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모습

  

 

                                                                                          서숙

  

아침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읽었다.

‘18년 복역 60대, 운명 바꾼 자서전’이란 제목 아래 실린 기사의 내용은 이렇다.

‘미 연방 교도소에서 18년을 복역했던 한 전과자의 자서전이 영국의 권위 있는 범죄문학상 <매컬란 대거스> 결선에 올랐다고 더 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이 상은 세계 범죄작가협회가 그 해 가장 뛰어난 범죄 관련 저서에 수여하는 상이다. 책 제목은 『미스터 블루』이며, 저자는 올해 66세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는 에드워드 벙커이다.’

이렇게 시작된 기사는 그 다음 그 흔한 스토리, 불우했던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 버림받음, 소년원 탈옥, 정신병원, 카운티 교도소에서 자신을 학대하는 연쇄살인범을 흉기로 난사… 그 뒤 악명 높은 샌 쿠엔틴 교도소에 최연소 수형자로 수감된다…로 이어진다.

이런 환경 속에서 그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으며, 어떻게 범죄라는 괴질로부터 벗어나는가. 다시 말해 글쓰기가 어떻게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가.

‘벙커는 감옥 속에서 한 사형수를 만나게 된다. 그는 언제 사형이 집행될지 모르는 극한 상황에서 쉬지 않고 무엇인가를 쓰고 있었다. 벙커는 그를 보며 도대체 글쓰기란 무엇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부터 자신도 책을 읽기 시작한다. 교도소에서 남는 것은 시간뿐이었다. 그는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고전을 모조리 읽는다. …그러다가 자신도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글쓰기. 감옥에 있는 동안 그는 출간도 되지 않은 장편소설 6편과 단편 50여 편을 쓴다. 출소한 뒤에도 그는 미친 듯이 글쓰기에 매달린다. 그는 무엇인가를 쓰지 않으면, 글을 쓰지 않으면 다시 범죄의 나락에 떨어진다는 두려움에 떤다. 그에게 남은 것은 글을 쓰거나 범죄자가 되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어쨌거나 벙커는 글쓰기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글을 읽었고, 자신이 파멸하지 않기 위해 글쓰기에 매달렸다. 그에게 글읽기와 글쓰기는 별개의 것이 아니었다. 글쓰기가 글읽기이고, 글읽기가 글쓰기였다. 읽고 쓰면서 그는 병든 허물을 벗어던지며 비틀린 자신의 삶을 뛰어넘는 순간을 거치게 되었을 것이다. …그에게 그것은 자신이 처한 현실과의 절박한 대면이고 사투였을 것이다. …그는 그 이후 할리우드와 손잡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이 기사 속에는 두 사람의 모습이 부각된다. 하나는 예측할 수 없는 죽음을 앞두고 필사적으로 글쓰기에 매달리는 사형수의 모습이고, 또 하나는 그를 보며 도대체 죽음을 앞둔 저 사람에게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는 어린 소년수의 모습이다.

이들 앞에서 나도 모르게 목이 메이려고 하는데 이는 이 불운한 이들을 통해서, 소년수를 통해서 이제는 색이 바래고 잊혀져가는, 진부해져가는 글쓰기에 대한 질문이 되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은 그야말로 죽음의 동토였을 것이다. …책이니 예술이니 구원이니 승화니 하는 소리들을 접할 수도 접한 적도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대접도 받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인간에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 또한 새삼 인간에게 글을 읽고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묻게 된다. 다른 사람이 써놓은 글을 읽고 가르치며, 그것으로 월급을 타고 사회생활을 하는 나는 글쓰기에 대해 이런 식의 절박성을 가진 적이 있는지, 지금 현재 가지고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자신에 대한, 자신의 삶에 대한 최소한의 정직성이 이 질문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죽음을 앞두고 필사적으로 글을 쓰던 사형수의 모습,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어린 소년수의 모습.

한동안 나는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들이 보여주는 인간정신의 가능성, 그 불가해성 앞에서 말을 잊는다.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부 교수.

산문집 『따뜻한 뿌리』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