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情)

 

 

                                                                                    이정호

  

아내와 딸애를 횡성까지 차로 태워다주고 왔다.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가을 아침, 딸애는 떠날 준비를 하면서 몇 번이고 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렸다. 지난번 왔다 가면서 제 아비를 혼자 두고 떠나는 게 안좋았던지 제 어미에게 다음부터는 저 혼자 가겠다고 했었다. 요양차 집을 떠나 멀리 산골에 와 있는 처지인데다 품안의 자식이라고, 이 애가 내 앞에서 아른거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생각하니 잠깐 왔다 가는 딸애를 보내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떠나 보내는 마음이 편할 수 없어 오늘도 아내를 딸려보냈다.

되돌아올 때는 햇살이 퍼져 이슬진 산빛이 눈부시다. 물들기 시작한 발그레한 잎새가 맑은 생즙을 송글송글 뱉아내는 듯하다. 가녀린 코스모스 꽃잎이 청초하면서도 애잔하다. 막 세수를 끝내고 살짝 로션만 바른 앳된 소녀의 얼굴을 닮았다. 그러나 어딘가 병약한 시름겨운 얼굴. 길을 따라 흘러내리는 계곡 물살이 물비늘을 뿌려 반짝인다. 이런 가을인데, 그런데 눈물이 난다. 눈안개(眼霧)로 시야가 흐릿하다.

산모퉁이를 돌아 숨은 외딴집, 웬일로 낯설다. 썰렁한 냉기가 감돈다. 실바람이 주인 없는 사이 몰래 왔다가 놀라 쑥부쟁이 꽃잎을 살짝 건드리고 사라지는가 했더니, 다람쥐 서너 마리가 마당에 널어놓은 도토리를 훔쳐먹다가 쪼르르 뒷곁으로 사라진다.

뜰에 놓인 아내의 장화를 보는 순간, 심장이 멎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재잘재잘 모녀의 떠들던 소리가 귀에 맴돈다. 어제 집 뒤 산너머로 산밤 주으러 갔다오던 딸애 모습이 눈에 밟힌다.

“또 밤 주으러 가고 싶다.” 아침밥을 먹으면서 딸애가 툭 던진 한 마디에, “그렇게 해라. 내일 가고…….” 아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안 돼, 학교는 어떻게 하고, 내일은 더 가기가 싫을 텐데. 정말 가기 싫다. 서울 가기 싫다.” 짜증이다.

산길을 걷고 싶은 것이다. 밤 줍자는 것은 핑계고 가을을 걷고 싶은 것이다. 구절초 쑥부쟁이가 혼자 다소곳 수줍게 피어 있는 호젓한 산길이다. 한여름 억세게 무성하던 풀과 나뭇잎이 스스로 알아서 순순히 시드는 가을 산길이다. 이런 가을을 딸애에게 걷게 하려고 밤 주으러 가자고 꾀어내었었다. 풀섶에 찔릴까 봐 장화를 신겼었다.

초롱초롱 영롱한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딸애의 가슴에 담아주고 싶어서 어젯밤에는 춥다는 걸 반강제로 끌어내어 절바위골로 접어드는 갈래길까지 데리고 걸어갔다 왔다. 도톰하게 배부른 반달이 엷은 구름에 살짝 가렸을 뿐 달빛이 참 좋았다. 산들이 희뿌연 허공에 어둠을 잔뜩 머금고 거대한 공룡 모양을 하고 음흉스레 엎디어 있었다. 밤은 형상이 없는 것들의 세상이라던가. 여기저기 들꽃들이 입김을 뿜어 피어나는 파리한 빛안개 속에서 밤의 요정들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은 달밤이었다. 발이 시렵다고 이때도 딸애는 장화를 신고 토닥토닥 걸었다.

산골의 저녁은 스산하다. 집 떠나 있는 이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그래도 나는 이런 저녁이 좋아 어두워질 때까지 자귀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있곤 했는데 오늘은 그만 두었다. 일찍 문을 닫아 걸었다. 방에 들어와 한동안 멍하니 벽에 기대 앉아 있다가 책 하나를 뒤적이는데 군에 가 있는 아들놈 사진이 책갈피에서 툭 떨어진다. 유격을 받으며 찍은 것이다. 로프에 매달려 기를 쓰고 있다. 잔뜩 긴장한 겁먹은 얼굴이다. 울컥 놈이 보고 싶어 못견디겠다.

‘뭣하러 여기까지 가져왔나. 수원 집에 잘 두지 않고.’

괜스레 짜증스럽다. 속으로 아내에게 화풀이다. 만만한 게 아내다. 지금 아내 말고 투정부릴 사람도 없지만.

 

정(情)을 들이면 얽매이기 마련이다. 사람이나 동물뿐 아니라 무정물(無情物)도 정을 붙이면 집착이 생긴다. 오면 오고 가면 가는가 보다 하면 될 텐데, 떠도는 구름, 나는 새를 비추는 호수(湖水)같이 마음에 두지 말고 오면 맞이하고 가면 보내면 될 텐데, 정이란 놈이 끈끈이가 되어서 붙잡아 매려 하니 괴롭다. 정이 있어 설화풍광(雪花風月)을 즐길 수 있다지만 사랑하는 것들과 헤어져야 하는 아픔도 이놈의 정 때문에 겪어야 하는 괴로움이다. 어디 이뿐일까. 이 육신도 언젠가는 떠나 보내야 하는데.

짐짓 무상게(無常偈)를 읊어본다.

‘이 몸뚱이는 헛되어 허망한 것, 정에 물든 애욕이 집착하고 탐하는 욕심을 내어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하는 번뇌를 낳는 것이니 다 놓아버리면 생사고뇌를 벗어나 적멸(寂滅)의 즐거움을 누리리라.’

대충 이런 말씀이다.

그러나 어쩌랴. 이런 경지까지 이르기는 내 수양으로는 가당찮고. 그도 그렇지만 철따라 다른 얼굴로 우리의 정을 충동질하여 문학 예술에 빠져들게 하는 이 대지 위에서 슬프고 가슴 저미는 일이 좀 있더라도 웬만치만 참고 견디다 보면 또 웃고 즐거울 때도 있는 것이니, 과한 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그런대로 살아갈 만한 세상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내 지금 이런저런 일에 신경쓰여 삶이 좀 힘들어도 정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산가山家의 밤, 오늘 밤 따라 귀뚜라미, 풀벌레도 잠잠하다. 적막이 고막을 짓누른다. 뚝, 창 밖 뒷산에서 도토리가 떨어진다. 정적을 단번에 내리쳐 깨부수는 굉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