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종 합격

 

  

                                                                                       김시헌

  

낮잠에서 깨어났다. 나른하다. 거실로 나가 창 밖을 본다. 길과 집과 쏘다니는 자동차가 모두 나른하다. 산책을 할까 책을 읽을까 등산을 할까, 아니면 버스를 타고 나가 지하철을 돌까 하다가 책꽂이 주위에서 사진첩을 발견한다. 나른함을 이기기 위해 전환이 필요하다.

두 권 포개어 놓여 있는 사진첩 하나를 들고 의자에 돌아온다.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40년 전에 찍은 졸업 사진이 나온다. 낡아서 채색이 희미하다. 그때 나는 30대 초반이었다. 학생수가 40명이었다. 야간중학교의 중3 국어를 한동안 담당했었다.

어느 날 밤, 출근을 하니까 교무과장이 여학생 하나를 내 옆으로 데리고 와서 “3학년 편입학을 하겠답니다. 국어 실력만 시험해 보고 조치합시다” 하는 것이었다. 3학년 국어책을 그의 앞에 돌려놓고 여기저기 넘기면서 어려운 낱말 몇 개를 물어보았다. 그는 순순히 잘 대답했다. 나는 교무과장을 향해 “갑종 합격입니다”고 소리를 질렀다. 여학생은 나이가 많아 보였다. 그래도 물어보지 않았다. 내가 할 일이 아니었다. 여학생은 밝은 얼굴로 돌아갔다.

며칠 후 그 여학생은 국어 시간에 처음 들어왔다. 그런데 지각을 했다. 허리를 굽히고 고양이 모양 가만가만 제자리로 갔다. 처음부터 지각을 한다? 하는 감정이 왔지만 그런 일도 내가 간여할 일이 아니었다. 그 뒤에도 항상 지각이었다. 아니면 결석이었다.

3개월쯤 지나갔을 때 수업을 끝내고 나는 자유의 몸이 되어 전등불이 켜진 운동장을 지나 교문을 나가고 있었다. 옆에 학생 하나가 접근해 왔다. 바로 그 여학생이었다.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않고 그를 돌아보기만 했다.

“지각하는 이유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그 말에 나는 긴장되었다. 또 궁금한 일이기도 했다.

 

그는 학교 가까이 있는 ○○내과의원의 간호사였다. 원장님께 허락을 받아 학교에 나오기는 해도 늦게 오는 환자가 있으면, 지각 아니면 결석을 해야 한단다. 키가 작고 동그란 얼굴에 눈동자가 유난히 검고 컸다. 나이가 스무 살이라고 깨놓았다. 야간중학교는 연령을 가리지 않았다. 나는 그 날 “지금 연령에 직업도 있으면서 굳이 야간학교에 다녀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졸업장이 없으면 고등학교에 갈 수 없고, 장차 간호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서독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때는 서독에 가는 간호사가 많았다. 그는 계속 따라오면서 “한 가지 더 이야기 할 것이 있다”고 했다.

 

육이오 직후여서 본 교사가 불타 버리고 그 자리에 판잣집 교실을 몇 채 세워놓고 수업을 하던 시절이었다. 가교사 바로 뒤에 딱 붙어서 가지가 많은 벚나무 하나가 서 있었다.

“선생님, 결석하는 날은 교실 뒤의 벚나무에 올라가서 선생님 수업을 받습니다. 필기는 못하고 귀로만 듣습니다.”

지각이 너무 많이 되었을 때는 미안해서 교실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스무 살을 먹은 처녀가 밤에 나무 위에 올라가서 수업을 받는다는 말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는 그 날 많은 이야기를 했다. 2년 전에 3학년까지 다니다가 중단했다는 말도 했다. 내과의원의 원장이 너무 엄격해서 못 다니게 했단다. 아기 환자가 입원해서 퇴원하는 날은 아기 손을 잡고 울어야 하는 이야기도 했다. 그만큼 그는 다정다감했다.

 

졸업 사진을 차근차근 더듬었다. 맨 앞줄에 눈이 동그란 그의 얼굴이 나왔다. 남녀 공학이었다. 키 큰 남학생은 뒷줄에 어른처럼 우뚝우뚝 솟아 있었다. 지금은 몇 살쯤 되었을까. 나의 나이에 정비례한다면 70에 육박한다. 살아 있을까. 지금도 캐나다에서 살고 있을까, 아니면 한국에 돌아왔을까.

그는 A시의 야간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야간 간호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 길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주간에는 병원의 간호사를 해야 했으니까. 3년 후 그는 소원대로 서독 간호사를 희망해서 한국을 떠났다.

서독에 가서도 계속 편지가 왔다. 그는 편지를 보내는 이유가 ‘갑종 합격’ 때문이라고 언젠가 썼다. ‘을종’도 아니고 ‘갑종’이라는 표현이 우습고 반가웠다는 것이다. 말 한 마디가 그의 꽁무니를 따라다닌 셈이다.

사진첩 한 권을 다 넘겼다. 한 생애의 역사가 여기저기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시계를 쳐다보니 오후 다섯 시를 가리키고 있다. 산책도 안 되고 등산도 안 되고 지하철도 타기 싫다. 그 사이 전환이 된 것이다.

서독에서의 의무 연한 2년을 끝내고 캐나다로 떠난다는 편지가 마지막이었다. 그 뒤는 왜 편지를 끊었을까. 서독 청년과 결혼을 했는지, 아니면 캐나다의 남자와 결혼을 했는지 모두가 세월 속에 묻혀서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