元老 이야기

 

 

                                                                                            李應百

  

이런 이야기가 있다. 부모가 늙으면 져다 버리는 기로국(棄老國)이 있었다. 따라서 그 나라에는 거리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거나 집에 누워 죽을 때를 기다리는 늙은이가 없어, 생기(生氣)가 충만하여 사는가시피 살아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이웃의 강대국(强大國)에서 한 가지 주문을 해왔다.

“너의 나라에서 재로 새끼를 꼬아서 사흘 안에 바치지 못하면 쳐들어가겠다.”

이만저만한 위협이 아니었다. 힘깨나 쓰는 젊은이들이 모여 아무리 해보아도 재로 새끼를 꼬을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하얗게 사그라진 재는 만질 수도 없지만, 짚이나 풀이 타 까맣게 형체(形體)를 이룬 재도 만지면 부스러지고, 가는 나뭇가지가 탄 재는 뻣뻣해서 새끼를 꼬을 수가 없었다. 이틀 동안 아무리 머리를 맞대고 시행착오(施行錯誤)를 해봐도 해결책이 나오지 않아, 고대 이웃 나라의 습격을 받을 위협으로 모든 사람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사색(死色)이 되었다.

바로 그때 그 중에서 나이가 가장 지긋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이틀씩이나 제 일 제쳐놓고 여기 모여서 여러 가지로 궁리를 해보았으나 뾰족한 수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마감 날이 내일인데, 우리가 이대로 이웃 나라의 침공(侵攻)을 앉아서 당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내 생각 같아서는 우리가 져다 버린 노인네 가운데 아직 살아 있는 이의 의견을 들어봄이 어떨까 합니다. 우리보다 경험이 많이 쌓였으니 혹시 기상천외(奇想天外)의 의견을 지니고 있을지 모를 일이 아니겠습니까?”

일동도 별수 없는 이 마당에 그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어 대표자 몇이 노인을 져다 버린 곳으로 갔다. 이미 절명한 이가 많은 가운데 다행히 눈빛이 초롱초롱한 한 노인을 발견했다. 딴 나라의 침공을 당할 일을 생각하면 머리가 쭈뼛해지는 형편이지만, 한 가닥 희망을 찾아간 것이니 이것저것 헤아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 노인께 무릎을 꿇고,

“뵈올 낯이 없습니다. 저희들이 이렇게 어르신을 찾아뵙게 된 것은 저희들로서는 아무리 해도 풀 수 없는 숙제(宿題)가 있어 의논드리러 온 것입니다. 내일까지 그 문제를 풀지 못하면 우리는 그들에게 짓밟혀 노예로 끌려갈 형편입니다.”

그리고 숙제의 내용을 말했다. 말을 들은 노인은,

“그거야, 식은 죽 먹는 것보다 쉽지.”

이 말에 일동은 갑자기 생기(生氣)가 솟아났다.

그 노인은 새끼를 구해 오라고 했다. 국운(國運)에 직결되는 새끼를 삽시간에 찾아서 바쳤다.

노인은 불을 피우라고 했다. 불을 피웠다. 그 불에 새끼를 태우라고 했다. 새끼는 빨갛게 불꽃을 내면서 타더니 꺼지자 새까만 새끼 모양의 재로 변했다. 모두 막혔던 숨통이 터져 나갔다. 그리고 이러한 지혜를 낸 노인에게 큰절을 올리고, 그 길로 다시 모시고 내려와 여생(餘生)을 마치게 했다. 그 노인 덕에 이웃 나라의 침공을 면한 것을 계기로, 노인을 져다 버리는 풍속에서 노인을 잘 받들어 모시는 풍조(風潮)로 전환시켰다.

『맹자(孟子)』에 보면 전통(傳統)이 있는 나라(故國)는 몇 아름드리 나무(喬木)가 많다는 것이 아니라 대대로 정성스럽게 섬기는 신하, 곧 세신(世臣)이 있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여기서 세신이라는 것은 어느 개인이 몇 대의 임금께 섬기는 신하라는 뜻보다는 사람은 바뀌어도 국가를 위해 신명(身命)을 바치는 원로(元老)라는 뜻이다.

우리 나라에는 예로부터 대가족주의의 전통이 있는데, 근자에 부모와 자식지간의 이기(利己)적 헤아림으로 핵가족(核家族) 제도가 생기게 됨에 따라 집안의 전통이 단절 위기에 처하고, 특히 젊은 세대는 모든 것을 새 출발하는 비능률 속에 처하게 되었다.

국가 운영에서도 다른 나라의 제도나 경륜(經綸)을 본보기로 삼으면 훨씬 경제적으로 효과도 올릴 것인데, 단군 이래 우리 나라만이 나라인 양 국가를 운영하는 식으로 하는 비능률을 범하고 있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란 말이 있다. 다른 데서 좋은 것을 배우라는 것이다. 가령 일본은 다른 나라에서 좋은 점을 애써 들여다가 세계에서 일등 국가가 되기를 작심(作心)하고 꾸준히 그 방향으로 나아가 오늘을 이룩했다. 회사나 신문, 방송국에 선배들이 활용할 공간과 시설을 마련해 놓고, 현직이 막히는 데가 있어 자문을 구하면 축적된 지혜로 쉽게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우리가 당면했던 물류 대란과 무시로 일어나는 노사분쟁의 경우, 이해(利害) 당사자끼리의 해결책 강구는 시간을 끌어 감정의 격화만을 가져올 뿐 속 시원한 결말이 나지 않는데, 이때 양쪽의 사정을 잘 아는 원로가 절충에 나서면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는데, 현직에서 물러난 사람은 쓸모가 없다는 생각의 만연(蔓延)이 그 길을 막아, 그 영향이 국가나 가정 사회에서 일파만파(一波萬波)로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원로 존중의 풍조가 전통 있는 나라의 기축(機軸)이 된다는 것을 마음에 담을 것이다.