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람

  

 

                                                                                         金素耕

  

집 앞 큰길 가에 웬만한 규모의 식품점이 하나 있다. 십 여 년이 넘게 소망 슈퍼라는 이름을 그대로 하고, 주인은 몇 번 바뀌었다. 마을버스가 그곳에 서기도 해서, 내 집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약도에 넣어 일러주기도 한다.

지금 주인은 동네에 다세대가 들어서기 시작할 때 온 사람들이다.

사십대 중반을 넘긴 내외는 동네 사람들과 허물없이 이웃사촌처럼 지낸다. 주인 남자는 선장으로 원양어선을 타던 시절의 이야기도 심심찮게 하고, 그의 아내는 가족이 스페인에서 살았던 이국생활도 회상한다.

얼마 안 가서 동네에는 하루가 다르게 주택이 헐리고 다세대가 들어섰다. 자연히 가게도 사람들의 발길로 붐볐다. 공사 현장의 인부들이 드나들었고, 해질녘이면 가게 앞 의자에는 하루 일을 마치고 술잔을 기울이는 이들도 보였다. 그렇게 서너 달이 지나자, 동네에 세대수가 늘고 가게 안에서 새 얼굴들이 보였다. 나는 연신 손님들에게 웃으면서 물건을 파는 내외를 보면서, 먼저 주인들보다 장사를 잘하는구나 싶었다.

한 번은 가게에 들렀더니, 안주인이 김치를 방금 버무렸다면서 담아준다. 젓갈이나 양념을 시골에서 가져와 담았다는데 보기에도 맛깔스러워 보였다. 그녀는 틈틈이 야채를 다듬고 저장 식품도 만들어 판다. 그렇게 부지런하려면 흔한 바지라도 입을 만한데, 알맞은 몸매에 치마를 입고 잔일이 많은 소망 슈퍼의 살림을 해낸다. 간혹 골목에서 만나면 손을 앞으로 모으면서 나붓이 인사를 한다. 그런 인사를 받으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언젠가 주인 남자에게 어디서 저렇게 고운 사람을 만났느냐고 했더니, 고향집 담 너머에 살던 처녀였는데 자기만 바라보고 있어서 할 수 없이 데려왔노라고 한다. “저런!” 하면서 감탄을 하는 내게, 그녀가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면서 웃었다.

장마도 걷힌 어느 날, 가게로 가면서 뭘 좀 가져다 줄 것이 없나 하다가, 지난 가을에 저장해 둔 홍시를 담아다 주었다. 후에 들렀더니, 고모님이 한여름에도 홍시를 먹는,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하시더라는 말을 전한다. 초여름에 구순이 넘은 시고모가 와 계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직 계시느냐고 했더니 모시기로 했다는 대답이었다.

그 댁 고모는 일찍 청상이 되어 굴곡이 많은 삶을 살아온 분인데, 말년에 의지할 곳 없이 혼자 남게 된 처지였다. 그녀는 생각 끝에 남편에게 고모를 모시자고 했지만, 선뜻 대답을 안 하더라고 하였다. 그런 남편의 등을 밀어 고모가 왔는데, 나는 잠시 다니러 오신 줄 알았다.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참 잘되었다 싶으면서도 내 일처럼 좀 걱정이 되었다. 가게 일에 연년생으로 입시생 아들을 둔 그녀에게, 노인을 모시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그녀의 말은, 일가 중에 누가 모신다고 선뜻 나서지도 않지만, 자기 집이 그 중 마땅한 거처가 될 것 같다는 것이다. 뒷산이 있어서 공기가 좋고, 가끔 가게에 나오시면 무료하지도 않을 테고, 노인의 간식거리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고모를 씻어드리기 위해 큰 함지박을 하나 샀더니 훨씬 수월하다는 말도 했다. 나는 그녀의 성품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 말을 집에 와서 그대로 전했더니 모두 좋은 소식을 들은 것처럼 흐믓해 하였다.

아닌 게 아니라 그 후 지나다 보니, 가게에 노인이 종종 나와 있었다. 조카 내외와 앉아서 두유도 마시고, 어느 때는 과자 봉지도 들고 있었다. 좋아 보이신다고 하였더니 홍시를 잘 먹었다고 인사를 한다. 노인 덕분에 나도 가끔 그녀가 고모를 위해 만든 별식을 맛본다.

나는 그녀에게 별나게 잘하려 하지 말고 그저 편하게 모시라는 말을 자주 해준다. 누구를 탓하기 전에, 언제부턴가 노인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세태라, 노인이 조카 집에서 여생을 편안히 마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었다. 뭐니뭐니 해도 한 집안에서, 노인이 여생을 편안히 보낼 수 있어야 좋은 세월이다.

그러던 중 노인이 잠시 시골을 다녀온 후 독감이 들고 말았다. 기침 때문에 고생하신다고 했다. 모과차를 주겠다고 하였더니, 그녀는 벌써 모과에 배즙을 준비하면서 시중을 들고 있었다. 별 차도 없이, 어느 날 고모가 안 하던 행동을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만에 하나 노인이 병세가 깊어지면, 모두에게 이제까지와는 다른 어려운 상황이 벌어진다.

나는 그녀를 데리고 냉면집에라도 가려고 했더니, 엊그제 사촌형네서 고모를 모셔갔다고 했다. 이곳 사정을 알고 잠시 모셔갔다는데, 한 눈에도 피곤해 보이는 그녀는 고모가 가시지 않으려 했다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나부터도 하기 어려운 일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그녀, 그녀는 자신이 여러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면서 사는, 복(福)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