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 리

 

 

                                                                                   민명자

  

며칠 전부터 대궁을 올리던 난(蘭)이 꽃을 피웠다. 미세한 공기의 흐름을 타고 다가올 듯 사라지고 사라질 듯 잡히는 향기가 그윽하고 매혹적이다. 마치 향기로운 어떤 여인이 자태를 숨긴 채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다니는 것 같다. 이슬방울처럼 작은 수액을 달고 있는 꽃을 보며, 그 꽃을 피워낸 뿌리의 노고를 생각해 본다. 뿌리는 모든 영광을 꽃에게 돌리고 자신은 흙 속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잎과 줄기를 키운다. 뿌리와 같은 삶을 산다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일까. 어둠의 공간에서 꽃을 피워내는 뿌리의 인내와 고통을 생각하노라니 문득 얼마 전에 돌아가신 외숙모가 떠오른다.

 

큰외숙모와 한 집에서 살게 된 것은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아침에 나가신 아버지가 오후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오시고, 얼마 안 돼 그 충격으로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게 되자 여동생과 나는 외가로 들어가게 되었다. 외할아버지는 대목(大木)이셨으므로 외가에는 항상 잔일을 돕는 목공이 여러 명 상주하고 있었다. 외숙모는 목공들을 포함한 식구들의 세끼 식사와 밤참까지 챙기느라 부엌에서 헤어날 날이 없었다. 그때 한 끼니에 모이는 식구는 목공의 수에 따라 늘거나 줄기도 했는데 보통 열댓 명에서 스무 명까지도 되었다. 외숙모는 날마다 그 많은 식구들의 뒷바라지를 거의 혼자서 하다시피 했다. 식사 때에는 웬만한 잔칫집만큼이나 복잡했고, 게다가 매일 손으로 해야 하는 빨래 또한 그 분량이 엄청났다. 지금처럼 세탁기가 흔한 세월도 아니었다. 외숙모는 늘 고단하고 잠이 부족했다. 게다가 나의 이른 등교는 외숙모의 소중한 새벽잠을 더욱 설치게 했다. 식구들 중 제일 먼저 집을 나서야 하는 나 때문에 외숙모는 새벽에 일어나 가마솥에 불을 지피고 도시락을 쌌다. 그러면서도 싫은 기색 한 번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잠든 이른 새벽 혼자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지피던 외숙모의 모습은 지금도 묵은 영상으로 남아 가슴을 아리게 한다.

착하기만 한 외숙모에게 노동의 고단함보다 더 견디기 힘든 일이 생긴 건 우리가 외가로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외숙모는 딸만 넷을 두고 있었는데 아들을 얻는다는 명분으로 외숙부가 작은부인을 들인 것이다. 잠깐의 외도 같은 것이 아니었다. 아랫방을 작은부인의 거처로 내주어 아예 한집살림을 시작한 것이다. 아무리 착한 외숙모였다고는 하지만 한 여인으로서는 감내하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인가 한번 나는 외숙모의 절규 어린 울부짖음을 들은 일이 있었다. 그런데 왜였을까. 외할머니나 다른 식구들은 외숙모의 편이 아닌 듯했다. 마치 아들을 두지 못한 모든 책임이 외숙모에게 있다는 눈치였다.

행인지 불행인지 작은부인은 아들만 둘을 낳았다. 그러니 외가에서 외숙모의 존재는 하나의 여성이나 인간으로서가 아닌, 종의 모습처럼 보였다. 결코 따뜻하지 않은 시집 식구들의 시선 속에서 고된 노동과 독수공방으로 날을 보내는 외숙모의 삶을 바라보면서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렇게 참고 사는 외숙모를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 인종(忍從)이 굴종으로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그때에는 외숙모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단호하게 거부하지 못하고 그처럼 고통을 참아내는 힘의 근원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 후 외조부와 외숙부가 차례로 돌아가시고 나서도 외숙모는 따로 나가 살고 있는 작은집 식구들과 연(緣)을 끊지 않았다. 그리고는 홀로 된 시어머니를 모셨다. 평생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대하던 시어머니, 그러니까 외할머니는 몇 년 간 앞을 못보고 방안에만 계시다 돌아가셨는데 그 용변 수발까지 외숙모는 혼자 해냈다.

그리고 세기의 마지막 날, 나는 외숙모의 부음을 들었다. 착하기만 하던 생의 대가(代價)인가, 별다른 고통 없이 외숙모는 예순아홉의 생을 마친 것이다. 나는 외숙모가 세상을 뜨고 나서야 평소 불행하게만 보였던 그 삶이 큰 결실을 남겼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식들을 모두 결혼시키고 혼자 살던 외숙모는 집 한 채를 유산으로 남겼는데, 나는 속으로 그 재산을 둘러싸고 네 딸과 작은부인 소생의 아들들 간에 다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했었다. 당시 작은부인의 아들 내외는 제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염려와는 달리 외숙모의 심성을 이어받은 딸들은 다들 고만고만하게 살면서도 그 집을 큰 남동생에게 선뜻 넘겨주었다. 어머니의 제사나 잘 모셔달라는 것은 명분이었고, 실은 남동생이 제 집을 갖지 못한 것을 애틋하게 여긴 게 딸들의 속뜻이었다.

탈상을 하던 날, 딸들과 그 못지않게 착한 사위들, 그리고 작은부인과 그 아들 내외가 모두 동석을 했다. 그들이 오순도순 앉아 한결같이 외숙모의 명복을 비는 것을 보며 나는 외숙모의 지난 삶에 대한 애절함과 감사가 복받쳐 올랐다.

 

마른 나무등걸처럼 야윈 몸에 굽은 허리, 늘 바튼 기침을 하던 외숙모가 생을 마감한 것은 공교롭게도 1999년 12월의 마지막 날이었고, 장례는 새로운 세기의 초두에 걸쳐 있었다. 자신이 꽃이 되려 하기보다는 뿌리의 길을 택한 외숙모는 어둠의 세계에서 네 딸들을 향기로운 꽃으로 피워내고 빛의 세계로 떠나갔다. 그 뿌리의 힘을 얻은 딸들은 또 다른 뿌리를 이루며, 시인의 노래처럼 세상을 푸르게 할 것이다.

 

자신이 광을 내면

나무가 죽는 줄 이미 알고

완강히 빛을 거부하고

자유 공간을 거부하고

더 깊은 어둠 속 뚫고 들어가

끝끝들이 살을 밀어 올려

목숨 건 침묵의 노래

뿌리들의 합창

세상을 푸르게 한다.

                                         ― 정대구 시인의 ‘뿌리의 노래’ 중에서

 

 

<계간 수필>로 천료(200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