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회 추천>

 

개망초

 

 

                                                                                       이설우

중랑천으로 아침 산책을 나선다.

둔치에는 가꾸기라도 한 듯 개망초가 한창이다. 동글동글한 작고 흰 꽃들이 흡사 흐드러진 안개꽃 같기도 하고 메밀꽃 같기도 하다. 하루 종일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길섶을 마치 심어 가꾼 꽃밭처럼 덮고 있다. 가끔씩 달 밝은 밤에 이 곳에 오면 달빛을 머금은 꽃잎이 희다못해 옥양목처럼 푸른 빛이 감돌아 여인의 치마폭을 펼쳐놓은 듯도 하고…….

개망초는 북아메리카가 원산지로 우리 나라 어느 산이나 들, 밭둑 그리고 길가에 흔히 자라는 귀화 식물이다. 다년생초로 6~9월에 꽃이 피고 어린 잎은 식용도 하며 가축의 사료로 쓰이기도 하지만, 이 풀이 밭에 자라면 그 번식력으로 밭 곡식을 망쳐놓는다. 아무리 뽑아버려도 버린 그 곳에서 다시 살아나는 개망초를 보면 그 끈질긴 생명력과 번식력에 사뭇 감탄을 금할 수 없다. 곡식이나 화초가 거름을 주지 않고 농약을 치지 않아도 이렇듯 잘 자라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길을 따라 걷다 보니 허리가 꺾여 쓰러진 채로 다시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것이 보인다. 마치 N 자 모형을 하고 있다. 누군가가 꺾어놓았거나 아니면 지난번 장마 때 내린 폭우 때문에 꺾인 듯한데, 어떻게 부러진 몸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대단한 생명력이다. 개망초를 보고 있으면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우리의 희망이었던 누나, 그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힘겹게 살다간 누나 생각이 나서 그리움에 눈시울이 젖어든다.

 

누나는 우리 집 살림꾼이었다. 어려운 집안 다섯 남매의 맏이로 학교는 고사하고 어린 나이 때부터 가사에 시달렸다. 매일 논밭으로 식구들의 밥을 해 나르며 농사일에 매달렸지만 시골 일이란 끝이 없었다. 그럼에도 누나는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먼 친척의 소개로 서울 어느 집 수양딸로 집을 떠날 때 나는 누나가 잘 살러간다고 좋아했었다. 그 지긋지긋한 농사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누나는 사립문을 나설 때 울며 가지 않으려 발버둥쳤다. 그렇게 부모 형제 곁을 떠나기 싫어하던 누나였다. 그 뒤 서울을 다녀오신 아버지 말씀에, 누나는 호강하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몸 고생, 마음 고생이 심한 것 같아 얼굴은 창백하고 코피를 흘리며 주인 눈치를 살피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일절 내색은 하지 않았다고, 서울을 다녀오신 날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헛기침만 하셨다.

누나가 그리울 때면 개망초를 뽑았다. 누나가 밭으로 일하러 갈 때 나는 항상 졸랑거리며 따라다니곤 했는데 그때 누나는 개망초를 아주 싫어했다. 뽑아 두면 절대 죽지 않아 한데 모아 아주 멀리 버려야 했으므로 일을 갑절로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도 밭 두렁에 수북하게 피어난 꽃을 보고는 꺾어서 병에 꽂아놓기도 하던 누나를 생각하며 나도 개망초를 꺾어 들고 집으로 오기도 했다. 서울에서 어렵고 힘겨울 때마다 누나는 개망초가 생각났다고 했다. 뽑아 밭 두렁에 버리면 그 곳에서 다시 뿌리를 내리며 사는 삶의 애착을.

누나가 강원도 시골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부임할 때 집안에 경사났다고 야단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농사만 짓던 시골뜨기가 서울에서 가정부로 가서 야학으로 검정고시를 거쳐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하고 마침내 선생님이 되어 귀향했으니 어찌 경사라 하지 않겠는가. 이보다 놀라운 금의환향이 어디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 감격도 잠시,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도 하지 않은 아들을 하나 남겨놓고 암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당시로는 불치병이라 할 수 있는 자궁암이었다.

누나는 짧은 삶을 악착같이 살다 갔다. 아무리 거친 땅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끝내 하얀 꽃을 피우고야 마는 개망초처럼, 시골 그 어려운 농사일도 꿋꿋이 해냈고, 가정부 생활의 고달픔 속에서도 독학으로 선생님이 되었던, 마지막 순간까지 입술에 피가 맺히도록 고통을 참으면서도 결코 신음 소리 한 번 내지 않던 누나. 그 누나가 마침내 한 송이 행복의 꽃으로 피어날 시기에 삶을 접어야 했으니.

살아 있으면 어느 새 환갑이 되었을 누나, 이제는 한 장 흑백 사진 속에서 달덩이 같은 모습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