 밑에 있습니다. 아버님은 꼭 그 화투장처럼 빛바랜 얼굴로 누워 있습니다.

아버님이 하시던 일을 이제는 형님이 합니다. 밥을 먹여드리고 옷을 갈아 입히고 시간 맞춰 약을 드립니다. 화장실도 못 가서 형님이 기저귀를 갈아주고 씻겨줍니다. 사람도 잘 못 알아봅니다.

형님이, 손님에게 와주셔서 고맙다고 말하고 요즘은 좀더 나아졌다고 말합니다. 형님이 아버지가 된 셈입니다. 저도 형님처럼 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기 어렵습니다. 밥 한 수저를 입에 넣어드리면 그것을 언제 다 삼켰는지, 소변이 언제 마려운지, 베개를 어떻게 고여 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형님이 아버님 속옷을 들고 목욕탕으로 갑니다. 저는 빨래라도 해보려고 따라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오물이 묻은 속옷을 보자 헛구역질이 나왔습니다. 딸아이는 할아버지가 불쌍하다고 펑펑 울고, 큰엄마가 가엾다고 또 엉엉 웁니다. 남편은 눈물이 그렁해서 앉아 있습니다. 저도 그 옆에 앉아서 공연히 방바닥만 문지릅니다.

아버님이 건강할 때도 저는 한 일이 없습니다. 한데서 고생하는 사람은 형님과 어머님입니다. 저는 따뜻한 방 안에 앉아 아버님이 만주 벌판에서 일본군과 싸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면 아버님은 향긋한 매실주를 자꾸 따라주십니다. 어머님이 들어오시다 깜짝 놀라서 “오메, 뭔 일이다요” 하시면 아버님은 언제 또 이 아이와 술을 먹겠냐며 껄껄 웃으셨습니다.

그때는 어머님도 아버님도 형님처럼 잘 웃으셨습니다. 우물가의 무화과도 달게 익어서 벌들이 윙윙거리며 날아다니고 울타리 밑의 구기자는 닭 벼슬처럼 붉게 익어갔습니다. 아이들이 우물가에서 두레박을 가지고 장난치면서 까르르거리면 낮잠을 자던 고양이가 깜짝 놀라 달아났습니다. 어머니는 콩밭에 나가 김을 매고 나는 땀이 줄줄 흐르는 어머니 곁에서 콩 꽃이 예쁘네, 가지 꽃이 예쁘네 하다가 지청구를 받기도 했습니다. 형님은 떡쌀을 이고 방앗간에 가면 나는 마루에 누워 파리를 쫓으며 뻐꾸기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럴 때면 아버님이 슬그머니 나오셔서 파리를 잡아주셨습니다.

저는 그런 날이 계속 되리라고 믿었습니다. 탈곡기가 늘 마당 한 구석에 있듯이, 식초가 되어가는 막걸리 병이 항상 부뚜막에 있듯이, 부모님들도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계실 줄 알았습니다. 이미 다 늙어서 더 이상 늙을 수가 없을 줄 알았지요. 크는 것은 아이들이고 나이를 먹는 것은 젊은 우리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공평한 것은 세월입니다. 기어 다니던 아이가 걷고 뛰어다니는 것처럼 두 분도 날마다 늙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허리가 굽은 어머니는 귀도 잘 안 들립니다.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은 잘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런데 아들이 하는 말은 잘 들린다고 합니다. 짓무른 눈가를 닦으며 너희들이 고생이지 당신들은 괜찮다고 합니다. 어머님의 말을 듣고 있으면 우리가 정말 무지 고생하는 것 같습니다.

논 가장자리에는 거두지 못해서 제멋대로 흩어진 팥알들이 여기저기 땅에 박혀 있습니다. 우리는 칼국수를 팥죽에 넣고 끓여먹지도 못합니다. 추석이 와도 모시 떡을 안 합니다. 검푸른 모시 잎이 물결처럼 일렁거려도 그것을 꺾어다 삶고 우려 낼 사람이 없습니다. 마당에는 닭도 없고 개도 없고 고양이도 없습니다. 남은 음식을 줄 짐승이 없어서 대문 옆 두엄더미에 던져버립니다.

어머님은 떡집에서 사온 송편을 먹는 아들에게 미안하다 하고, 가게에서 사온 튀김 닭을 보고는 “어미가 늙어서 달구새끼도 못 기른다”며 또 눈가를 찍어냅니다. 밥상에는 동치미도 없고 굴젓도 없어서 나는 맨밥을 김에 싸서 먹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 두 분은 이제 검불처럼 가볍습니다. 몸만 가벼운 것이 아니라 마음도 가볍습니다. 땅을 더 살 생각도 안 하고 저 위 논에다가 흙을 퍼다 부어서 밭을 만들고 싶다는 말도 안 합니다. 그저 아프지나 않았으면 좋겠다고 할 뿐입니다.

저렇게 자꾸 가벼워지기만 하면 옷도 버리고 집도 버리고 자식들도 버리고 훌훌 가시겠지요. 방문 앞에 세워둔 지팡이도, 하얗게 닦아놓은 고무신도 필요 없습니다.

가벼운 베옷 하나만 달랑 걸치고 당신의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가실 것입니다. 철길 너머에 있는 산에는 아버님의 가족들이 다 계십니다. 아버님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시고 삼촌과 할아버지도 계십니다. 두 분이 먼저 가시면 저도 곧 줄레줄레 따라가서 어머님 발밑에 눕겠지요. 그리고는 아버님 무덤에 핀 제비꽃이 제 무덤가에 핀 할미꽃보다 더 예쁘다고 종알거리다가 또 어머님에게 꾸중을 들을 것입니다. 햇살이 따스하게 비추는 봄날에 말입니다.

 

동아일보 신인문학상 수필 부문 수상(97년).

<수필공원>으로 추천 완료(98년). 현재 계간 <솟대문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