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 팔불출론(八不出論)

 

 

                                                                                            윤모촌

 

 사람은 저마다 저 잘난 생각으로 산다고 한다. 적확한 말이다. 이 세상 많은 사람 가운데서 자신이 못났다고 생각한다면 사는 의미를 잃을 것이고, 스스로 인생마저 포기하려 할 것이다. 이런 까닭에 교육 현장에서 열등의식을 벗도록 힘을 쓴다. 그런데 저 잘난 맛으로 삶의 활력소를 충전하는 것은 권장할 일이나, 저 잘난 그 생각이란 것이 주관적인 것이어서  객관적으로는 못난 말로 이어질 수가 있다. 이렇듯 잘난 생각이 필요한 것이긴 하면서도, 남 앞에선 자칫 제 자랑이 되기 쉽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염치와 예양의 수양이 따라야 하고, 사람의 바탕이 돼야 한다. 제 자랑은 배운 자나 덜 배운 자나 마찬가지인데, 이를테면 매 호마다 제 잡지 권두언에 제 글을 싣는 일, 그리고 써낸 글보다 내세운 약력이 더 화려한 것 따위이다. 박사 과정 중이라느니, 각종 단체에 참여한다 등의 표시가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로 드러난다. 제 자랑이다. 나도 힘이 못미처 그렇게 못했지, 그런 자랑을 대단하게 본 때가 있다. 미숙하고 어리석었다.

내게는 묵은 신문이 한 조각 있다. 여기에 꽤 큰 내 얼굴 사진이 들어 있는데, 당시는 이 사진을 별로 의식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그 사진이 자꾸 어리석은 모습으로 보여 입맛이 씁쓸하다. 무슨 얘기냐 하면, 당선 소감에 곁들인 그 사진이 담담한 표정이 아니라 귀 밑까지 입을 벌여 웃는 모습이어서, 누가 봐도 체통을 잃은 꼴이 된 까닭이다. 왜 체통을 잃은 것이냐 하겠는데, 글 쓰는 사람으로 말하면 당시의 내 나이 56세였다. 그 나이라면 중견이니 중진이니 할 나이이다. 그런데 그 나이에 겨우 그런 모습으로 얼굴을 내민 꼴이니, 어찌 그냥 볼 사람이 있었겠는가. ‘그 나이에 좋기도 하겠다’고 빈정거리지 않으면, ‘신 팔불출이군’ 하고 혀를 차는 자도 있었을 것이다. 처음에 사진기자가 카메라를 대고 조준할 때 나는 두서너 번의 셔터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편집국 밖으로 끌고 나가더니, 대여섯 번 찍고 나서도 카메라를 뗄 생각은 않고 자꾸 말을 시켰다. 그러던 중 우스운 질문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는데, 다른 것 다 버리고 그 장면을 넣은 것이다. 이런 까닭을 알 리 없었을 터이니, 뒷공론이 안 따랐을 리가 없다. 생각하면 고소(苦笑)를 금치 못할 일이다.

이렇듯 나는 본의(本意) 아니게 팔불출이 된 꼴인데, 흔히 팔불출이란 말을 해오기는 하지만, 원래 여덟 달 만에 낳은 것을 말한 것이라 한다. 팔불용(八不用) 또는 팔불취(八不取)라고도 하는 이 말을 놓고, 8의 숫자에 이끌려 그 여덟 가지가 무엇인가 하였다. 사전을 보니, 어리석어서 쓸모없는 자라고만 했지 다른 설명이 없다. 원래 팔삭둥이를 말한 것이라 했지만, 여러 방면에 능통한 자를 팔방미인(八方美人)이라고 하는 반대어 정도로 생각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분명 여덟 가지가 있을 듯 해서, 아이들에게 컴퓨터 검색을 해 보라고 하였더니, 과연 여덟 가지가 나온다. 그 첫째가 저 잘났다고 자랑하는 것이고, 둘째가 아내 자랑, 셋째가 자식 자랑, 넷째 선조와 아비 자랑, 다섯째 형제 자랑, 여섯째 아무개가 선배니 후배니 하면서 잘난 선후배 타령, 일곱째 태어난 고향 자랑, 여덟째 가서는 채우질 못했다며, 일곱 가지만을 말하고 나서 못 채운 것은, 역시 못나서 채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이러고 보니 무슨 얘기인들 자유로울 수가 없는데, 말을 하다 보면 남의 흉도 나오고 제 자랑도 나온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팔불출은 팔불출답게 내세우지 말라는 뜻이다.

어쨌거나 이 팔불출론의 첫째 항목은 교과서에 실을 만한 덕목이다. 우리에게는 지금 그것이 너무도 큰 덕목임을 말하는 까닭이다. 삼문문사(三文文士)가 제 글을 한국을 대표하는 명문이라 자랑하고, 제가 제 손으로 제 비석을 세운다, 이런 자랑은 오만으로 이어지고, 아첨과 야합해서 제 자랑을 자승(自乘)하면서 극대화 한다. 한 삼문문사가 제자와 선후배가 문학비를 세우니, 기금을 기탁하라는 것을 보았다. 내가 황당해 할 일이 아닌데 이럴 수도 있는 것이구나 하였다. 행적비나 공적비는 산 사람에게 세워주는 것이 아니다. 까닭은 비석을 세운 후의 행적이 오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죽은 뒤라야 바른 평가가 내려진다. 그런데 문학비를 세운다며 제 자랑을 무릅쓰는 것을 보면, 팔불출도 최상급이 아닐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상당한 지명도(知名度)의 문사가 무엇이 부족해서, 삼류(三流)지 여기저기에 얼굴을 내민다. 청탁(淸濁)을 가리지 않는 그 모습에 내가 공연히 씁쓸해진다.

문인이나 권력자가 욕심과 아집에 빠지면 필연적으로 아첨과 야합하는데, 그 종말이 추하다. 유아독존(唯我獨尊)하던 이승만이 자리에서 떨어지자, 살아서 세운 그 동상이 밧줄에 걸려 길바닥에 끌리는 것을 보았다. 이렇듯 제 자랑은 종말을 비정(非情)하게 빚어낸다. 이래서 앞에서 말했듯이, 인격의 평가는 관 뚜껑이 덮인 뒤라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세상은 선거판 싸움처럼 제 자랑을 해야 하는 세태이니, 문인도 제 자랑을 해야 하는 팔출세(八出世) 시대가 되었다. 잘나지 못한 자는 숨소리만이라도 크게 내야 할 판이다. 하지만 그렇긴 해도 나는 지금 내 사진을 보면서, 체통 없이 웃은 모습에서 별수 없이 신 팔불출이 된 나를 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