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의 별밤

  

 

                                                                                      구활

  

소록도는 전라도의 끝자락에 있다. 일제가 나환자들을 사회와 격리시키기 위해 소록도를 수용소로 지정하자 전국의 환자들은 절름거리는 다리를 끌며 이 섬으로 몰려들었다. 전라도는 황토 땅이다. 오뉴월 염천 속의 붉은 황톳길은 숨막히는 설움의 길이자 저승길이었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낯선 친구 만나면`/`우리는 문둥이끼리 반갑다`/`천안 삼거리를 지나도`/`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가는 길…`/`신을 벗으면`/`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가도 가도 천리길 전라도 길.’

─ 한하운의 ‘전라도 길’

 

동네 아이들의 돌팔매가 날아오는 황톳길을 따라 이곳으로 숨어든 환자들은 고향의 빛 밝은 하늘과 꿈에서만 만나는 피붙이들이 보고 싶어도 다만 마음 속으로 삭일 뿐 그리움에 몸을 떨며 그렇게 죽어갔다.

이곳 사람들은 자신이 죽으면 하늘의 별이 된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소록의 하늘은 한많은 사람들의 맑은 영혼들이 올라가 별 밭을 이뤘음으로 여느 하늘보다 영롱하고 아름답다. 하늘에 별이 되려면 천국을 오르는 계단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런 것은 없다. 교회 첨탑 끝 아스라이 높은 십자가 꼭대기도, 사흘이 멀다 하고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 화장장 굴뚝도 저 높은 곳을 향하는 지름길은 아니다. 그러나 이곳 환자들은 그 길을 훤하게 알고 있다. 그 길은 마음 깊은 곳으로 뚫려 있고, 잃어버린 손가락과 발가락이 하늘로 올라가는 날개의 깃털이 된다는 것을. 그들은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남들에겐 결코 가르쳐주지 않는다.

소록 사람들은 잠들기 전에 별을 보고 해 뜨기 전에 다시 별을 본다. 울면서 걸어온 붉은 황톳길의 서러운 기억도, 남기고 떠나온 첫사랑의 추억도 별밤에는 능히 지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음지에 살면서 양지를 지향한다. 그래서 영혼의 안식처인, 다시 말하면 죽고 나서 혼백이 모셔지는 만령전을 소록도에서 아침 햇살이 가장 먼저 드는 곳에 세운 까닭도 평생 동안 별을 보며 숨어 살아온 생애를 눈물을 뿌려가며 추상해 보기 위함이다.

 

“소록도 사람들이 이리로 올 때`/`잊기로 한 고향 이야기들은`/`‘순바구길’옆 대숲 속에 있다`/`그 대숲에 가면`/`빛바랜 사연들이 댓닢에 매달려`/`후두둑 몇 자락씩 떨어진다`/`그래서 댓닢들은 바람이 없는 날에도 사운거린다`/`그러다 어느 날, 그 이야기들 중 오래 된 것들이`/`하얀 날개를 달고 건너편 만령전으로 조용히 날아가`/`사람들이 잠든 깊은 밤에 하늘에 올라가 별이 된다`/`소록도 사람들의 고향이`/`차라리 없는 것만 못한 고향으로`/`멀어지면서부터`/`가슴에 묻어둔 그 고향집 툇마루엔`/`그리움으로 빚은 파랑새 한 마리가`/`하루에도 수십 번 다녀가곤 하지만`/`떠나 보낸 이들은`/`눈치채지 못한다`/`소록 사람들이 섬을 떠날 땐`/`구북리 바닷가에 흰 연기로 피어오르고`/`그 날 밤 만령전엔 그 새가 앉았다가`/`마지막으로 고향을 한 번 다녀와서`/`하늘에 올라 별이 된다는 것을`/`소록도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모른다`/`소록의 별밤을 아름답다고 말하지 말라.”

─ 정학의 ‘소록의 별’ 중에서

그러나 소록도 사람들은 붙박이 별로 하늘에만 눌러 살지 않는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빗줄기와 눈발을 타고 내려와 이승에서의 흔적을 찾아 헤매며 서럽게 운다. 그리고는 편지를 써서 고향으로 보낸다. 주소도 쓰지 않고 우표도 붙이지 않고 그냥 부친다. 그러면 지나가는 새들이 한두  장씩의 편지를 물고 가 그리운 이들에게 일일이 전해 준다. 답장은 바람으로 변한 새들이 다시 하늘로 올라간 별들에게 전해 주어 가 보지 못한 고향 소식을 듣게 된다.

그러나 아! 그러나, 그리운 이들에게 답장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꽃으로 주저앉아 섬을 붉게 물들이거나 제비 선창의 하얀 포말로 내려앉아 밤새도록 소리내어 통곡한다. 사람들은 이것을 ‘그리움’이라고 말한다. 그리움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현대수필문학상 수상(99년). 대구문학상 수상(2002년).

저서 『시간이 머문 풍경』, 『하안거 다음 날』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