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꽃 향기

 

 

                                                                                           유경환

  

편지 한 통을 받았다. 글씨는 한 자도 없고 마른 꽃 쑥부쟁이 한 가지가 들어 있다. 바스스 부서질 것 같은 꽃대.

무슨 수수께끼 같기도 하고, 스무고개 암시 같기도 한데, 아무리 갸웃거려도 보낸 이가 누군지 짐작이 안 되었다.

쑥부쟁이라니……. 대학생 시절 농촌 계몽 행사에 참여하였을 때 쑥부쟁이라는 꽃 이름을 처음 들었다. 꽃 이름 치고는 고운 이름이 못 된다고 여긴 꽃.

내가 뉘를 놀려놓고 까맣게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뉘에게 언약이라도 해놓고 건망증세로 잊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별 궁리를 다 해보지만 꽃편지에 대해선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주소 성명을 기계로 쳤기에 필적으로도 짐작이 안 가고, 발신자의 그것도 낯설기만 하다. 이 마른 꽃편지로 하여, 나는 며칠 잠들기 전에 뒤척였다.

자꾸 만지면 바스스 부서질 것 같아 접어두고 일을 하다가 틈새가 나면 펼쳐 마른 꽃 향기를 맡았다. 그렁 저렁 한 달이 지났다. 마른 꽃에선 더 이상 향기가 나지 않았다. 꽃향이 좋아서 누군가 보냈겠지. 이렇게 여기며 덮어두기로 했다.

혼자 있을 때 나이를 잊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꽃편지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내심 흐뭇하다. 정말 나이를 잊고 “난 행복해…”라고 지껄이기도 했다.

 

아주 오래 된 일이다. 누군가 시집 갈피에 켜켜로 마른 꽃잎을 끼워 보내왔다. 시집은 얄팍한 3인 시집 『생명의 장』. 고등학교 시절에 낸 것이다. 비벼서 가루를 만들어 화롯불 위에 날리면 꽃향이 좋다는 쪽지도 함께 왔다.

그때 집에선 화롯불을 쓰지 않았다. 교실 난로 당번이 된 날 방과 후에 비벼서 활활 타는 불길에 던져보았다. 이런 일을 시킨 그 ‘누군가’는 오래지 않아 밝혀졌다. 스스로 밝혀왔는데, E여고 학생이었다.

혼자 있게 되면 밀려간 세월 50년대의 기억도 되살려가며 꽃편지에 따라오는 환상을 즐겼다. 잊었다가도 문득 보낸 이를 생각해 보는 환상이다.

 

초가을.

지방 방송국 주최로 동요 경연대회가 있었다. 누군가 내 시에 곡을 붙여 출품하겠다고 전화를 걸어왔다. “축하한다”고 대답했더니, 작사자 동의가 있어야 출품이 가능하다며 저작권에 대한 양해를 구했다. 허락한다고 했다.

조심스런, 아주 가느다란 목소리는 다소 흥분된 목소리였다. 이름을 얼핏 들었지만 적어놓지 않아서 잊고 말았다.

‘요즘은 이런 일도 문서로 하지 않고 손전화로 처리하는구나…….’

전화를 끊고 나니 조금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

손전화를 즐기는 세대가 하는 일처리 방식도 그렇거니와 그것이 편리한 세태라고 우겨대는 데엔 자못 마땅치 않아 씁쓸하기만 하다.

 

늦시월.

서울에서 새 동요 발표회가 열렸다. 해마다 이맘때쯤 열리는 공연이다. 여러 경연대회에서 올해 입상한 신곡을 소개하는 앙코르 순서도 있다. 그런데 내 시에 곡이 붙은 노래가 여기에 들어 있지 않은가?

진행자 겸 사회자는 “지방 방송국 콩쿠르에서 대상은 놓치고 금상을 받은 곡”이라고 소개했다.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작곡가의 기쁨이 그때 꽃편지로 내게 온 것임을 짐작하게 되었다. 노랫말이 된 시에 꽃 이야기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 날 저녁 꽃편지를 다시 보았다. 그런데 꽃대를 붙인 종이 외에 작은 쪽지가 봉투 아래쪽에 꼬깃꼬깃 구겨져 있지 않은가.

‘덕분에 입상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무개 드림’

환상의 끝은 왔다. 그 나름의 향기를 얼마쯤 풍긴 마른 꽃. 재로 변했거나 가루로 변하거나 그 존재의 끝은 별로 다르지 않다. 부서지는 소멸을 보면서,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다시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겠지만 다만, 그 실존의 가치에 대해서만은 그렇게 간단하게 한마디로 말하고 싶지 않다.

두어 달 남짓 행복했다. 향기보다 환상을 즐겼다. 또 다른 환상을 위해 노랫말로 선택될 시를 더 써보겠다고 생각해 본다. 부서진 소멸이 그걸 재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