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회 추천>

 

밧 줄

 

 

                                                                                       구민정

빽빽이 들어선 빌딩 숲 속을 검푸른 바람이 휘감아 돈다. 약속시간을 지키려면 30여 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갑자기 찾아온 한파를 피해 원색의 조명이 새어나오는 찻집을 찾아들었다. 평일 오후의 찻집은 한적하여 남는 시간을 보내기엔 적격이었다.

나는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느 새 텅 빈 거리는 유령 도시처럼 음산하다. 맞은편 고층 건물에서는 작업에 열중인 인부가 보일 뿐이었다. 밧줄에 몸을 실은 채 유리창에 글자를 새기고 있다. ‘태극우~’ 날씨 탓인지 인부의 손놀림이 꽤나 더디다. 강풍이 불어올수록 밧줄에 힘이 실린다. 그가 마치 빈 도시를 지키는 파수꾼 같다. 건물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글자가 붙여질 자리 잡기에 여념이 없다. 건물 옥상에 묶인 밧줄 하나에 인부의 안전이 달려 있다. 그를 보고 있다가 잊혀지지 않는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어렸을 적 집에서 좀 떨어진 곳에 큰 우물이 있었다. 그 우물이 언제 생겼는지는 기억에 없고, 깊이조차 가늠이 어려웠다. 우리 집에도 작은 우물이 있었지만, 5촌뻘 되는 친척 소유인 그 큰 우물 맛을 따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들도 그 물을 즐겨 먹었다.

하루는 물을 길으러 갔던 어머니께서 물동이를 내려놓으며 한숨을 토하셨다. 우물의 덮개인 널빤지를 물 속으로 빠트렸다는 것이다. 누구보다도 궂은 말 듣기를 싫어하는 아버지께서는 하던 일을 미루고 겉옷을 걸치셨다. 어머니와 나도 소리 없이 그 뒤를 따라나섰다. 우리가 멈춰 선 곳은 그 우물가였다.

어지간해서 마르지 않던 샘물이 바닥을 드러낼 때면 땅에 닿은 두레박은 너무 작아 보일 듯 말 듯했다. 아버지는 그 깊고 어두운 우물 속으로 들어가셨다. 밧줄에 몸을 의지하고 조심스레 이끼 낀 돌 틈새를 더듬으셨다. 어머니와 나는 떨리는 손으로 밧줄을 붙들고 아버지의 발끝만 쳐다보았다. 아버지가 무사하기를 염원하는 어머니와 나의 간절함은 아버지의 자존심과 뒤엉켜 가느다란 밧줄을 더욱 팽팽하게 만들고 있었다. 어렸던 나는 아버지를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웠었다. 드디어 우물 덮개가 밖으로 내던져지고 아버지께서 상기된 모습으로 밧줄을 풀어놓았다. 땀으로 흥건한 겉옷도 함께……. 그 순간, 어머니는 비로소 긴 한숨을 몰아 내셨다. 그리고 우리 모녀의 심장은 힘차게 뛰기 시작했다. 그 박동 소리는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건너편 건물에서는 아직도 작업이 한창이다. 한겨울 냉추위에 밧줄을 붙든 인부의 손이 불그레하다. 창가에 쏟아지는 햇살을 그의 손쪽으로 돌려주고 싶다. 그 인부의 둔한 손놀림에서 질퍽한 삶의 애환이 흐른다. 아니, 고드름되어 황량한 거리로 뚝뚝 떨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빌딩 속 사람들은 밧줄에 매달린 인부의 모습에 관심 둘 여지가 없는 듯 분주하다. 빌딩 벽에 글자판을 짜던 인부는 밧줄에 그의 삶을 걸고 있었고, 내 아버지는 자존심 하나로 위험을 무릅쓴 채 밧줄을 몸에 매셨다.

여섯 남매 중 아버지를 많이 닮은 나는 부녀 간의 사이도 각별했다. 어릴 적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는 먼저 톱밥과 먼지로 가득 찬 아버지의 작업실 청소부터 했다. 아버지는 건축 일을 하셨는데, 고단한 일을 마치고 돌아올 시각이면 내가 마중나가곤 하였다. 어두운 골목길에 아버지 그림자가 보이면 한걸음에 달려나가 묵직한 가방을 받아 작업실에 옮겨놓는 것은 내 몫이었다. 그때의 아버지 연장 가방은 다른 한 손에 들린 빵 봉지보다 더 가볍게 느껴졌다.

그러하던 나도 어느 새 사십 줄에 들어서 있다. 인생에 적잖은 나이테를 새긴 셈이다. 그런데 삶이란 보이지 않는 고리와도 같은 밧줄에 의해 이어지는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내게 삶의 무게가 실린다는 걸 실감한다. 정상의 아이들보다 더딘 성장으로 애를 태우던 아들, 막내인 그녀석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그러나 낮은 인지력으로 학습 장애와 성격 장애가 따라다녔다. 그것도 모자라 아들은 ‘근육이완증’이란 불치병까지 앓고 있다.

밧줄에 생을 걸고 유리창에 글자를 새기는 인부쪽으로 다시 마음이 쏠린다. 아마도 그 인부에게는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을 것이다. 이 궂은 날에 위험을 감수하며 밧줄을 타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 그에게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빌딩 숲에 다시 검푸른 바람이 휘감아 돈다. 내 줄에 매달린 몸이 성치 않는 아들의 무게가 육중하게 실려온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올수록 나는 더욱 힘껏, 밧줄을 쥔 마음의 손에 힘을 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